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와 골프장에 패인 산들
[호남정맥대탐사]<8> 북치-슬치-쑥고개
어느새 하늘이 높고 푸른 가을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선 탐사대원들이 도착한 곳은 완주군 상관면과 임실군 관촌면의 경계인 북치.
이번 탐사구간은 호남정맥 8번째 산행이다. 북치를 출발해 슬치, 쑥고개를 지나는 총 16km 구간이다. 지난 6월 호남정맥 첫 탐사를 시작한 이래 5개월 째에 접어들었다. 이날 구간을 마치면 호남정맥 전북 구간 200여 km의 절반가량을 마치게 된다.
오전 8시쯤 탐사대원 10여 명은 잠시 몸을 푼 뒤 발걸음을 뗐다. 전북녹색연합 한승우 사무국장은 늘 그랬듯이 밀짚모자를 쓰고 남방을 걸쳤다. 풍수지리가 이안구 선생은 작은 배낭과 함께 지도를 한손에 들었고 이계철 군장대 교수는 가벼운 차림으로 산행에 동참했다.
이번 산행은 해발 300∼400m 높이의 완만한 산줄기를 타는 것이어서 그리 힘이 들지 않을 것이라는 한 국장의 말이 위안으로 다가왔다. 발걸음을 옮긴 지 얼마되지 않아 대원들은 울타리가 둘러처진 인삼밭을 만났다.
산 파고든 경작지와 무덤
이번 산행에선 경작지와 무덤을 자주 목격했다. 지금까지 산행에서 본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한승우 국장은 “좋게 보면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호남정맥 등산부까지 경작지로 활용되고 있는 것은 좀 아쉽다”고 말했다.
정오가 가까워지고 탐사대원들은 슬치에 다다랐다. 슬치고개는 임실 관촌에서 완주 상관으로 넘어오는 고개로 옛날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했을 때 남원에서 임실을 거쳐 전주로 들어오는 관문 역할을 한 곳이다.
슬치로 내려오자 빽빽이 들어선 모텔이 눈에 들어왔다. 이안구 씨는 한 모텔을 가리키더니 “호남정맥 줄기가 정확히 저 모텔을 가로질러 저쪽으로 지나간다. 맥이 지나가는 곳으로 17번 국도가 났지만 이곳은 맥이 끊어지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옆에 있던 한승우 국장도 한 마디 보탠다. 그는 “경관적으로 호남정맥을 지나는 구간에 모텔이 즐비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씁쓸해 했다.
정오께 슬치에서 점심을 해결한 대원들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오후 산행을 이어갔다. 슬치마을을 지나 대원들은 완만한 산줄기를 걸었다. 주위의 풍경을 둘러보고, 사방이 확 트인 곳이 나오면 어김없이 저 멀리 보이는 산이 어떤 산인지 설명하기 분주했다.
▲슬치마을을 지나 쑥고개로 향하고 있는 탐사대원들. |
탐사기간 세 번째 맞닥뜨린 골프장
오후 2시쯤 도로 위를 지나는 생태통로를 지났다. 도로 옆 벽면을 급경사로 깎아내린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한 국장은 “이곳은 터널 형태로 뚫었어야 했는데 과도한 절개로 보기에 좋지 않다”고 했다. 이어 대원들은 전주CC 골프장을 먼 발치에서 바라봤다. 진안 부귀면 송정 써미트 골프장과 만덕산 밑자락에 위치한 OK골프장에 이어 호남정맥 탐사 구간에서 맞닥뜨린 세 번째 골프장이다.
골프장을 짓는 사람들이나 골프장 허가를 내준 관 모두 이곳이 호남정맥 경관을 헤치고 있다는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했다. 어쩌면 호남정맥이라는 사실조차 몰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오후 3시50분쯤 대원들은 군부대에서 설치한 철조망을 지나 탐사 막바지에 이르렀다. 앞으로 1시간 반 정도를 더 가면 산행 종착지인 쑥고개에 도착한다. 저녁 햇살이 산을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 대원들은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즐비한 이국적인 풍경에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풍수지리연구가 이 씨는 “이 곳은 산림목장이나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마실길을 조성해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했다. 그 말을 들은 대원들은 다들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며 맞장구를 쳤다.
산행 종점인 쑥고개 완주군 내애리 마을. 가을 정취가 한껏 느껴지는 내애리 마을은 가끔씩 노인들만 보일 뿐 조용했다. 대원들 모두 긴 산행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으나 종착지에 도착하자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다음 산행은 쑥고개에서 경각산을 지나 완주 영암부락재까지 14km 구간이다.
글=새전북신문 하종진 기자
사진=새전북신문 황성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