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을 듣고 싶으세요?
[조현미 생활심리] ‘내가 저 입장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자문을…
산책하다 발목을 삐었다. 주변 사람에게 울고 싶을 만큼 아팠다고 했더니 조심해서 걷지, 병원은 갔냐, 내일은 더 아플거야, 그쪽 길은 별로니까 앞으로 거기로 가지마 등등의 말을 들었다. 아프면 병원 가고 조심해야 한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들으니 발목 통증보다 화가 더 났다. 위로는 못 할망정 부주의해서 다친 것 같다는 꾸지람처럼 들려서.
주말에 임용시험을 보는 여자친구를 시험이 끝나면 만나기로 했는데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단다. 그의 여자친구는 올해 세 번째 임용시험을 보는데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놀러 다니느라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아서 분명 시험 끝나면 힘들어 할 것이라고 했다. 노느라 시험을 망친 것인데 어떤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단다. 정신 차리고 내년에 더 열심히 하면 분명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위로(?)를 하겠단다. 그런데 이게 위로의 말인가? 열심히 안 했다며 나무라는 것이지.
위와 같은 상황에서 당신은 어떤 말을 듣고 싶은가. 더 열심히 하라는 조언인가 아니면 병원에 가라는 충고, 그것도 아니면 정신을 딴 데 팔지 말라는 책망인가. 그보다는 ‘많이 아프냐’며 ‘아프겠다’고 ‘마치 자신이 아픈 것처럼’ 함께 아파해주는 말인가. 아마도 후자처럼 자신의 아픔이나 실패에 공감해 주는 말을 듣고 싶을 것이다. 이렇듯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은 공감인데 남에게 해주는 말은 조언이나 충고, 판단이나 비난이 담긴 말을 하는 건 왜일까.
누군가의 말을 듣고 나면 자신도 무슨 말인가를 해줘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여기기 때문은 아닌지. 이왕이면 도움이 되는 말들. 그렇다 보니 아프다고 하면 ‘반사적으로’ 약은 먹었냐, 내일은 더 아플 것는 등의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한다. 상대방도 분명 약을 먹어야 하고 더 아플 것이라는 것도 아는데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뭘까를 생각해 보지 않고 당장 반응해줘야 할 것 같기 때문은 아닐지. 그녀(혹은 그)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 혹시 병원에 같이 가달라고, 혹은 내일 출근을 못 할 것 같다는 밑밥.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아플 때 병원을 같이 가고, 대신 일을 해주는 도움을 바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상상해 보자. 시험 실패로 힘들 때 ‘힘들다’라고 누구에게 말하고 싶은가. 가족에게는 미안해서 막연하게 아는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울까봐 힘들다는 말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나를 이해해 줄 것 같은 사람, 친한 사람,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면 어떤가.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속마음을 비추는 거. 즉, 힘들다는 말을 하는 이유는 ‘당신은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을 거야’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만큼은 나를 평가하고 비난하지 않으면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 이런 기대와 바람을 가지고 당신에게 속마음을 비추었을 것이다. 이런 기대가 좌절되면 우리는 마음을 닫고 더 이상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임용에 실패한 여자친구에게 ‘정신차리고 (평가) ’공부하라는 남자친구의 조언은 어쩌면 ‘이제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는 말과도 같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병원은 갔어? 의사가 뭐래? 얼마나 걸린데? 많이 불편할 건데 힘들어서 어쩌냐. 듣기도 말하면서 기분 좋아지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말은 알면서도 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왠지 공감해 주면 계속 친구들과 놀 것 같고, 잘못된 행동을 옹호해 주는 것 같아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도움이 되는 따끔한 충고 한마디가 더 좋을 것 같다는 유혹을 느낄 것이다. 혹은 누군가에게 공감을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나 느낌’은 포기하고 무조건 상대방의 느낌을 받아줘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먼저 내 생각이나 느낌은 잠시 내려놓고, ‘내가 저 입장이라면 어떤 기분일까’라고 스스로 질문해 보자. ‘지금 이 말을 하는 저 사람은 지금 이런 마음, 이런 기분이겠구나’하고 그냥 느껴보자. 그런 다음 ‘지금 마음이 어때?’ 하고 물어보면 된다.
조현미 <심리상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