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 곰순의 귀촌일기]길고양이 (1)

검은고양이(검냥이)가 먼저인지, 흰바탕에 등과 꼬리가 검은 고양이(흰검냥이)가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둘이 번갈아 가면서 옵니다. 
검은고양이(검냥이)가 먼저인지, 흰바탕에 등과 꼬리가 검은 고양이(흰검냥이)가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둘이 번갈아 가면서 옵니다. 

필자는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됐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 아내(곰순)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됐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    <편집자주>


[곰돌 곰순의 귀촌일기]길고양이 (1)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고양이들이 마당을 어슬렁 다닙니다. 사료를 한 봉지씩 사다보니 안 되겠다 싶어 쌀처럼 쌓아놓습니다. 검은고양이(검냥이)가 먼저인지, 흰바탕에 등과 꼬리가 검은 고양이(흰검냥이)가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둘이 번갈아 가면서 옵니다. 
봄날 어느 날 아침 식사하는데, 마당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립니다. 안방으로 난 창문으로 밖을 보았더니 둘이서 낭떠러지같은 마당 오른쪽 담벼락 위에서 맞닥뜨렸네요. 왼쪽은 1.5m 높이 마당이요, 오른쪽은 5m 높이의 논개울가. 아래쪽 담벼락에 검냥이, 20cm 위쪽 담벼락에 흰검냥이 위치. 5분여 동안 온 마당이 떠나갈 듯 그르렁 거리면서 기세 싸움을 하더니, 이내 다가가서 머리를 맞대면서 그르렁거리기 시작합니다. 소리가 더 치열해서 당장 치고 박고 할 기세입니다.

저러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걱정도 됩니다. 떨어져서 서로를 노려보며 다시 기세 싸움을 합니다. 밥 먹다 다시 와 보니 이제는 서로 죽 치고 앉아 먼 산을 보고 있네요. 밥을 다 먹고 와 보니 검냥이만 혼자 앉아 있습니다. 이내 천천히 일어나 위쪽 담가로 오르더니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그 후로 검냥이만 옵니다. 구역 다툼에서 승리했나 봅니다. 이제 우리집 사료는 검냥이가 독차지하겠지요.

몇 주 전 늘씬하고 눈부시게 하얀 털을 가진 예쁜 흰냥이가 마당에 등장했답니다. 마당에 나타나기 한 달 전쯤 아침 운동 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을 다리에서 보았던 고양이입니다. 다리 난간에 올라 앉아 아침 햇살을 맞이하던 그 모습이 얼마나 눈부셨던지.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여 주인이 누굴까 궁금했더랬죠. 근데 그 고양이가 우리집 마당에 나타났답니다. 슬프게도 털빛이 아름답긴 했지만 때가 많이 끼었고 몸이 좀 말랐습니다. 아, 그때는 막 버려졌던 게 아니었을지. 

담양 대치마을 농가의  마당 풍경

그런데 그 며칠 뒤 흰냥이와 검냥이 두 마리가 동시에 마당에 나타났습니다. 놀랍게도 이 구역 보스인 검냥이가 흰냥이를 쫓아내지 않습니다. 밥을 주면 둘이 서로 머리 박고 열심히 먹기만 합니다. 어떤 날은 검냥이가 먹으면 흰냥이가 고개를 들고 주위를 쳐다보고, 흰냥이가 먹으면 검냥이가 그리 하고. 그러다 삼시 세끼 다 찾아옵니다.

재작년 담양 대치 마을 주택으로 이사오면서 마당이 크다고, 개를 기른다, 고양이를 기른다 틈만 나면 가족회의를 했답니다. 결론은, 늘, 안 되는 걸로. 털 날린다, 세균이 문제다, 이웃들에 민폐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의 배설물. 아무데나 싸 놓을 건데. 그런데 한 해, 두 해 지나다 보니 서서히 길러보자는 쪽으로 조금씩 마음 자리가 이동을 합니다. 그러다 헉, 마지막 선인 임종 지켜보기를 넘지 못했습니다. 가족 모두 사별의 슬픔을, 그 고통을 이겨낼 자신이 없다는 것이지요. 다만, 찾아오는 아이들을 쫓아내지는 말고 잘 챙겨주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결정한 후로는 사료뿐만 아니라 생선뼈와 멸치도 섞어 줍니다. 가끔은 마당에서 고기를 구울 때 조금 타기라도 하면, 일부러 고양이 준다며 빼 놓기도 합니다. 근데 그게 좀 양이 많습니다. 심지어 아침 식사 때 고등어 뼈를 바르다가도 아이들을 생각하고 일부러 뼈에 붙은 살을 덜 뜯어내게 됩니다. 

어느 날 아침 식사 직전 마당에서 상추를 뜯고 있는데 흰냥이가 찾아 와서 사료를 주니 아주 잘 먹습니다. 보고 있노라니 안 되겠다 싶어서 힘내라고, 구워 놓은 고등어구이를 살이 많이 붙게 해서 머리, 뼈 등을 얼른 갔다주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걸 물고는 옆 마당을 거슬러 올라 뒷담을 넘어 갑니다. 엥, 무슨 일일까? 왜 사료처럼 여기서 먹지 않고 물고 가는 걸까? 검냥이가 아프나? 그래서 검냥이에게 가는 걸까? 좀 더 은밀한 곳에서 먹으려고 그러나? 혹시 자기 집이 있나? 

생각하다 보니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한 해, 한 해가 가고, 하루, 하루가 가고, 한 시간, 한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는데,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30대 후반 사진에 빠져 카메라 상가 유리창 앞에서 꿈도 못 꿀 비싼 가격의 카메라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아카데미과학’ 유리창 안의 장난감을 넋놓고 바라보는 소년, 바로 어린 시절의 자기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던 김두식(‘불편해도 괜찮아’ 창비)교수. 

마늘밭 마당을 나무·꽃 심어 정원으로

재작년 이사 온 후 양파와 마늘밭이었던 마당을 호박돌과 강자갈, 마사토를 들이고, 나무를 심고, 꽃을 심고, 밭도 만들어서, 상추, 열무, 토마토를 길렀습니다. 오전 집안일을 끝내면 커피 한 잔 내려 정자에 앉아 마당의 나무와 열매와 꽃과 야채들과, 눈을 돌려 뒷산 불태산과 병풍산을 보면서 행복감을 느꼈더랬죠. 내 온 노력이 다 담겨 있는, 돌 하나, 나무 하나하나에 다 스토리가 있다며 자랑스러워하면서. 


초등학교 시절 반장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장미넝쿨과 이름 모를 과실수들과 나무들로 이뤄진 정원과 이층양옥집을 보면서, 그 어린 나이에도, 우리 가족의 미래에는 결코 이런 곳에서 사는 날이 없을 거라는 걸 억누르다 보니, 감히, 놀라지도 못하고, 부러워하지도 못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재미있게 놀았던, 유년 시절, 그 어느 날의 영상. 

요즘 들어 이 영상이 왜 부쩍 자주 떠오르는 걸까요? 꿈과 깨어 있는 정신과 결기와 열정을 잊어본 적 없다면서도 일상에 매몰돼 있는 건 아닐까? 자꾸 그렇지 않다고 갈등하면 할수록, 나는 절대 그런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던 젊은 시절의 내 자신을 고집할수록, 지금의 나는 꼰대 기질이나 부리고 있는 건 아닐까? 멘토가 아닌, 꼰대가 되어 가는데도 나는 지금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아, 새벽운동을 나가는데 흰냥이와 검냥이가 왔어요. 그런데 …. 
백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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