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들, 진상 규명 협조 죄인의 옷 벗으라”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대통령이 된 노태우는 1988년, 5·18을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규정하면서도 5·18 때 계엄군이 일방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것이 아니라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시민과 군인, 경찰이 충돌하여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것이라고 했고, 그의 회고록에서도 사과는 없었다.. 노태우 씨 회고록 표지.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대통령이 된 노태우는 1988년, 5·18을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규정하면서도 5·18 때 계엄군이 일방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것이 아니라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시민과 군인, 경찰이 충돌하여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것이라고 했고, 그의 회고록에서도 사과는 없었다.. 노태우 씨 회고록 표지.

전두환 씨와 함께 80년 5월 광주 학살의 주범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사망했다. 89세.

지병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해온 노태우 씨는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이날 오후 1시 40분께 생을 마감했다.

전 씨와 함께 광주항쟁 무력 진압 주범인 노태우 씨의 사망이 알려지면서 5월 단체와 광주지역 정치권은 일제히 “국립묘지 안장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5·18구속부상자회·5·18기념재단 등 5월 단체는 ‘살아남은 자들은 진상규명 조사 협조하여 죄인의 옷을 벗으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 “노태우는 죽더라도 5·18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노태우의 국립묘지 안장을 반대한다”고 천명했다.

오월단체는 성명에서 “군부 쿠데타의 주동 세력, 직접 선거로 당선된 첫 대통령 노태우가 26일 향년 89세로 사망했다”면서 “군인 출신 정치인 전두환과 육사 동기인 그는 제4공화국 당시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결성해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5·18 당시 광주 시민 학살에 동참했다”고 기록했다.

이어 “6월 민주항쟁 이후 대통령이 된 노태우는 1988년, 5·18을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규정하면서도 5·18 때 계엄군이 일방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것이 아니라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시민과 군인, 경찰이 충돌하여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것이라며 책임의 본질을 흐리려 했다”면서 “그의 회고록에서도 사과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1980년 발포 책임 등 진상 규명의 핵심 열쇠를 가진자 중 한 사람 노태우는 추징금 2600여억 원을 완납하고 아들 노재헌씨를 통해 대리사죄 등 용서를 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면서도 “하지만 본인의 사죄는 물론 진상규명 관련 고백과 기록물 공개, 왜곡·조작된 회고록을 교정하지 않음으로써 끝까지 죄인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월단체는 “우리 사회는 재포장된 군부독재의 역사가 아닌, 5·18에 대한 진상규명을 다시 조명해야 한다”면서 “(살아남은 자들은 )진심어린 사죄와 증언으로 5·18진상 규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만이 죄업을 씻는 최소한의 길임을 숙고하기 바란다”고 끝맺었다.

민주당 조오섭·윤영덕 의원도 이날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노태우의 국가장 예우와 국립묘지 안장 반대’를 촉구했다.

이들은 “오랜 지병으로 투병 생활을 해오다 89세로 사망한 노태우 ‘개인’의 죽음 앞에 깊은 애도”를 표하면서 “5월 학살의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역사적 단죄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 하나로 국가장의 예우와 국립묘지에 안장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가장법은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서거한 경우에 그 장례를 경건하고 엄숙하게 집행함으로써 국민통합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취지”라면서 “국립묘지법도 국가나 사회를 위해 희생, 공헌한 사람을 안장해 그 충의와 위훈의 정신을 기리며 선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광주와 국민 앞에 진심어린 사죄와 참회가 없는 찬탈자이자 학살의 책임자를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루고 국립묘지에 안장한다면 후손들에게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정의를 이야기 할 수 없다”며 “국민이 용서하지 않았고 역사적 단죄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 국가장과 국립묘지 안장은 있을 수없다”고 주장했다.

노태우는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의 2인자로 전두환과 함께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던 책임자 중 한 명이다. 1987년 개헌 이후 치러진 첫 대통령 직접선거에서 13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이어 1996년 구속돼 반란수괴, 내란수괴, 내란목적 살인,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징역 22년6월과 추징금 2838억 원이 선고됐다.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17년형으로 감형됐고, 같은 해 12월 특별 사면됐다.
권영웅 기자 nicev@gjdream.com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