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우리 책들]오소리의 ‘노를 든 신부’(2019, 이야기꽃)

[작은 책방 우리 책들]오소리의 ‘노를 든 신부’(2019, 이야기꽃)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 사람들은 일 년간 또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한다. 지난 일 년이 얼마나 정신없이 지나왔는지와는 상관 없이 새로운 해에는 새로운 이름이 붙기 때문이다. 숫자가 바뀌고, 그 숫자를 발음하는 나의 어색함이 달라진다. 일상이 갑자기 일상 아닌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연초부터 포기하기도 한다. 확신보다는 갈팡질팡이 많은 시기. 이런 시기에 마음 다독일 수 있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었다.

오소리의 그림책 ‘노를 든 신부’(2019, 이야기꽃)는 한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외딴 섬의 친구들이 전부 결혼하고 떠나간 바람에 외로운 소녀. 그는 자신 역시 신부가 되기로 한다. 가족에게 드레스와 노 하나를 받아 바닷가로 향한다. 짝을 지어 떠나는 이들이 많지만, 배를 가진 사람 중 신부에게 마음에 드는 자는 없었다. 노가 하나뿐이라며 거부하는 사람, 신부 여럿을 한 번에 거두어 가려는 사람, 노를 저을 필요도 없는 유람선을 가진 사람… 신부가 무엇을 원하는지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들’은 신부가 찾던 짝이 아니다.

이 모든 일이 재미없다고 불평하며 걸음을 옮기다가, 신부는 우연히 늪에 빠진 사냥꾼을 만난다. 밧줄이 없어 허둥대다가, 들고 있던 노를 사용해서 그를 구해주게 된다! 노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었다. 짝을 만나고 배를 마련해 노를 젓는 것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었다.

그 때부터 신부는 사람을 구하고, 과일나무를 털고, 요리를 하거나 격투를 한다. 희고 치맛자락이 길디 긴 신부 드레스와 어울리는 일들이 아니지만, 신부는 그냥, ‘할 수 있으니 한다’. 심지어는 야구를 할 수도 있다! 출중한 실력으로 그는 사람들을 놀래킨다.

타―악!
홈런 공이 끝없이 날아갔습니다. 오오! 사람들이 신부를 보며 환호했습니다.
유명한 야구팀의 감독들이 소문을 듣고, 바다 건너 신부를 찾아왔습니다.
감독들은 앞 다투어 신부를 자기 팀에 데려가려 했습니다.
신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추운 지방의 야구팀과 계약했습니다.
“왜냐하면, 하얀 눈을 보고 싶으니까요!”
‘노를 든 신부’ 중에서.

노를 가지고 새로운 일들을 해내는 것 역시 즐거웠지만, 신부에게는 새로운 성취나 멋진 성공담이 필요하지 않았다. 야구선수로서 성공해 큰 돈을 벌거나, 최고로 강한 팀에서 명성을 쌓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이었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 외딴 섬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하얀 눈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처음처럼 사소한 이유로 새로운 세계에 성큼 다가간다.

누군가는 신부가 그림책의 도입에서 짝을 찾고자 한 선택을 걱정했을지 모른다. ‘심심하면 놀 방법을 찾으면 되잖아?’라든지, ‘왜 꼭 남이 하는 일을 따라해야 해?’라든지 하는 질문들은 요즈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질문들이다. 하지만 정말 그것을 ‘잘못되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좋게 흘러간 일’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신부는 여전히 신부인 채로 흰 눈을 보기 위해 흰 드레스를 입고 비행기에 오른다. 드레스와 노는 소녀의 가족이 신부가 되라며 선물한 물건들이지만, 이제 그것은 신부를 한계짓는 물건이 아니라 신부가 걸어온 길의 일부가 되었다.

모두가 말하는 일반적인 기준에 스스로를 맞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기준을 거부하는 것은 수십 배 더 어렵다. 신년을 맞아 무엇 하나 해보려고 해도 손꼽히는 걱정이 많은 세상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여전히 드레스를 입고 노를 든 채 야구하는 신부에게 감히 충고를 던질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 역시 각자의 쌩뚱맞은 야구복과 야구배트를 찾아보아야 할까?

갈팡질팡 마음이 흔들릴 때 무게를 잡고 결심을 했다가는 늪에 빠진 사냥꾼을 도와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밧줄이 없으면 노로, 야구복이 없으면 드레스로 우리는 달리고 생각하고 웃을 수 있다. 인생을 갈아엎지 않아도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수 있다. 2022년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나날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문의 062-954-9420
호수 (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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