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용 의원 [광주아동청소년의회 두드림당]
김대용 의원 [광주아동청소년의회 두드림당]

화창한 봄날이 가고 어느덧 6월이 찾아 왔다. 국제적 위기인 코로나-19로 인해 등교는 물론 간단한 외출을 할 때에도 마스크를 착용해야하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의료진들의 노고와 선진된 시민의식이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는데 큰 역할을 해주고 있어 대한민국 국민들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렇듯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뭉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3·1운동, 광주의 5·18민주화 운동 등 대한민국은 이미 대의를 품고 한마음으로 함께한 역사가 여럿 있다. 그 중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항쟁이 있다. 바로 6·10민주항쟁이다.
2020년 6월 10일은 반독재, 민주화운동인 6·10항쟁 33주년이 되는 뜻 깊은 날이었다. 우리나라는 1963년 직선제를 통해 5, 6, 7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박 전 대통령의 1972년 유신헌법 발표와 함께 대통령 직선제를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간접선거로 바꾼 뒤 8, 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1979년 10·26 사건을 맞았다.
이후 12·12 군사쿠데타와 5·18 광주민중항쟁을 진압하며 집권한 신군부의 전두환 세력 또한 간접선거 방식으로 11, 1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전두환 정권도 박정희 정권과 마찬가지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세력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그러던 도중, 1987년 1월 14일 대학생 박종철에게 잔혹한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을 가하여 끝내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자 전두환 정권은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며 맞섰다.
이후 1987년 6월 9일 전국 각 대학생들은 집회를 열었고 교외로 진출하려는 학생들에게 경찰이 규정을 무시하고 최루탄을 발사하였는데, 이 최루탄은 이한열 열사의 후두부를 직격하여 현장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이 사건들이 발화점이 되어 다음날인 1987년 6월 10일 모든 국민들은 한 목소리로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직선제 쟁취’를 외치며 6·10 민주항쟁이 시작되었다. 이후 전두환 정권은 항복을 선언하였고 1987년 6월 29일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이었던 노태우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발표하였다. 이것이 바로 6·29 선언이다.
6월 민주항쟁 당시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는 대통령을 직접 국민투표로 선출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대용 의원 광주아동청소년의회 두드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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