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디 푸른 대나무향연

2004-04-30     이정우
새처럼 하늘을 날며 담양 가사문화권 일대를 굽어본다. 하늘로 곧게 뻗은 굵은 대나무숲 복판에 앉아 보기도 하고, 가만히 귀기울여 이파리들이 서로 몸 부비는 소리도 들어 본다. 곧고 푸르고 텅빈 대나무가 가득하다.
담양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송필용씨가 `죽림의 땅’이라는 제목으로 신세계갤러리에서 대나무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22∼29일(26일 휴관) 열리는 송씨의 전시회는 담양군 대나무축제(4월30~5월5일)의 전야제 격. 축제추진위가 주최한 전시회다.
80년대 민중미술의 화풍을 구현하면서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시작한 송씨는 줄곧 우리 땅의 `풍경’과 그 속에서 일궈지는 `역사’에 천착해왔다.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유채나 아크릴 같은 물감을 사용하는데도 마침내는 한 폭의 동양 산수화 같은 질감의 작품을 내놓아 신선한 느낌을 안겨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담양땅의 서정이 가득한 30여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어디선가 봤던 것만 같은, 그러나 딱 꼬집어 그 어디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그림이다. 16~24일 나인갤러리에서 29점을 선보이고 있는 박구환씨의 판화작품이 그렇다. 어느 장르보다 재료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판화작업에서, 박씨는 가느다란 선의 느낌이 살아 나는 베니어판을 작품의 재료로 선택했다. 아마도 소리라는 `선율’을 잡아내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전시 제목이 `소리의 바다’다.
박씨의 작품은 깎고 찍는 일을 여러번 반복해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 판화의 원재료는 사라져 버리는 `소멸기법’을 사용했다. 그의 작품이, 작정하고 들여다 보면 혼합색인데, 얼핏 보면 원색의 느낌을 주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색 위에 색을 거듭 찍어 겹친 색(섞이는 게 아니라)이내는 효과다. 바다 물결들이 부딪쳐 소리를 내는 것과 같은 이치로 이해된다.
박씨는 “삶의 가락과 참된 진리가 서려있는 바다의 큰 외침을 나의 언어로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바다뿐만 아니라 그것이 내는 소리까지를 온전히 베니어판의 결 속에 담고 싶었다는 말로 들린다. 그 바다는, 어디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흐르는 굴곡으로 보아 전라도 바다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