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교 교수 복지상식]

생명의전화.
생명의전화.

한국인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2019년 기준으로 인구 10만명당 26.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11.3명)의 2.4배이다. 한국인은 왜 극단적 선택을 많이 하는가? 이를 예방하거나 사후 대책은 무엇일까?

자살은 주요 사망원인이다
2019년에 한국에서 자살한 사람은 1만3799명이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3349명인데, 그것의 4.1배이다. 하루 평균 자살자가 37.8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한국은 출산율이 지구촌에서 가장 낮은데, 자살률조차 높으니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정부도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자살자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2017년까지 감소세로 돌아섰던 자살률은 2018년 이후 다시 증가했다. 한국인의 사망원인으로 자살은 암, 심장질환, 폐렴, 뇌혈관질환에 이어 5위이다. 자살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찾아 낮추어야 한다. 

자살은 사회적 위험의 표식이다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이 땅에서 살기가 퍽퍽하다는 표식이다. 사회가 불안하면 자살률도 높아진다. 코로나19로 대량 실업, 사회적 고립, 불안감, 경제적 궁핍 등이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자살은 유행병과 같은 특징이 있다. ‘베르테르 효과’라고 유명한 사람이 자살하면 그(녀)를 선망하는 사람이 따라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유명한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자살하면 그 소식을 접한 사람이 모방하기도 한다. 특히,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연예인의 자살은 사회적 주목을 받기 쉽다. 청소년 중에는 연예인을 선망하고 연예인을 꿈꾸는 경우가 많다. 돈도 잘 버는 것으로 소문난 연예인이 자살하면 팬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기 쉽다. 언론이 자살한 사람이나 자살을 미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성질환이 많을수록 자살 생각이 커진다
자살 혹은 자살 생각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찾으면 자살률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만성질환이 많을수록 자살 생각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려대 안암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연구팀에 따르면, 큰 고통을 겪는 만성질환자들이 자살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에 취약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이용해 성인 1만6059명을 대상으로 동반한 만성질환의 유형·개수와 자살 생각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만성질환의 개수가 많을수록 자살 생각이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특히 만성질환이 5개 이상인 환자의 경우 만성질환이 하나도 없는 사람에 견줘 자살 생각을 가질 위험이 2.78배에 달했다.
만성질환 중 신부전(콩팥병)을 앓는 환자의 자살 생각 위험이 건강한 대조군의 4.43배나 됐다. 신부전은 혈액과 노폐물을 걸러내는 신장 혈관꽈리(사구체)의 여과 기능이 떨어져 장기적으로 제 기능을 못 하는 상태이다. 이때는 병원을 찾아 혈액에서 노폐물을 제거해주는 혈액투석이 정기적으로 필요하기에 환자의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 천식, 아토피피부염, 뇌졸중을 가진 환자도 같은 비교조건에서 자살 생각 위험이 각각 2.1배, 1.77배, 1.59배 높았다.

자살 생각은 대물림될 위험이 크다
부모의 자살 생각은 자녀에게 대물림될 수 있다. 연세대 장성인 교수팀은 청소년의 자살 생각이 부모의 자살 생각에서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이용해 부모가 있는 12∼18세 청소년 2천324명을 대상으로 부모-자식 간 자살 생각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이 결과, 조사 대상 부모의 16.1%가 최근 1년 이내에 자살 생각을 한 경험이 있었고, 자살 생각을 한 부모의 자녀 중 18.4%가 최근 1년 내 자살 생각을 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자살 생각을 하지 않았던 부모의 자녀 중에는 이런 비율이 8.9%에 머물렀다. 같은 비교 조건에서 여학생의 자살 생각 위험이 3.20배에 달해 더 큰 연관성을 보였다. 부모가 자살 생각을 할 경우에 딸에게 더 큰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자살 생각과 사건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장성인 교수는 “이번 연구는 청소년의 자살 생각에 부모의 자살 생각이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확인한 데 의미가 있다”면서 “청소년의 자살을 예방하려면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 기존 요인을 관리하는 것과 동시에 가족, 특히 부모의 정신건강과 행태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누구든지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자살 생각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생명의 전화’ 등에 전화하기 바란다. 야간이나 주말에도 무상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자살 예방을 위해 국가가 나선다
흔히 자살은 개인적인 사고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회적 대책이 절실한 사건이기도 하다. 코로나19의 장기화는 전체 국민의 우울감을 높여 자살 생각과 자살 시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제4차 코로나 관계부처·시도 협의체’에서 코로나 우울 극복을 위해  중앙부처와 시·도가 협력해 심리방역을 강화하기로 했다. 코로나19 국민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불안, 우울, 자살생각 등 주요 정신건강 지표가 코로나19 발생 이전에 비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지역사회건강조사에 비해 우울위험군(2018년 3.8%→2020년 12월 20.0%), 자살생각률(2018년 4.7%→2020년 12월 13.4%), 모두 큰 폭으로 증가해 마음 건강 회복을 위한 심리상담, 치유 프로그램 등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관계부처와 시·도는 건강한 정신건강 환경 조성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대상자 특성을 고려한 심리상담, 치유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마음의 어려움을 겪는 분을 조기 발굴해 전문상담, 회복지원 등 맞춤형 심리지원을 지속할 계획이다. 특히 찾아가는 ‘안심버스’를 2020년 1대에서 2021년 13대로 확대해 전국 5개 트라우마센터와 8개 시·도에서 운영한다. 안심버스는 정신과전문의와 정신건강전문요원이 재난현장을 찾아다니며 마음안정, 심리평가, 심리상담을 실시하고, 평상 시에는 읍·면·동 행정복지센터 또는 노인복지관 등 심리취약계층 이용시설 등에 찾아가서 마음건강 교육·심리상담 등을 제공한다.

자살 유족의 회복도 지원한다
보건복지부는 중앙심리부검센터와 함께 자살로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유족들을 돕기 위해 애도와 회복 과정을 지원하는 ‘얘기함’ 온라인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그동안 자살 유족은 갑작스레 가족을 잃었다는 슬픔에 큰 상실감을 겪지만 사회적 낙인이나 경제활동 등 현실적 문제로 전문기관을 방문해 유족 지원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보건복지부 등은 유족에게 온라인 프로그램을 통해 사별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슬픔과 애도 과정 겪어내기, 고인 없는 환경에 적응하기, 고인의 감정적 재배치와 삶을 함께 살아가기 등 4개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울러, 비슷한 경험을 한 유족이 심리적 지지를 나눌 수 있는 이야기 공간도 마련됐다. 
코로나19 상황에 마음건강을 챙기고, 갑작스런 이별로 인한 슬픔을 나누며 회복의 계기를 마련하길 기원한다. 

참고=한국생명의 전화   https://www.lifeline.or.kr
‘얘기함’ 온라인 프로그램  http://www.trt-onlineprogram.kr
이용교 <광주대학교 교수, 복지평론가>
ewelfa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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