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사적지인 광주 동구 상무관에 전시된 예술작품 '검은 비' 앞에서 한 학생이 추모하고 있는 모습.
5·18 사적지인 광주 동구 상무관에 전시된 예술작품 '검은 비' 앞에서 한 학생이 추모하고 있는 모습.

 8.5m(가로)*2.5m(세로) 검은색 단색회화,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지난 2000년부터 작가가 100kg이 넘는 쌀에 유화물감을 섞어 만든 검은쌀의 질감이 슬프게 그러나 빛으로 다가온다.

 쌀 한 톨은 작은 우주이며 생명과 죽음을 상징한다. 그리고 ‘검은쌀’ 로 덮혀있는 검은 표면은 모든 빛을 품고 있어 슬픔과 상처를 조용하고 따듯하게 안아주고 모두의 빛이 되는 작품이다.

 지난 2014년 여름 독일에서 3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낸 정영창 작가는 당시 독일에서 비엔날레 특별전 <달콤한 이슬, 1980년 그 후> 초대 작가로서 광주에 와 있었다.

 틈나는대로 오월과 관련된 장소를 돌아보며 현시대에서 바라본 새로운 5월 작품들을 구상하던 어느날 작가는 도청 맞은편에 있는 상무관을 찾았다. 상무관은 5.18민주화 운동 38주년 기념전으로 ’<검은비(black memorial)>작품이 전시 되기 전까지 문이 닫겨 있었다.

 상무관에 작품이 설치된 지난 2018년 이후 <검은비> 작품 앞에서 여러 예술가들은 다양한 예술 행위를 하였고, 외부에서의 방문, 수많은 시민들은 헌화하며 위로하고 추모하는 발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동안 광주 5·18미술은 민중미술과 한국리얼리즘 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생성했다. 생생한 언어로 그 이전에 만나지 못했던 충격적인 장면을 주저함 없이 작품으로 재현해냈다. 그럼으로써 광주의 진실을 드러내고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미술의 큰 흐름 속에서 민중미술이라는 한 시대의 정신이 살아있는 현장 미술의 지평을 넓혔다.

 정영창 작가의 검은색 모노크롬(monochrome) 작업 <검은비>는 광주 5·18을 주제로 회화적으로 재구성했음에도 구체적 장소와 인물이 없다. 그래서일 것이다. 작품의 대상이나 이미지 범주에 종속되기 보다 성찰을 제공한다. 보는 이의 눈이나 감정보다는 정신을 힘껏 끌어들인다. 광주 5·18 예술에 대한 새로운 태도와 감수성을 제공한다.

 이 처럼 작품 <검은비>는 지금 여기의 동시대적 광주 5·18 예술에 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내포하면서 아울러 궁극적으로는 광주 5·18 미술의 맥락화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상무관 복원 공사와 맛물려 정영창 작가가 광주시에 헌정한 <검은비>의 존치, 철거 여부가 논란 중이다.

 <검은비>작품 철거 논란 이후 몇차례의 예술가와 시민모임이 열렸다. 작품을 존치하되 작품을 벽면으로 이동하여 공사에 지장이 없도록 하자는 중립안을 광주시에 보냈으며, 상무관 앞에서 존치를 위한 성명서 발표 퍼포먼스가 있었다.

 광주시는 광주시민과 오월 영령에게 헌정한 <검은비>를 이제와서 철거 해야 한다는 입장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향후에 행해질 상무관 복원 사업에 대한 내용적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알길이 없다.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역사 보존·복원은 의도된 ‘단절된 과거’만을 전승하는 것이 아닌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가 말했듯이 “인류의 미래에 대한 현재 세대와 과거의 대화” 가 되어야 할 것이다.

 <검은비>앞에서 누구나 언제나 추모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 하도록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상무관 검은비 존치를 위한 예술인과 시민들의 모임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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