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창 어르신 자서전](7) 공무원 은퇴 후

공무원 은퇴식 때 가족들과 찍은 사진.
공무원 은퇴식 때 가족들과 찍은 사진.

1996년 6월28일 정년퇴임으로 30여 년(1967년10월1일~1996년6월28일)간의 직장생활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니 눕고 싶으면 눕고 쉬고 싶으면 쉬고 자고 싶으면 자고….
이러한 생활이 되니 건강 유지에 적신호가 온 것 같아 40여 년 간 지속해 오던 건강체조, 등산 등 규칙적인 운동을 더욱 열심히 했으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 쌓여만 가 건강 유지, 또 생계를 위해서 취업에 적극 나섰다.
사촌 형님의 절친한 분이 ‘D산업(본사 담양읍 소재)’ 회장님으로 계셔서 형님께 부탁해 이력서를 제출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공무원들도 정년이 단축돼 고령자를 배제하는데 능력은 인정 되지만 나이가 많아서 아직까지 보류하고 있다는 형님의 말을 전해 듣고 미련없이 포기하고 생활 정보지나 또 지인들을 통해서 취업할 곳을 물색하고 있던 중 K타운 아파트 경비직을 소개 받는다.
24시간 격일제 근무로 아파트 한 동을 담당하는 일이라며 이력서를 써 가지고 가서 자치회장, 관리소장의 면접을 받아야 한다기에 찾아가서 면접을 받았다.
“공무원 생활했던 분이 경비직에 종사할 수 있을는지? 특히 입주민들에게 받게되는 멸시라 할까? 이러한 모독도 감수해야 되고, 또 여러 가지 애로 사항이 많을텐데 근무할 수 있을는지 의심스럽다”는 자치회장의 질문에 나는 “어떠한 경우라도 옳고 그른 것을 정확히 판단하고 원리 원칙을 준수하겠으며 입주민들에 대해선 최대한 봉사하는 자세로 근무하겠다”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면접을 끝낸 자치회장은 이력서를 다시 한 번 검토하면서 “경비원으로는 너무 훌륭한 것 같으니 이곳 입주민들을 위해서 봉사해줄 것이라 믿고 내일부터 나와 근무하라”고 하신다.

경비원 신분 모독에 맞서 싸워

아파트 경비원! 아파트 경비원!! 이렇게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취직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통감하고 어떠한 곳에라도 다녀야 하겠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결심했다. 이렇게 1997년 4월1일부터 아파트 경비원으로 공무원 퇴직 후 9개월 만에 경비원 근무를 시작하게 된다.
K타운 아파트 4개 동 중 내가 담당하는 동은 비교적 평수가 적은 동으로 180세대가 거주하고 있었다. 다른 동은 130세대, 평수가 넓은 동은 80세대가 거주하고 있었으며 내가 맡은 동은 세대 수가 훨씬 많았다. 등기 우편 택배 보관·전달, 주변 수시 청소, 재활용품 쓰레기 정리, 인터폰 수신, 민원 접수, 심야 야간 순찰 등 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모든 일은 내가 하기에 달렸다. 입주민들의 편익을 도모하고 여러 가지 해야할 일은 내가 좀 힘들고 괴롭더라도 성심성의껏 봉사함으로써 면접 시 회장님과 약속했던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부당한 주차나 불법 쓰레기 투기는 절대로 용납되지 않았다.
늦은 시간 고위직(?) 도청 공무원이었던 인사가 귀가하면서 통로에다 주차하기에 여기는 통로니 지하주차장에 주차해달라고 계도 했다. 그랬더니 “네가 누구인데 나에게 시비를 거느냐?” 하고 큰 소리를 치며 달려든다. 나는 경비원이란 신분을 모독하는 것 같아 그에게 대항하니 고함 소리가 나고 큰 소리가 났다. 입주민들이 놀라서 나왔고 당사자의 부인도 나와서 그 광경을 목격하고 사과드린다고 하시면서 술에 취한 사람이니 이해해 주시라고 하신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사모님께서는 나에게 더욱 친절을 베풀어 주셨고 당사자도 미안함을 느꼈는지 정중한 인사를 해서 받기도 했다. 입주민들 애로사항이나 부탁사항도 언제나 함께 했고 힘들게 들고 가는 짐을 받아서 승강기까지 옮겨줄 때면 노인들께서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씩 하신다. 명절 때가 되면 입주민들로부터 크고 작은 선물을 많이 받았다. 받는 월급은 많지 않았으나 고된 일과나 업무도 입주민들과 주고 받는 즐거움으로 잊을 수 있었다.
어느날 젊은 관리소장이 부임해서 얼마 되지 않았는데 고령자는 정리하고 젊은 사람을 채용할 방침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근무자 8명 중 제일 고령자이니 당신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채용하라고 했다. 입주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05년 8월30일 8년 동안 근무했던 아파트 경비원 생활을 미련 없이 마감했다.

작별 인사에 봉투 쥐어준 노인당

노인당에 들러서 노인들께 작별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회장 할머니께서 여기 계신 할머니들 뜻이라고 하시면서 돈 봉투를 건네주신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전무후무한 일이기에 다시 돌려주고 나오는데 할머니들 성의를 절대 무시해서는 안된다면서 기어코 쥐어줬다. 회장님의 간곡하신 말씀에 염치없이 들고 나오면서 다음 기회에 꼭 좋은 선물을 해드려야겠다고 마음 속 깊이 다짐했으나 아직까지 실천하지 못해 후회스럽고 마음 한 구석이 무겁기만 하다.
다시 실업자가 된 나는 아내와 같이 건강을 유지하며 소일하고 있던 중 우연한 기회에 K타운의 아파트 입주민이셨던 U학원 학교 교감선생님께서 나를 반갑게 맞았다. 이곳 경비원 생활을 할 때 나를 예사로 보시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우리 학교 야간 경비원이 한 사람 결원 있어 추천하니 이력서 지참해서 학교로 가 보라고 하신다.
다시 취업할 곳을 찾고 있던 중 반가운 소식이어서 단숨에 학교로 찾아갔다. 경비직은 학교에서 직접 채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용역회사 사장님과 직접 면접, 이력서 교환 후 채용돼서 2006년 5월12일부터 학교 야간 경비직으로 임명돼 근무에 들어갔다.
토요일과 일요일 또 공휴일은 24시간 종일 근무하고 평일에는 오후 5시부터 5시30분 사이 출근해 익일 7시부터 8시 사이 퇴근하는 일과이다. 경비원의 주된 임무는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것으로, 수시로 주변 순찰 및 방범 특히 화재 예방 등에 총력을 다하며 근무에 임했다. 학생들이 하교한 후 교실과 주변의 철저한 보안 점검 또 야간 순찰 등 저녁 12시에 취침, 아침 5시에 기상하여 아침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침 밥을 먹기가 바쁘게 녹초가 돼 버린다.
나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많은 고생을 하며 살아왔기에 고된 경비생활이지만 문제될 것이 없었다. 모든 일이 몸에 배이고 학교 경비 생활에 익숙해지니 학생들도 여러 선생님들께서도 친부모처럼 대해주며 더울 때는 아이스크림도 또 야간근무중 잠이 올까 싶다고 커피도 사다 주시며 많은 친절을 베푸신다.
근무하던 중 잊지 못할 에피소드 한 토막이 떠오른다. 그날은 학교에 행사(2학년 학생들 수학여행 출발)이 있어 많은 관광차와 학부모님 차량이 교내로 들어오고 있어서 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교무주임의 목소리다. 수학여행 출발 차 많은 차량과 학부모님들이 들어오고 있으니 보안등을 점등해 놓으라고 했다. 보안등은 이미 켜 놓았고 각종 차량을 안내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지금 교장선생님께서 들어오고 계시니 안내해 드려야 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다시 전화가 와서 받아 보니 통화 중 자기 말을 무시하고 먼저 전화를 끊었다고 역정을 냈다. 교장선생님께서 들어오고 계시니 안내해 드려야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지 않았느냐고 나도 항의했다. 김재창

<다음에 계속>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