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청일의 독서일기] (19)로버트 뉴턴 펙,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표지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표지

[백청일의 독서일기] (19)로버트 뉴턴 펙,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사계절

피터팬. 어린이들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네버랜드에서 영원히 늙지 않은 채 어린이로 살아가는 아이. 팅커벨이 뿌려주는 가루를 묻히고 하늘을 날아 인간들이 사는 마을과 도시로 갈 수 있습니다. 함께 있던 아이들이 도시로 돌아가서 어른이 되지만, 피터팬은 네버랜드에서 영원히 어린이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현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이가 들고, 몸이 커지고, 익혀야 할 것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기도 어렵고, 찾았다고 해도 계속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하기 싫은 일을, 오랫동안 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세상을 열심히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변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놀라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가졌던 아이다움과 천진스러움, 순수함 등을 떠올리며 감동스런 마음으로 회상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경제가 어려워지고 쌓아야 할 스펙이 많아지다 보니 이를 회피하고 부정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고 합니다. 2000년대 ‘캥거루족’이 오늘날 늙은 부모의 연금까지 빨아먹는 ‘빨대족’(또는 ‘신캥거루족’)으로 변했다고도 합니다. 이들은 ‘피터팬 증후군’이라고 하는 ‘어른아이’ 경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네이버 백과사전).

하지만 이러한 3, 40대를 마냥 비판만 할 수도 없습니다. 그 안에는 아르바이트를 두 세 개씩 뛰면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현실을 살아가려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풀리지 않는 현실과 미래의 책임을 이들에게만 지울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오늘은 ‘어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거 같지만, 실은, ‘어른’이라는 말에는 상당한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무게를 감당하려고 하는 사람만이 ‘어른’이라는 호칭을 붙일 수 있다고도 합니다. 오늘 살펴볼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의 주인공 로버트에게서 우리는 ‘어른스러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작품의 내용과 구조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로 전체 15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로버트의 12살 4월 1일 만우절 사건으로 시작하여 13살 5월 3일 아빠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로버트는 부모님, 캐리 이모와 함께 미국 버몬트에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자전거를 사치품으로 여기고 세속적인 욕심을 부리지 않는 독실한 셰이커교인입니다. 아빠는 과수원일을 하면서도 과수원을 우리 땅으로 만들기 위해 도축장에서 일을 합니다.

4월 1일 만우절 로버트는 학교 쉬는 시간에 친구로부터 셰이커 옷이 이상하다는 놀림을 받고 집으로 도망을 칩니다. 오는 도중 풀숲에서 이웃 벤저민 태너 아저씨의 젖소 ‘행주치마’가 새끼를 낳으려 몸부림치는 걸 보게 됩니다. 송아지 머리가 나온 상태로 내달리는 행주치마를 쫓아 덤불숲을 달리다 행주치마가 멈추자 바지를 벗어 한쪽 끝을 송아지 머리에 묶습니다. 바지가 찢어지면서 행주치마는 송아지를 낳고는 쓰러져서 입을 벌린 채 신음을 합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로버트는 행주치마 입에 팔을 넣어 목구멍 안쪽에서 혹을 잡지만 행주치마는 로버트를 물고 내달립니다. 만신창이가 되어 의식이 가물가물한 상태로 태너 아저씨에게 발견되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손에 혹을 꼭 쥐고 있습니다. 태너 아저씨는 몸을 회복한 로버트를 찾아와 행주치마와 쌍둥이 송아지를 소개하고 감사의 인사로 로버트에게 아기돼지를 선물합니다. 온 몸이 하얀데 발가락에 핑크색 점이 있어서 ‘핑키’라고 부릅니다.

로버트는 학교가 끝나면 농장 일을 도우면서 핑키와 친구처럼 지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태너 아저씨의 배려로 러트랜드 전시회에 송아지와 함께 핑키도 올려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예절바른 돼지에게 주는 일 등 상’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핑키는 새끼를 낳지 못하는 돼지입니다. 너무 많이 먹어 애완용으로도 기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이번 겨울을 넘기기 어려울 정도의 병에 걸립니다. 거기에 과수원의 사과 수확도 좋지 않습니다. 결국 12월의 어느 이른 아침 핑키를 도축하게 됩니다.

아빠를 도와 핑키를 도축하는 날, 로버트는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지만 핑키를 도살하여 피와 살점이 뚝뚝 흐르는 아빠의 손에 키스를 합니다. 아빠에게 자신을 죽이는 일이 있다 해도 용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 다음 해 5월 3일 아빠는 외양간에서 주무시다 세상을 떠납니다.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로버트는 아침 일을 시작하고 엄마와 이모에게 소식을 알리고 장의사와 이웃들에게 소식을 알립니다. 아빠의 무덤을 파고, 장례식에서 상주로서 애도사를 합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저녁 식사도 끝난 후, 로버트는 과수원을 찾아 아빠에게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성실하게 노동한 냄새”

로버트는 아빠와 과수원일을 하면서 많은 대화를 합니다. 저녁 식사 후 난로 옆에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요. 이야기를 하면서 아빠는 로버트에게 많은 걸 가르칩니다. 사과벌레를 쫓기 위해 연기를 피울 때 수시로 변하는 바람의 방향에 맞춰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냥 눈으로 보지 말고 자세히 보라”고 합니다. 그 가르침은 사람에게로 이어집니다. “다른 사람을 따라 할 필요는 없어. 물건보다는 사람이 중요해. 겉보다는 속이 중요하단 말이다.”

로버트의 집은 가난합니다. 그러나 아빠는 가족과 농사지을 땅, 황소 ‘솔로몬’, 젖소 ‘데이지’, 고양이 ‘미스 사라’와 세 마리 새끼들, 아름다운 황혼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음악을 들을 수 있기에 부자라고 합니다. 5년만 일을 하면 과수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과수원일을 하면서도 도축장에서 일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날마다 아빠의 작업복에서는 도축장의 돼지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많이 노력했지만, 그래도 하루 일이 끝나면 돼지 냄새가 떠나질 않아. 그래도 네 엄마는 조금도 불평하지 않았어.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단 한 번도 내 몸에서 지독한 냄새가 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어. 언젠가 내가 냄새가 지독해서 미안하다고 엄마에게 말한 적이 있지.”

“그러니깐 엄마가 뭐래요?”

“엄마가 말하길, 나한테서 성실하게 노동한 냄새가 난다더구나. 그러니 창피하게 여길 필요가 없대.”

아빠는 글씨를 읽을 수 없어 선거를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아빠를 “머리가 비었다고”, “있는 그대로 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빠의 말을 듣고 로버트가 “마음이 아프겠어요, 아빠.” 위로하지만, 아빠는 “그렇지 않아,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고 합니다.

위의 인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엄마도 아빠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살아왔습니다. 엄마도 아빠처럼 물건보다 사람을, 겉보다 속을 더 중요시한 거지요. 아빠는 아내의 믿음과 사랑을 의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코를 찌르는 돼지 도축 냄새를, “성실하게 노동한 냄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창피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고. 아빠가 “우리는 부자”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로버트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야 이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한 번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서. 또 한 번은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장비실에 들렀을 때입니다. 그곳에서 로버트는 “내가 해야 할 일”과 그게 “바로 내 임무”라고 생각한 사람이 남긴 노동의 흔적을 보게 됩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아빠와 엄마가 말한 노동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지요.

“장비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눈을 잡아끄는 게 있었다. 아빠가 사용하던 여러 가지 도구였다. …. 노동으로 단련된 손잡이가 도금을 한 것처럼 황금색을 띠며 반들반들하게 빛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죽음을 알리는 아빠의 방식

아빠는 로버트와 대화를 하는 도중에 자신의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립니다. 이번 겨울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고. 로버트는 쉽게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아빠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빠의 말이 계속 이어지자 일어나서 아빠 옆으로 다가가 팔소매를 잡습니다. 그럼에도 아빠는 다른 곳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갑니다.

“내 말 잘 들어, 로버트. 지금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야. 현실을 직시해야 해. 피할 순 없어. 어린애처럼 그러면 안 돼.” …. “용기를 잃으면 안 돼, 로버트. 엄마와 이모를 도와야 해. 다가오는 봄부터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야. 어른이라구, 13살짜리 어른. 이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네가 책임지고 처리해야 해, 로버트. 너 외에는 책임질 사람이 없어. 너 혼자 책임져야 해.” …. “… 두 사람은 이제 힘이 없어. 너무 오랫동안 고생했기 때문이야. 네 엄마도 이제 젊은 나이가 아니야. 그리고 이모는 벌써 70세를 바라본다구.”

갑자기 일어난 일에 로버트는 너무 놀라 아빠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도. 오히려 아빠가 자신을 껴안고 쓰다듬어 주면서 위로해 주기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아빠의 반응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말을 마친 아빠는 오히려 의자에서 일어나 침실로 가버리지요.

서로가 사는 문화권에 따라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거나 임하는 방식은 다르겠지요. 한국인의 정서로는 쉽게 이해되지가 않습니다. 필자는 아빠의 관점에서 이 상황을 짐작해 보고자 합니다.

자신의 몸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처음 알았을 때 아빠는 어땠을까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임을 직감했을 때 아빠는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가장 먼저, 자신의 신세와 운명을 생각했겠지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에 대해 많은 날을 생각했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을 생각했겠지요. 자신이 가고 없을 때 과수원을 누가 돌보아야 하는지도.

아침 일찍 과수원에서 일 할 때도, 도축장에서 일을 할 때도,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과수원에서 일 할 때도, 가족들과 아침저녁 식사 하고 대화할 때도, 잠자리에 들었을 때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끊임없이 찾아왔겠지요. 아마 생각과 생각의 사이에, 시간과 시간의 흐름 그 사이에, 흘린 눈물도 참 많았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보다 더 강하게 솟구치는 건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자책감, 그럼에도 살아 남은 가족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었겠지요. 자신이 어찌 할 수 없는 시간들. 그리고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들. 이를 다시 생각해 보면, 아직, 마지막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시간들이 남아 있고, 그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겠지요.

삶은 시간처럼 흐르는 것이니, 시간이 결코 멈추지 않는 것처럼, 삶 또한 멈추어서는 안 되겠지요. 시작에는 끝이 있고, 끝은 새로운 시작을 탄생시키니, 죽음에도 불구하고 삶은 진행되는 거지요. 아빠가 로버트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이러한 가르침이 아니었을까요?


“어차피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1997년 2판 책 표지 그림. 아기 돼지 ‘핑키’와 로버트.
1997년 2판 책 표지 그림. 아기 돼지 ‘핑키’와 로버트.

사과 수확이 아주 나쁩니다. 날씨가 추워지는데 아빠는 사슴 사냥에도 실패합니다. 아빠의 권총으로는 가까이서만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12월의 어느 날, 아침 식사로 올라온 고깃국과 우유에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상태의 맛이 나게 됩니다.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보던 아빠가 한 마디 합니다.

“로버트, 이제 해치워야 하겠다.”

로버트 또한 무슨 말인지 그냥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빠를 도와 핑키를 깨워 우리로 데리고 갑니다. 마지막으로 핑키를 껴안아 주고는 핑키에게서 물러납니다. 일을 끝낸 아빠는 로버트를 멀찌감치 밀어 등을 돌려 세워 다른 쪽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로버트와 아빠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필자가 손에 꼽는 ‘명장면’입니다. 세계문학의 어느 부분에도 결코 뒤지지 않을 명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소 길지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아, 아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요.” ….

“어른이 되려면 그런 건 이겨 내야 해. 어차피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어.”

아빠의 커다란 손이 얼굴을 쓰다듬는 게 느껴졌다. 그 손은 돼지들을 죽인 손이 아니라, 엄마 손처럼 정겨운 손이었다. 아빠 손이 거칠고 차가웠다. 두 눈을 뜨고 쳐다보니, 그 손에서 돼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조금 전에 핑키를 죽인 손이었다. 아빠가 죽였다. 그래야 했기 때문이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아빠 역시 굳이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닦아 주는 아빠 손이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었다. 돼지 피가 잔뜩 묻은, 울퉁불퉁한 손가락이 가볍게 내 뺨을 쓰다듬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아빠 손을 잡아 입맞춤을 했다. 돼지 피와 살이 잔뜩 묻어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아빠 손에 키스를 퍼부었다. 설사 나를 죽이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아빠를 용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아빠가 허리를 펴고 똑바로 섰다. 커다란 키 저 편에서 겨울의 잿빛 하늘이 보였다. 나는 아빠 손을 놓지 않았다. 아빠가 나를 내려다보더니,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면서 다른 한 손을 들어 소매로 두 눈을 훔쳤다. 나는 그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가 우는 모습을 보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겨울을 보낸 후 이듬해 5월 3일 로버트는 아침에 일어나 외양간에 갑니다. 정적이 감돕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됩니다. 로버트는 달걀을 담아 부엌에 들어가 아침을 준비하는 엄마와 캐리 이모에게 소식을 알립니다. 읍내에 장의사에게도 알리고, 돌아오는 길에 이웃들에게도 알립니다. 사람들이 올 때까지 과수원 가족 묘지에 무덤을 팝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으려고 합니다. 옷이 없어 아빠의 옷을 입어 보면서 로버트는 처음으로 울부짖게 됩니다.

“하지만, 상주라기보다는 광대 모습에 가까웠다. 셔츠가 너무 컸다. 구두도 너무 커서 헐렁거렸다. 차라리 아무것도 신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는 셔츠를 갈기갈기 찢어 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외쳤다. / “하느님, 왜 이렇게 가난해야 합니까? 사는 게 지옥 같아요.”

정오에 이웃들과 아빠의 동료들이 찾아와 좁은 집안을 가득 채웁니다. 상주로서 사람들 앞에서 아빠에 대한 애도사를 합니다. 아빠를 묻고 사람들을 배웅하고 저녁식사를 한 후 피곤해 하는 엄마와 이모에게 쉬시라고 말합니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로버트는 풀벌레[들이 울어 대는 과수원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아빠에게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빠. 아빠랑 보낸 지난 13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눈앞에서 친구처럼 지내던 핑키를 사랑하는 아빠가 도축하는 걸 보았으면서도 피와 살점이 묻은 아빠의 손에 키스를 하던 로버트. 우리는 아빠의 죽음을 대하던 로버트에게서, 장례식을 준비하고 진행하던 로버트에게서 아빠의 가르침을 이해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한 것을 실천하기는 어렵지요. 그것도 이제 13살인 사람에게서는요. 그래서 로버트가 “사는 게 지옥 같아요.” 하고 울부짖을 때는 공감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무사히 장례식을 끝마치는 로버트에게서 ‘어른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아빠에게 하는 로버트의 마지막 인사는 지난 13년 동안 사랑과 감동으로 보살펴주었음을, 존경의 마음을 담아 전하는 인사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니 당연히 나이를 먹게 됩니다. 그러나 나이를 인정하지 않고 객기를 부리거나, 지나치게 앞서서 나이를 먹은 것처럼 행동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어른’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는 자주 아빠와 로버트가 나누던 무언의 대화 장면인 ‘명장면’을 떠올립니다.

사람들은 경제가 어려워지니 사는 게 만만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회피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빠처럼, 그리고 ‘어른’이 된 로버트처럼.

시간은 흐르고, 날이 밝았으니,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거지요.

백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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