변증법 서사로 풀어낸 참신한 서부극

 서부극은 할리우드 영화를 대표하는 장르였다. 1950년대까지 호황을 누린 서부극은 주인공이 악당을 통쾌하게 물리친다는 미국식 영웅주의와 개척정신을 다루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선과 악의 대결 구도와 권선징악을 담고 있는 빤한 이야기는 한계에 봉착했고, 수정주의 서부극에 바통을 넘겨주게 된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1964)를 필두로 한 이탈리아산 서부 영화는, 기존의 정형화된 서부극의 틀을 깨며 인기를 누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매너리즘에 빠진 결과 수명을 다했고, 현재에 와서는 서부극이 가지고 있는 장르적 특성을 따르면서도, 나름의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가함으로써 의미를 찾고 있는 영화들이 간간히 만들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슬로우 웨스트’ 역시 이들 일련의 영화들과 궤를 같이 하는 영화다.

 시대적인 배경은 19세기 서부개척시대다. 영화가 시작하면 미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는 제이(코디 스밋 맥피)가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고 있다. 서부극에서 여린 소년이 등장하고 있고, 밤하늘의 별로 영화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 심상치 않다. 알고 봤더니 그는 여자 친구 로즈(카렌 피스토리우스)를 찾아 스코틀랜드에서 미 중서부인 콜로라도까지 머나먼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제이는 인디언들을 사냥하고 있는 북부군과 현상금 사냥꾼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혈혈단신의 몸으로 서부를 통과하고 있는 순진무구한 인물인 것이다.

 바로 이 인물 옆에 현상금 사냥꾼인 사일러스(마이클 파스빈더)가 따라 붙는다. 그는 제이에게 돈을 좀 주면 여자 친구에게 무사히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하지만, 사실은 로즈와 그녀의 아버지에게 걸려있는 현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제이를 이용하려는 속셈이다.

 한데 사일러스는 제이와 함께 동행 하며 제이에게 감염된다. 시(詩)를 좋아하고 사랑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제이에게 차츰 동화되더니, 어느 순간에는 자신의 입에서 시(詩)가 흘러나오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이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은, 사일러스에게 살아남는 것이 다가 아님을 전염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순수만으로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이런 이유로 이 영화는 엔딩 시퀀스를 공들여 준비한다.

 로즈와 그녀의 아버지는 콜로라도의 들판에 집을 짓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한다. 문제는 이들에게 현상금이 걸려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곳으로 현상금을 노리는 무리들이 집결한다. 물론 제이와 사일러스가 빠질 리 없다. 이때 사일러스는 총 한 방 쏘아보지 못하고 부상당한 채 벽에 기대어 관망하는 신세가 되고, 제이는 총탄을 뚫고 로즈가 맞대응하며 싸우고 있는 집안으로 진입하게 된다. 그리고는 어이없게도 로즈의 총에 맞아 비명횡사한다.

 로즈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서부를 횡단하며 죽을 고비를 넘기고 힘들게 도착한 연인을 죽인 것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바로 여기다. 로즈는 분명 제이가 현상금 사냥꾼의 무리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고 총을 쏘아 제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로즈의 무의식이 제이를 죽였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로즈가 보기에 생면부지의 땅에서 살아남기에는 제이의 순진무구로는 버텨낼 재간이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이것이 무의식적인 살인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제이의 자리에 사일러스를 추대한다. 그는 제이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인문정신을 배웠고, 강한 생명력까지 겸비한 인물로서 새로운 땅의 적임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나레이션의 주인공이 그가 된 이유이며, 그가 로즈와 함께 가족을 꾸리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슬로우 웨스트’는, 서부개척시대에 악다구니로 살아남은 이들을 변증법의 서사로 풀어낸 참신한 서부극인 것이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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