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승 작가 “전시 논의 중
이유 없이 작품 배제”
“공론화 말라 강요도”
공개 사과·재발방지 요구
미술관 “오해서 비롯
검열 아냐, 모든 요구 수용”

▲ 광주시립미술관. 최근 런던 재외한국문화원과 협약전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 작가의 작품이 배제된 것을 두고 ‘검열’ 논란이 일고 있다.
 광주시립미술관이 해외 기관과 협약 전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시 제안을 번복하고, 별다른 이유 없이 한 예술작가의 작품을 배제해 검열·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지역 문화·예술계에선 지난 2014년 ‘세월오월’ 전시 파문의 재현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해당 작가는 공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시립미술관 측은 “작품 탈락 이유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벌어진 일로 ‘검열’은 아니었다”며 “작가의 요구대로 공개 사과문과 재발방지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문제는 광주에서 시각예술을 하는 정유승 작가가 지난 20일 자신의 SNS에 공개적으로 시립미술관의 작품 검열 의혹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29일 정유승 작가·광주시립미술관에 따르면, 정 작가는 지난 4월 광주시립미술관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설립해 운영하는 런던 재외한국문화원의 협약전시 작가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 시립미술관측 해당 전시 큐레이터를 만나 작가 선정과정, 주제, 출품작품 등을 안내받은 정 작가는 광주 성매매 집결지를 다룬 영상 작품인 ‘집결지의 낮과 밤’을 전시 작품으로 큐레이터에 제안했다.
 
▲ “작품 배제 큐레이터 임위적 결정?”

 그런데 이로부터 한 달 뒤 큐레이터로부터 전시주제가 ‘에코-자연’(시립미술관은 생태-순환이라고 함)으로 변경됐다며 큐레이터가 다른 작품을 문의했다.

 이에 정 작가는 “‘에코’ 쪽에 걸맞지 않지만 자연 쪽으로 풀어가면 괜찮겠다”며 성매매 여성의 미신, 자연적 샤머니즘을 다룬 영상 작품인 ‘오늘의 믿음’을 다시 전달했다.

 정 작가가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은 이때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다.

 ‘오늘의 믿음’을 보내고 며칠 후 큐레이터가 ‘선정 작가에서 배제됐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정 작가가 이유를 문의하자 담당 큐레이터는 “재외한국문화원 측에서 정유승 작가의 작품이 한국 내부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전시하기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있었기에 미술관에서는 어렵게 내린 결정이다”는 답변을 해 왔다.

 하지만 정 작가가 직접 재외한국문화원 측에 문의한 결과는 이와 달랐다. 문화원 측은 정 작가에 “시립미술관으로부터 정유승 작가님의 작품 전시를 함에 있어 내용적인 부분에서 큰 이슈가 없는지에 대한 문의를 받은 바 있었으며, 재외한국문화원에서는 해당 주제에 대해서 전혀 전시 제약이 없음 전달 드렸다”고 답해왔다.

 이를 종합하면 정 작가의 작품을 배제하기로 한 게 재외한국문화원이 아닌 시립미술관의 결정이었던 셈이다.

 정 작가는 “결국 제 작품을 배제한 것은 큐레이터의 개인 의견으로 밝혀졌다”며 “(해당 큐레이터는)재외한국문화원 핑계를 댄 것이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해당 큐레이터는 왜 정 작가의 작품을 배제한 것일까? 정 작가는 이유를 알고 싶어 5월부터 큐레이터 측에 수차례 문의했지만 아직까지 답을 듣지 못했다.

 정 작가는 “큐레이터는 ‘집결지의 낮과 밤’을 전시에서 배제한 이유를 명백하게 설명하지 못했다”며 “여러 정황 상 성매매와 여성 인권에 대한 주제를 편견으로 바라봤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술가들 “세월오월 이후 달라진 게 없다”

 특히, 이러한 ‘배제 결정’이 큐레이터의 임의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 정 작가는 “자연스럽게 이뤄진 ‘검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세월오월’ 전시 파문에 이어 최근 일본 아이치트리엔날레 ‘평화의 소녀상’ 작품 검열 등 예술창작 활동에 대한 검열과 통제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일어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작품 배제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듣고자 했던 정 작가에게 돌아온 것은 “폭력적인 발언”들이었다.

 “이런 문제로 시끄러우면 작가지원 예산이 줄어들 것이니 공론화하지 말라”며 갑질에 가까운 회유와 강요는 물론 “젊은 작가니까 다음에 해도 되겠지라며 단순하게 생각했다”는 ‘차별적인 발언’도 있었던 것.

 이를 그냥 넘어갈 수 없던 정 작가는 큐레이터에 시립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사과문 게재, 재발방지 등을 요구하며 7월30일까지 답을 요구했다. 하지만 답은 오지 않았고 정 작가가 다시 먼저 연락을 했으나 ‘공식 사과문을 게재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에 정 작가는 SNS에 그동안 벌어진 상황을 정리한 글을 올리며 문제를 공론화하기로 한 것이다.
광주시립미술관의 정유승 작가 작품 전시 배제 문제와 관련해 지난 26일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동구 동명동 I-PLEX(아이플렉스)에서 집담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최성욱 감독.|||||

 정 작가의 소식을 접한 지역 문화예술인들도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연대를 통한 공동 대응에 나섰다. 지난 26일 집담회를 열고 문제점을 공유하고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여러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정 작가와 연대하고 있는 한 예술가는 “광주시립미술관이 ‘세월오월’ 이후에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걸 여실히 드러냈다”며 “작가들은 ‘전시 도구’로 생각하며 쉽게 작품을 달라고 하거나 쉽게 배제하는 과정 자체가 검열과 폭력이다”고 꼬집었다.
 
▲미술관측 “실수…사과문 게재할 것”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재발방지를 위해 “작품 선정 및 배제 등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통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밝혀야 한다”며 “이를 토대로 작품 검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시립미술관이)작가와 소통하는 방식 등을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문제가 커지자 시립미술관 측은 지난 26일 예고 없이 집담회에 들러 ‘진상조사를 통한 적절한 조치’를 약속하고 나섰다.

 시립미술관 관계자는 “정유승 작가의 작품이 ‘후보’였는데 전시 주제가 생태-순환으로 선정되면서 여기에 부합하지 않아 다른 작가 작품으로 교체했다”며 “담당 큐레이터가 작품 탈락 사유를 정확하게 고지하지 않고 잘못 전달하면서 ‘오해’가 생긴 것일뿐 ‘검열’은 아니다”고 밝혔다.

 다만, 작가와 소통 과정에서 빚어진 문제점들은 인정하면서 “작가 측이 요구한 시립미술관 홈페이지 사과문 게재, 재발방지 후속대책 등을 모두 수용하기로 했다”며 “사과문 게재는 이르면 30일 이행될 것이다”고 말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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