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갑씨 문화전당 공사현장서…4년 간 보관
“버려진 5·18, 시민군 출신으로 실망감 컸다”

▲ 옛 전남도청 현판을 발견하고 보관해온 이강갑 씨가 옛 도청앞 모형 현판앞에 서 있다.
 “철거공사를 마치고 철근 더미를 분리하는 중이었어요. 고물상에 넘기기 전에 발견한 거예요. 얼마나 찾았었는데, 그때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최근 행방을 드러낸 구 전남도청 현판에 관한 이야기다. 현판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 과정에서 현장 근무를 하던 이강갑 씨에 의해 발견됐다. 구 전남도청이 전남 무안으로 이전한 2005년 이후 부터 죽 방치됐던 것.

 아무도 찾지 않고 버려지다시피 방치된 역사의 일부가 다시 돌아온 것은 반길 일이나 이 씨의 한숨은 길었고, 이는 뼈아픈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5·18민중항쟁의 심장부로 불리는 도청을 보존하고 지켜야 하는 주체가 이를 외면하는 현실. 정부도, 전남도청도, 광주시도 아닌 한 개인이 나서야 했던 이유다.

 “(현판이) 도청 별관 보일러실에 있었어요. 보일러실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창고같이 쓰였던 곳이에요. 건축 자재를 정리하다가 발견된 거니까 어떤 상태로 묻혀 있었는지 정확하게는 몰라요.”

 

 문화전당 공사 당시 사라진 현판

 도청 부지에 문화전당 건립 공사가 시작된 2008년부터 이 씨는 현장 노동자로 근무했다. 도청 현판이 있던 자리는 자국만 남고 현판은 자취를 감춘 것이 미심쩍었던 차 현판의 행방을 찾을 수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누가 가져갔는지, 이미 버려진 건 아닌지 답답했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책임 있는 동료에게 공사 중에 현판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 꼭 놔두라고 부탁을 했죠.”

 씨앗같이 뿌려진 그의 이 한 마디는 4년 뒤 진짜 수확으로 거둬진다. 공사 중 철거물들이 고물상으로 넘겨질 찰나 동료에게 발견돼 이 씨 손에 들어온 것이다.

 “공사가 끝나고 문화전당이 개관할 때까지 제가 보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현판을 찾는다는 상부 지침도 없었고, 누구에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죠. 청동으로 만들어져 꽤 무거운 현판을 들고 집으로 갔어요.”

 고물로 사라질 뻔했던 현판은 랩으로 꽁꽁 싸매진 채 이 씨와 이후 4년간 동거하게 된다. 그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속 이야기가 늘어갔다. 문화전당 공사과정에서 5·18은 사라지고 왜곡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청과 별관을 잇는 통로도 뚫려서 뼈대만 남고, 수위실과 상황실도 철거돼 버렸던 거예요. 마치 현판이 구석지에 방치돼 버려질 뻔 했던 것처럼요. 5·18 흔적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는 것을 보는 게 실망스럽고 원통했지만, 말단 직원인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5·18사라진 현장…문화전당 뭘 기념하나?

 사실 이 씨는 5·18 당시 시민군 중 한 명으로 도청을 지켰던 5·18구속부상자회 회원이다. 생업 터전인 문화전당 공사현장에서 다시 마주한 도청은 껍데기뿐이었던 것.

 문화전당 개관일이 다가오자 문화체육관광부 쪽에서 현판 위치 추적에 나서기 시작했다. 문화전당 직원들에 의해 결국 그 소식이 이 씨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작년인가 문체부에서 광주시, 5·18재단 측에 현판 관련 공문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현판이 어딘가 잘 보관되고 있다는 말을 흘렸죠.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지더라고요. 내놓으라는 거예요.”

 이 씨는 5·18 당사자들과 논의 끝에 5·18기록관에 보관하기로 결정하고 지난 4월28일 위탁을 맡긴다. 현재 기록관 로비에 현판과 함께 관련 내용이 적힌 안내판이 전시 중이다.

 그리고 구 전남도청 앞 돌기둥 현판 자리에는 현판을 대신해 종이소재로 된 모형 현판이 최근 행사를 위해 부착됐다.

 “아마 제가 5·18 당사지이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시민들이 피 흘린 그 날을 역사로 이어가야 한다는 의지가 강합니다. 집안의 문패를 함부로 버려두고 새것으로 갈면 좋은 건가요? 제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을 지키고 싶은 겁니다.”

 한편 이강갑 씨는 특정 보수언론에 5·18 시민군 당시 찍힌 사진이 실리며 북한 간첩 폭동 세력, 일명 ‘제1광수’라는 오명을 쓰고 현재 북한에서 거주 중이라는 허위 정보에 희생되고 있다.

 제3광수 실체까지 입증되면, 허위 정보 유포 혐의로 지만원 씨를 고소할 예정이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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