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그림속 전라도’(강연균 외 78명) 펴내
그리운 고향, 옹골진 삶의 이야기 흥성흥성

“노오란 산수유에 쏟아지던 양광(陽光), 꽃그늘 드리우던 이끼 낀 검은 바위들…. 따뜻했다. 그 한편에 자리한 농군의 외양간, 무엇보다 눈에 들어온 누런 소의 커다란 눈망울. 오랜 시간을 곰삭힌 빛나는 봄날이었다.”

강연균 작가는 30여 년 전 구례 산동에 처음 갔을 때의 감동을 작품 ‘봄볕’에 담았다. 
“좌판을 지키는 할매들의 푸성귀 값 천원의 떨림에도 늘어진 가지를 파르르 같이 떨며, 그늘로 안부를 건네는 버들이 나는 좋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흔들려 주는 솔직함이 좋고, 들고 나는 버스의 등허리를 쓸며 ‘잘 가시라 어서 오시라’ 인사하는 이 나무가 좋다.”

이재칠 작가는 함평장 들머리에 서있는 버들 한 그루를 그렸다. 건물 들어설 자리로 잘려나가기 전에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영정사진을 마련한다는 간절함으로 그린 버들의 초상이다.

강연균_봄볕, 57-76.5, 종이에수채, 2003
강연균_봄볕, 57-76.5, 종이에수채, 2003

화가 79명의 전라도 정서와 감흥 담아

강행복 김선두 김진수 김학곤 문재성 류재현 신경호 신양호 윤남웅 이구용 이상호 전량기 정선휘 조정태 조헌 진창윤 최만식 하성흡 한희원 허달용 등 화가 79명이 전라도의 특정장소를 포착해 그림을 그리고, 그곳에 얽힌 정서와 감흥을 글에 담아 월간 ‘전라도닷컴’에 연재해 온 ‘그림속 전라도’가 같은 제목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지난 2008년부터 10여 년에 걸쳐 작가들이 기꺼이 내어준 그림과 글 모음집 ‘그림속 전라도’(전라도닷컴)를 들여다보면 전라도 산천에 스민 전라도의 역사와 정신, 사람살이를 한데 만날 수 있다.

평생을 땅을 일구며 힘든 시절을 장하게 이겨내 온 어매 아버지들이 있고, 좌절 속에서도 뜨겁게 벼려온 희망이 있으며,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선한 풍경이 있고, 마음 따뜻하게 새근거리는 일상이 있다. 가슴 일렁이게 하는 아련함이 있고, 애잔하고 짠한 그리움이 있다.

박종석 찬란한고독,533x148cm,장지 수묵채색
박종석 찬란한고독,533x148cm,장지 수묵채색

‘삶의 숨결 켜켜이’ ‘길 위의 세상, 그리운 고향’ ‘산·들·바다 물결치고’ ‘오월꽃 핀 자리’ ‘시간의 두께, 그윽한 향기’ 등 전체 5부로 구성됐다.

송만규 작가는 섬진강변 마을이야기를 그렸다. 윗집 아랫집 자꾸 비어가지만, 당산나무는 덩치가 더욱 당당해지고, 속절없이 늙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엔 그리움이 차곡차곡 쌓이는 정경이다. 

한부철 작가는 돌담 고샅길 돌아가는 어머니의 구부정한 뒷모습에 절절한 사모곡과 고향정경을 함께 담았다. 

“당신의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도 엄동설한에 자식들의 빨랫감을 들고 힘겨운 발걸음으로 빨래터를 향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저마다의 어머니로 다가온다. 고향, 그곳엔 자식의 안녕을 소원하면서 지키고 계시는 어머니가 있다. 

시대의 변화 속에 바뀌고 사라져가는 풍광들에 가닿은 애틋한 눈길도 있다. 

오견규-고불매35x46cm
오견규-고불매35x46cm

목포 유달산 아래 언덕자락에 자그만 집들이 다닥다닥 잇대 들어선 동네 온금(溫錦)동, 따뜻하고 양지바른 마을이라 해서 ‘다순구미’라고 부른다. 다순구미 동네를 둥글게 그려낸 김호원 작가는 “가난했지만 역사 속 삶의 체취와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나눈 따뜻한 정”을 불러낸다. 

조헌 작가는 새만금방조제 사업으로 이젠 옛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심포항’을 그렸다. 시간 너머의 아련함으로 다가오는 포구 풍경이다.

전정권 작가는 새만금 뻘에 세워진 장승과 솟대를 그린 ‘노을에 묻힌 새만금-생명’을 통해 되돌릴 수 없는 것들과 뭇 생명들의 아우성을 전한다.

김화순_자네 밥은 먹었능가 97×130cm acrylic on canvas 2008
김화순_자네 밥은 먹었능가 97×130cm acrylic on canvas 2008

정희승 작가는 풋풋했던 젊은 시절, 가난뱅이 전업작가 생활을 시작한 광주천 다리 건너 사직공원 부근의 밤풍경을 그렸다. ‘현실은 팍팍했고 미래는 막막했으나 젊었던’ 이들의 취기와 도취가 낭만적으로 새겨져 있다. 도시 변두리의 정다운 밤풍경과 친구들하고의 어깨동무만으로도 든든했던 시절이 한데 어우러진다. 

아름답고 이무로운 산, 들, 바다

전라도의 찬란한 산, 들, 바다 풍경은 또 어떠한가. 
이지호 작가는 산영(山影)이 길게 드리우도록 산 아래 앉아 보고 또 보고, 비로소 운무 사이로 떠오른 월출산을 영롱한 왕관처럼 그렸다. 

고인이 된 지용출(1963∼2010) 작가는 전주의 흔적을 찾는 작업 속에 온고지신의 미를 담았다. “봉우리 하나하나마다 아름다운 이름이 있는 것이 너무 행복했었다”는 작가의 말을 ‘완산칠봉’ 판화에서 새삼 확인한다. 

윤남웅_오동다방
윤남웅_오동다방

“작가는 자신이 사는 지역의 역사와 자연환경에 대한 애착과 관심을 작품을 통해 표현해야 한다”고 말하는 김맹호 작가, 용담댐 건설로 수몰된 고향마을의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 집 한 채도 소홀히 하지 않고 기록하는 것이 고향에 대한 온당한 도리라고 여긴 김학곤 작가…. 

그런 자발적 책무가 낳은 붓질들로 어머니 같은 고향땅, 전라도 산천의 진미가 펼쳐진다.

오견규 작가는 겨울 가고 봄 오는 이즈음 백양사를 찾는다. 돌담 한켠에 무심히 선 채 추위 속에서도 의연부동(毅然不動)한 벗을 만나러. 고불매(古佛梅)의 자태와 향기에 취하는 것이 그에게는 봄맞이다.

최진우_천불천탑
최진우_천불천탑

김상연 작가는 석불이란 인위(人爲)가 세월이란 짝을 만나 온것의 자연으로 가는 신비를 ‘운주사 소경’으로 그려냈다. 나무 하나 석불 하나 서 있을 뿐인데 그 여백은 바람의 소리와 흙의 냄새, 언젠가는 바다였을지 모를 물의 흔적까지 거느리고 있다. 

살아남은 자의 ‘오월’

발딛고 선 일상의 자리에서 결코 잊지 않아야 할 역사도 그림 속으로 들어왔다. 이준석 작가는 제의와 해원의 뜻을 담아 광주항쟁 그림과 운주사 석불석탑한 점씩을 엮어 180개 무늬를 수놓듯 그린 ‘화엄광주’로 오월이란 역사를 내어민다. 
그 주먹밥이 없었다면 10일간의 항쟁이 가능했을까. 김화순 작가는 한손 가득 꽉 찬 주먹밥을 내어미는 마음에 ‘오월’을 담았다. 광주 오월공동체의 꽃은 그렇게 주먹밥으로 피고, 헌혈로 피고, 사람으로 피었다. 

전정권-노을에 묻힌 새만금
전정권-노을에 묻힌 새만금

허달용 작가는 오월의 현장인 옛 전남도청을 그렸다. “80년 광주의 오월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물음이다. 최진우 작가는 무등산에 ‘천불천탑’을 정성스럽게 올려 역사 속에 아프게 스러져간 이들의 염원을 담았다.  

황풍년(전 전라도닷컴 발행인) 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는 “그리운 고향 풍경이 담긴 ‘그림속 전라도’를 들여다보면 보고 싶은 사람, 못내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르고, 부대끼며 살아온 옛 이야기 흥성흥성 들려올 것”이라며 “전라도의 그 이무로운 풍경의 아름다움에 젖어보길” 권한다. 

문의: 전라도닷컴 062-654-9085.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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