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 확보 토론회’ 광주시, 전문가, 주민 등 한자리에
`개발=발전, 보존=낙후’ 논리 여전 “설득과정 거쳤어야”

16일 전일빌딩 4층 광주 NGO센터 시민마루에서 `전남·일신방직 부지 공공성 확보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16일 전일빌딩 4층 광주 NGO센터 시민마루에서 `전남·일신방직 부지 공공성 확보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개발과 보존, 공공성과 경제성 사이 갈등이 첨예한 북구 임동 전남·일신방직 부지. 지난 2018년 두 공장이 평동산단으로의 이전을 결정한 이후 현재까지 부지 활용과 개발의  방향성을 둘러싸고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전방·일방 보존과 활용 어떻게 해야 할까?’ 

16일 전일빌딩 4층 광주 NGO센터 시민마루에서 `전남·일신방직 부지 공공성 확보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광주시, 각계 전문가, 주민들, 부지 세입자까지 한자리에 모여 그 밑그림을 그려보는 자리였다. 각각의 이해가 맞물린 토론회에서 `개발=발전, 보존=낙후’라는 논리가 여전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보존의 가치를 강조하며  “전남·일신방직의 경우 새로운 개발보다 보존했을 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지역을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보존할 것인가로 모아졌다.

[관련기사]전남방직·일신방직 부지엔 어떤 그림이?

전남·일신 방직 모습. 광주드림 자료 사진.
전남·일신 방직 모습. 광주드림 자료 사진.

천득염 원장 `노동의 가치’ 중요 기준

먼저 한국학호남진흥원 천득염 원장이 `무엇을 보존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발표했다.
천 원장은 “전·일방 내 200여 개의 건물 중 무엇을 보존해야 하는지, 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천 원장을 중심으로 구성된 광주시 TF·전문가 자문위 합동회의는 공장 부지 내 건축물들의 존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역사적 가치 △장소·경관적 가치 △물리적 가치 △사회문화적 가치 △지속적 활용 가치 총 5개 가치를 마련했다.

합동회의는 5개 가치 내 세부적 가치를 다시 구성했다. 역사적 가치(사건과 인물·건립시기·희소성 ·노동의 가치), 물리적 가치(공간과 형태·생산시설·재료와 구법·구조), 장소경관적 가치(도시적 맥락·산업시설경관·장소성·군집성), 사회문화적 가치(시대상·노동자의 삶·생활문화·지역공동체의 연계), 지속적 활용가치(물리적 활용성·경제적 효용성·교육적 가치·법적 활용성)으로 구분했다.

천 원장은 “특히, `노동의 가치’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라도 노동 가치가 높다면 보존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러한 가치들을 기준으로 전·일방 내 건물들을 점검하고 보존, 철거, 이전 건물을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본격적인 토론이 진행됐다. 

박재만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가 사회를 맡고, 토론자로는 함인선(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 정향자(노동실업광주센터 이사장), 조동범(전남대학교 교수), 반재신(광주광역시의회 의원), 조규흔(전남방직 사업본부장), 박한표(임동 방직공장 이전대책 주민협의체 공동대표) 씨가 참여했다. 

1960년 당시 전·일방 노동자였던 정향자 이사장은 “전·일방 내 노동의 이야기를 주목해 달라”고 발언했다.

일신방직 모습. 광주드림 자료 사진.
일신방직 모습. 광주드림 자료 사진.

주민대표 “임동은 낙후된 지역… 개발 원해”

정 이사장은 “산업화 시기 여공으로 일한 기억이 아직도 가슴 먹먹하게 남아있다. 전·일방 임동공장은 1960년 말부터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여성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서린 곳”이라며 “이 도시 어디에도 우리를 기억하는 곳은 없다. 전·일방 공장 안에는 아이들에게 전해줄 이야기가 넘친다. 이곳을 통해 미래세대에 노동의 가치, 광주의 땀과 눈물의 기억을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박한표 주민대표는 “임동은 광주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상업지구 등 개발을 통해 지역 청년들에 일자리를 마련하고 지역을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전·일방 이전 논의는 20년 전부터 나왔다. 그런데도 광주시, 전문가는 지금까지 이 공장을 방치하고 있다”며 “근대문화유산이라고들 하지만 주민들에겐 발전을 저해하는, 유해한 건물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919년 지어진 경성 방직공장 자리에는 타임스퀘어가 생겼다. 하루 방문객만 몇 천 명이다. 주민들은 경제적 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개발을 원한다”고 덧붙였다.

반재신 의원 또한 “임동, 신안동 주민들은 오랫동안 해당 공장으로 인해 지역이 낙후됐다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며 “이 부분을 전문가, 시민단체에서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시, 전문가는 주민들에 믿음을 줘야한다”며 “주민들도 TF에 참여할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야 한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이에 대해 주민들을 충분히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발언했다.

조동범 교수는 “주민들의 활용 요구와 전문가, 시민단체의 공공성 확보 입장이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일신방직 화력발전소 외부. 광주드림 자료사진
일신방직 화력발전소 외부. 광주드림 자료사진

조동범 교수 “결국 중요한 건 주민 동의”

조 교수는 “그대로 두면서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보존도 하나의 활용으로써 가치를 가진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주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없었다는 것”이라며 “처음부터 인근 주민 등 당사자들과 함께 논의하고, 그들을 설득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푸른길’의 경우, 도시철도가 이전하면서 주민들이 공간의 친환경적 이용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조성됐다. 결국 주민 동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조규흔 전남방직 사업본부장은 “광주시,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문화시설, 박물관, 복합상가, 체육시설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며 “다만, 이전 신청한 지 3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에 진전이 없다. 가능한 빨리 진행됐으면 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함인선 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는 “다양한 의견 대립에 앞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선진국 식 도시계획을 광주시가 처음 시도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며 “이번 프로젝트는 광주다운 도시 건축의 시금석”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장에는 임동 주민들도 다수 참여했다.

임동 한 주민은 “직업 특성상 서울을 자주 오간다. 서울과 비교 광주, 특히 임동은 매우 낙후돼 있다. 공장부지를 주민들에 필요한 쇼핑몰, 영화관 등 시설로 개발해 임동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다른 주민은 “임동에서 어느 순간 무등산이 안보이더라. 주먹구구식 인허가로 아파트 등 고층 건물만 잔뜩 들어섰다”며 “더 이상의 난개발은 반대한다. 공장부지 보존, 활용과 관련 전체 그림을 잘 그리고 주민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광주시에 요구했다.

세입자들 “우리에겐 생존권 문제…대책을”

전·일방 세입자들도 자신들의 입장을 하소연했다.

그린요양병원 관계자는 “전·일방 보존 및 개발 문제에서 이곳의 세입자들은 배제돼 있다. 우리의 생존 문제도 고려해 달라”라며 “전방 부지에 대한 방향이 현재까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세입자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전·일방 세입자들은 토론회가 개최된 전일빌딩 앞에서 “세입자 대책 없는 개발 인허가를 반대한다”며 집회를 열기도 했다.

전·일방 세입자들은 토론회가 개최된 전일빌딩 앞에서 “세입자 대책 없는 개발 인허가를 반대한다”며 집회를 열었다.
전·일방 세입자들은 토론회가 개최된 전일빌딩 앞에서 “세입자 대책 없는 개발 인허가를 반대한다”며 집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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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전남방직·일신방직은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중반 건축된 구조물로, 현재 당시 세워진 철골구조 화력발전소와 물 저장시설 등이 원형대로 남아 있다.

전방 부지는 16만1983㎡, 일방 부지는 14만2148㎡로 두 곳을 합하면 30만 ㎡ 대단지다.

이 부지는 지난해 7월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매각됐다. 전방부지는 3660억1400만 원, 바로 옆 일신방직 부지는 3189억8600만 원으로 거래 대금은 총 6850억 원에 이르렀다. 당시 계약금을 치르고 잔금 기한으로 설정한 게 올해 6월이다. 

광주시는 협상대상지 선정 검토 전문가 합동 TF를 구성, 현재까지 공장 건축물 보존 및 활용 가치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앞으로 TF 합동회의를 지속적으로 개최, 시민 공감 개발 계획을 마련할 계획이다.

김은유 기자 metaphor@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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