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자영업자들 분위기 “그러거나, 말거나”
“큰 마트 영업 제한 유지한다고 달라질 것 없다”

광주 서구 마륵동에 위치한 한 소형마트. 사진과 본문은  
광주 서구 마륵동에 위치한 한 소형마트. 사진과 본문은 관련 없음.

 윤석열 정부가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을 대상으로 하던 `의무 휴업’ 제도를 10년 만에 폐지하겠다며 논의에 나섰다. 이에 골목상권과 영세 상인들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미 설 자리를 잃은 상처는 곪다 못해 터진 상황으로 보여졌다.

“마트가 하루 더 한다고 우리 장사가 달라질 것 같느냐, 마트 안 쉬는 날 가서 장보지 우리 가게 와서 장보지 않는다”며 상인들이 내뱉는 자조 섞인 한숨에서 `자포자기’를 감지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4일 제20대 대통령실에 따르면, 지난달 21일부터 31일까지 진행한 `국민제안 TOP 10’ 투표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1위에 올랐다.

이 제안은 57만7415명의 지지를 받았으며, 대형마트 격주 의무휴업 규정을 폐지하고 기업 자율에 맡기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대통령실은 제안과 관련해 “국민제안은 추후 국민의 뜻이 왜곡 없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오직 국민 여러분만 바라보고, 제안해주신 내용을 잘 경청하여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시행 10년 만에 폐지 수순에 돌입하며,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반발이 이어졌다.

대구광역시에 위치한 서문시장 상가연합회는 현수막을 내걸고 폐지 반대 의견을 표출했고,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조연맹 역시 기자회견을 열고 폐지 반대를 주장했다. 전국상인연합회 또한 전국 전통시장 현수막 게시를 예고하며, 폐지 반대 입장을 강조했다.

 이에 본보는 골목 상권의 목소리를 듣고자 취재를 기획했다. 시장 상인들의 반대만큼, 동네에서 슈퍼나 소형 마트를 운영하는 상인들 역시 이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영세 상인들은 이미 체념한듯 달라질 게 없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상무지구 일대의 나들가게와 소형마트를 돌며 업주들의 이야기를 청취했으나 생각보다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서구 치평동에서 E마트를 운영하는 업주는 대형마트 의무 휴업 폐지에 대한 의견을 묻자 “별 생각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대형마트가 하루 쉬고 이틀 쉬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대형마트가 쉬어봤자 사람들은 그 전날이나 그 다음날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지 여기서 장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D마트를 운영하는 업주 역시 마찬가지. 그는 “대형마트가 쉬어봤자 소용이 없다”며 “어차피 우리 가게에서 사가는건 담배나 음료 정도”라고 언급했다.

또 “우리 가게가 한때는 장사가 잘 됐었다”면서 “지금은 한 집 건너 한 집이 장사를 하고 있으니 돈을 벌 수가 없다”며 한탄했다.

이어 “상권이 좋다 싶으면 슈퍼든 편의점이든 우후죽순으로 들어온다”며 “여기도 옆에 편의점이랑 마트 있고 건너에 편의점이 있는데 어떻게 장사를 하겠냐”고 지적했다.

 L마트 업주는 “대형 마트만 문제라고 볼 수 있겠느냐”며 “대형 마트가 문 닫으면 저 밑에 식자재 마트 같은 곳으로는 손님이 조금이라도 있을지 몰라도 여기 와서 장보려는 손님은 없다”고 한탄했다.

그 역시 “대형마트가 없어진다고 해도 우리 같은 가게들이 살아나겠느냐”며 “그냥 현실에 맞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질문 자체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업주도 있었다.

B마트 업주는 “보면 모르냐, 점심 시간인데도 손님 한 명 없지 않느냐”며 “여기 1시간만 앉아서 몇 명이나 오는지 세보고 물어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이들로부터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무뎌짐’과 `체념’이었다.

이미 오랜 기간 손님을 빼앗겨오고 생계를 위협당한 탓에 더이상 반대의 목소리도, 골목 상권을 살려달라는 호소도 힘든 상태임이 느껴졌다.

골목 상권을 피말리게 한 대형 마트도, 기업형 슈퍼마켓도 이들에게는 더이상 원망을 쏟아낼 힘 조차 바닥나버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미 상처가 곪아서 터졌다고 해도, 그 상처를 썩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기업 뿐만 아니라 영세한 상인들도 함께 상생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이번 정부의 의무 휴업 폐지 추진은 안타까움이 크게 느껴진다.

특히, `기업인’ 출신 대통령이 기업을 규제하기 위해 기업과의 법적 다툼까지 불사하며 만든 최소한의 법 장치를 `법조인’ 출신 대통령이 무력화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더 큰 아쉬움이 느껴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영세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한규빈 기자 gangstar@gjdream.com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