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현장 무차별적 ‘반일’운동이 놓친 것들

박고형준 활동가
박고형준 활동가

한국산연 위장 폐업에 따른 노사 갈등에 대해 경남지방노동위원회가 화해 권고한 가운데, 5월10일 일본 경찰이 한국산연 본사인 산켄전기(일본 사이타마현 니자시)에서 출근선전전을 하던 일본 시민을 연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산연 노동자와 특별한 연고가 없는 일본 시민들이 ‘한국산연 청산 철회’, ‘생존권 보장’ 등 절박한 구호를 외치는 노동조합을 돕고자, 지난해 ‘한국산연 노조를 지원하는 모임’을 결성하여 일본에서 지속적인 투쟁을 벌여왔던 것이다.

이러한 한일 연대는 여러 사회 현안에서도 확인된다.

일본에서 강제노역 사죄를 요구하며 활동하고 있는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은 코로나19 여파로 금요행동을 하지 못함에 따라, 미쓰비시 측에 사죄와 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엽서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JR(일본철도) 서일본 노동조합은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배워 자위대의 정식 군대화 반대 등 일본 내 안전과 평화를 촉구하는 투쟁을 해나가기 위해 수년 째 광주5·18 민주화운동 추모주간에 광주를 찾아 희생자들을 참배하고 기념식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일본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에 대해 일본 시민단체들이 반대 기자회견을 가졌으며,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24개국 311개 단체가 해양 방류 반대 의사 성명에 동참하였다.

한·일 시민들 국경 초월 미래 투쟁

이렇듯 한국과 일본 시민들은 국경을 초월해 서로의 경험과 희망을 공유하고, 시민들이 힘을 합쳐 안전한 노동과 환경,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노력하며, 갈등과 대립을 무너트리고 다정하게 손을 맞잡은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 한국제품 수출 규제 조치 등 일본 정부와 갈등이 확산될 때마다, 일부 교육당국과 학생들이 반일 분위기 고조를 이유로 일본시민들과의 교류 사업을 취소하거나 일본시민들을 자극하는 규탄 행동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광주시교육청은 수년 간 꾸준히 전개해온 한·일 청소년평화교류 사업을 취소하였으며, 역사적 고증이 철저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현장 친일잔재 청산 사업에 대한 성과를 만드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또한, 광주지역 일부학교 학생회는 일본 학용품과 물품을 버리는 등 일본제품 불매운동 동참을 선언하였고, 일부 대학생 단체는 ‘일본 부숴’ 등 자극적인 수식어와 이미지를 활용하여 반일운동을 독려하고 있다.

물론 최근 일본정부의 행동에 대해 필자도 우려하고 분노되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무차별적인 대응은 싹 틔워야 할 평화의 씨앗과 걷어내야 할 제국주의의 검불을 구분하지 못한 채, 한국과 일본 시민들에게 적대적 감정만 키우고 있으며,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로 인해 양국의 이미지를 오염시키고 있다.

평화의 씨앗과 제국주의 검불 구분해야

한 예로 항일운동 가문의 작곡가가 작곡했을 가능성이 있는 교가를 친일로 낙인찍어 교체하거나 친일 행적이 뚜렷하지 않은 작사가를 문제 삼아 교가를 폐기되는 등 일선 학교에 대한 친일잔재 청산 작업이 졸속으로 진행됐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출처가 불명확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관련 피해 사진이 인터넷상에 광범위하게 퍼져 ‘방사능 괴담’이 돌고 있으며, 일본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 문제를 ‘친일-반일’ 구도로 만드는 등 지금까지 어렵게 이어온 양국의 탈핵운동이 부정당할 위기에 놓여있다.

“이 모임(한국산연 노조를 지원하는 모임)의 한 회원은 ‘노동자, 노동조합에 국경은 없습니다. 우리는 한일 민중 연대의 현실적인 힘을 모아 끝까지 함께 싸우겠습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을 또 배우게 됐다.”

일본 문화단체 ‘도로코자와 노음’ 소속 우메씨가 산켄전기 앞에서 벌어진 선전전에 참가한 뒤 밝힌 소감처럼, 진정한 사회문제 해결의 힘은 대립이 극화된 시기에 양국의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일 양국의 갈등을 깨고 전 세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해 긴밀하게 시민들이 연대하고 있는 지금, 더 많은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평화를 일굴 수 있는 힘을 만들어야 하며, 그 힘이 국제사회의 미래를 설계하는 자양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박고형준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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