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우리 책들]‘골목에서 소리가 난다’(2007, 사계절)

‘골목에서 소리가 난다’(2007, 사계절)
‘골목에서 소리가 난다’(2007, 사계절)

[작은 책방 우리 책들]‘골목에서 소리가 난다’(2007, 사계절)

21년 6월, 동구 학동 주택 철거 현장에서 건물이 무너지며 시내버스를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체 계획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안전 관리 담당자는 사고 현장에 없었다. 도로에 가득 찬 건물 잔해의 영상이 오후 뉴스에 보도되며 사람들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하였다.

19년 7월 서울에서도 철거 중이던 건물이 도로 위로 붕괴한 사건이 있었다. 정부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21년의 사고는 멈출 수 없었다. 22년의 사고 역시 막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1월 11일, 서구 화정동에서 신축 아파트가 붕괴하며 하청 노동자 6명이 실종됐다.

비단 건물 붕괴뿐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서는 잘못된 작업환경 때문에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노동자가 한 사람이 아닌 계산기 속 숫자로 여겨질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본이 가장 중요할 때, 일상의 행복을 찾는 것보다 빚을 내서라도 내 집 마련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여겨질 때, 부동산 시장이 선거의 변수가 될 때, 가진 사람은 더욱 많이 가지게 되고 여유 없는 사람은 더욱 힘겨워질 때. 그 모든 것들이 노동자에게 자신의 안전과 생명을 절약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정지혜 작가의 그림과 김장성 작가의 글이 만나 쓰인 ‘골목에서 소리가 난다’(2007, 사계절)는 이런 나날들에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높지 않은 건물들이 즐비하고, 그사이 구불구불한 골목들이 좁다. 평평하지 않은 콘크리트 바닥을 짚으며 걸어가는 사람들이 거기 있다. 뛰놀고 고무줄 노는 어린아이들, 대화에 반주를 곁들인 삼거리 슈퍼 앞 어르신들, 크고 굵은 글씨를 유리문에 붙인 쌀집, 실비식당, 새마을 이발소……

‘골목에서 소리가 난다’(2007, 사계절)
‘골목에서 소리가 난다’(2007, 사계절)

골목에서 소리가 난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소리,
소리, 소리, 소리, 소리,
골목에서 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저물녘에……
사·라·져·간·다
‘골목에서 소리가 난다’ 중에서.

이곳저곳 갈라진 누런 회벽이나, 다 삭은 철제 빗물받이 같은 것들. 이러한 동네엔 언덕 위를 향해 길 한참 걸으면 도달하게 되는 ‘높은 곳’이 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그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차가운 공기를 숨 쉬게 될 것 같은 풍경이 그려져 있다.

빼곡하고 낮은 건물들 너머로 하늘 높이 오르고 있는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철제 슬레이트 지붕 위에 비닐이 덮인 것처럼 공사 중인 아파트에도 층층이 색색의 비닐이 걸려 있다.

‘골목에서 소리가 난다’(2007, 사계절)
‘골목에서 소리가 난다’(2007, 사계절)

골목에는 소리가 가득하다. 정돈되지 않아서 나는 소리다. 바닥은 깔끔하지 않아 턱턱 걸리는 것이 많고, 삐걱거리는 물건들이 바람결에도 요란스럽다. 아파트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 깔끔하게 짜 맞춰진 것들이 인간을 아주 평안하게 만든다.

거슬리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편리를 사람들은 매일매일 더 강렬하게 원하고, 익숙해진 뒤에는 한층 더 결벽하게 원한다. 그렇게 수많은 욕망 위로 부지기수로 올라가는 아파트 건물들은 아주 정당해진다.

‘골목에서 소리가 난다’(2007, 사계절)
‘골목에서 소리가 난다’(2007, 사계절)

이상한 일이다. 편리에 대한 마음은 악하지 않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 욕망으로 이득을 얻고자 하는 생각은 뭉칠수록 악해져 간다. 사람들이 바라니까, 수요가 있으니까, 당연히 챙겨야 할 사람들을 제치고 결과를 보려 한다. 그렇게 골목에는 점점 소리가 사라지고, 나날이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난다.

'골목에서 소리가 난다'는 그 사라져가는 것들을, 부서지기 전의 것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듯이 묵묵한 풍경을 소개한다.

지난 15일, 학동 붕괴 사고의 유족이 화정동 아이파크 사고 현장을 찾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고가 반복되어도 변하는 것은 없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라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우리는 편리함을 위해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름을, 삶을, 우리의 편리함 속에서 너무 쉽게 잊는다. 영원히 골목에 머무를 수는 없겠지만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편리함’과 ‘안정’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과연 괜찮은 일인지 질문할 순 있을 것이다.

사소한 질문에는 세상을 바꾸고 골목을 기억하는 힘이 있다. 완전한 저물녘 되어 사라지기 전, 그곳의 소리를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문의 062-954-9420
호수 (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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