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전두환이 죽던 날, 광주에선 또 다른 죽음이 주목받았다. 고 이광영 씨. 1980년 광주항쟁 당시 계엄군에 총탄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된 5·18 피해자다.

 이후 40여년 동안 육체적·정신적 고통 속에 살았던 그는 고향 강진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하필 5월 학살자가 죽은 날 시신으로 발견됐다.

 5·18 피해 생존자들의 극단적인 선택은 이 씨 뿐만 아니다. 1980년대 25명, 1990년대 4명, 2000년대 13명 등 최소 46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항쟁 당시 그 모진 고통도 견뎠던 이들이 이후 왜 이리 허망하게 삶을 끝내고 있을까?

 이 대목에서 2019년, 5·18 39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김명희 경상대 교수(사회학과)의 자료가 재조명됐다. ‘5·18 자살의 계보학: 치유되지 않은 5·18’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다.

 국가 폭력 피해자들이 어떻게 다시 희생되는지 그 과정(루트)을 엿볼 수 있다.

 김 교수는 “5·18 생존자들의 사망 피해가 국가폭력과 특수한 국면이 초래한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판단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광주 보상법’이 5·18 사망 피해자의 사회·심리적 환경에 미친 영향이 크다.

“‘보상=특권’ 인식 시민적 지지 약화”

 우선 보상 정책이 ‘산재’ 방식을 적용하다보니 피해에 등급을 나눴고, 이게 5·18 저항공동체 내부에 균열을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또 보상 집단이 시혜를 받아야할 대상으로 인식되는 사회적 불명예가 고착화됐다고 봤다.

  이어 “보상을 특권으로 인식하는 광주 내부의 이중적 시선”이 등장하고, 이게 5·18 피해자들에 대한 시민들의 사회적 지지를 낮추는 역설적 결과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전두환 등 신군부의 근본적 가해와 별개로, 공동체 내부의 타자화·대상화로 인한 피해자의 재희생화도 간과할 수 없다는 경각심을 일깨운다.

 상대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지우고 말살한 사례는 적지 않다. 근대 유럽과 아메리카 식민지를 휩쓸었던 ‘마녀 사냥’도 그 중 하나다.

 흔히 중세의 암흑사로 치부되지만, ‘마녀사냥’은 1400년부터 미국 독립전쟁 무렵인 1775년 까지 지속된 근대의 어둔 그림자다. 이 시기 마녀 혐의로 기소된 사람이 10만 명, 처형된 사람이 5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주경철의 유럽인이야기’ ‘근대 유럽 문명은 왜 마녀를 필요로 했나’ 중)

 마녀사냥은 왜 벌어졌을까?

 역사학자 키스 토마스(1933~)의 ‘거부된 자선 모델’(charity refused model)이 이를 설명하는 논리 중 하나다. 희생자들을 관찰해 정립한 이론으로, ‘누가 죽였나?’ 가 아닌 ‘누가 죽임을 당했나?’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봤다.

“자선 거부 죄책감이 대상을 악마화”

 키스 토마스의 논리는 이렇다.

   마을에 돌봐줄 사람 하나 없는 가난한 할머니가 있다고 하자. 이웃들은 자주 식량과 우유를 제공하고 그를 보살펴왔다. 하지만 반복될수록 이웃도 부담을 느끼게 되고, 어쩌다 문전박대도 이뤄진다. 이럴 때 이웃들이라고 맘이 편할 리 없다. 내심에 죄책감이 자리한다.

 “할머니가 문전 박대를 당하면서 거친 욕을 할 수도 있고, 저주를 퍼부을 수도 있다. 우연히 그 후에 아이가 아프거나 가축들이 죽는 등의 흉사가 겹치면 할머니가 마녀로 의심받기에 이른다.”(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마녀사냥 광풍 속 이 할머니처럼 가난하고, 늙고, 말이 험하고, 성격이 모난 이들이 우선 희생양이 됐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토마스는 이를 “자선을 거부한 사람들의 죄책감이 결국 자선 대상을 악마화해 제거했다”고 논리화했다.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이른바 ‘재희생자화’가 이웃·공동체의 인식과 무관치 않음이 마녀사냥에서도 증명되는 셈이다.

 피해자에게 연대하고 공감하지 않으면 이웃과 공동체가 또 다른 차원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예의 5·18 피해자의 재희생자와 관련, 김명희 교수가 “광주의 과거청산 방식을 주도하고 있는 ‘사건-보상-의료적 치료’의 프레임을 넘어서 인권과 정의, 진실과 기억의 연대에 기초한 사회적 치유 모델 구축”을 주문한 것이 이와 상통한다하겠다.

채정희 편집국장 good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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