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조현미의 생활심리] "당신에게 내가 중요한 사람인가요?"
빨랫감을 빨래 바구니에 넣지 않는다고 싸웠단다. 씻고 나와서 가져다 넣으려 했는데 그새 아내가 치우고 잔소리를 한다. 그러면서 회사에서 일은 제대로 하냐는 소리가 들렸고 화가 났다. 아니 빨래를 바구니에 넣는 것과 회사 일이 무슨 상관이 있냐고 따졌다. 그렇게 시작된 싸움이 내가 집안일 하느라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며 아내가 울음을 터트렸다. 나도 힘든데 도대체 무얼 잘못한 건지 모르겠다.
제자리에 물건을 두면 찾기가 쉽다고 말하는 남편은 외출 후 옷을 벗어 아무 데나 걸쳐놓는 아내가 정신없게 느껴진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정해진 곳에 옷을 걸어두면 되는 것인데 그는 아내의 무신경함을 꼭 집어서 가리킨다. 그런 지적을 한 두 해 받던 아내는 어느 날 가족 외출을 하려다 차 키를 찾지 못해 남편에게 실컷 잔소리를 들었다. 택시를 타고 가다 윗주머니를 만져보니 키가 있었다. 남편 잔소리를 염려해 미리 챙겨두었는데 깜박 잊고 있었다. 이후 남편과 대화는 잔소리라고 생각되고 점차 입을 닫고 말을 섞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 여겼다.
누가 잘못했을까. 물건을 제자리에 놓지 않는 사람? 사소한 일로 사람을 몰아세우는 사람?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드는가. 하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제자리에 갖다 놓으려 했으나 실패했을 뿐이다. 그런데 아내가 사소한 것으로 화를 내니까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지’라는 마음이 생기고 왜 그렇게 작은 일로 ‘나를 힘들게 하는 걸까’라며 억울해한다면. 원인이 결과가 되고, 그 결과는 다시 원인이 되어 어쩌면 이 싸움의 끝은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아내가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라고 할 때 상대도 ‘나도 힘들다’라고 말하면 아내는 ‘힘들다는데 나를 외면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네가 그러고도 내 남편이냐’라고 말하면 할수록 서로가 증오스러울 테니까.
부부가 싸우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물건을 제자리에 놓지 않는 상대가 싫어서, 미워서 싸울까 아니면. 무엇이 뒤집어진 양말 짝을 보고 피를 역류시킬까. 무엇이 나를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나게 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할까. 부부싸움을 애착으로 설명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부부는 작고 사소한 일로 싸우지 않는다. 무언가 화를 낼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소소한 것이 아니라 ‘실존’과 ‘내 가치’를 가지고 싸운다는 거다. 부부싸움은 상대가 밉고 싫어서가 아니라 ‘당신에게 내가 중요한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이란다. 양말을 뒤집지 않고 벗어 놓는 ‘이 작은 부탁하나를 못 들어주는’ 배우자의 태도 말이다.
당신한테 내가 소중한 존재인가요? 그렇다고 끄덕인다면 이제 소중한 존재를 아무렇게나 막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대가 실수하고 잘못하더라도 묵묵히 그것을 받아들이고 용기를 북돋우거나 감싸 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상대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경험하고 둘 사이는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랑을 받아서 욕구가 충족되어 즐겁고, 행복하고 희열을 느끼는 것과 사랑을 받지 못해 거절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없는 상태다. 내가 실수하고 일이 잘못되어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도 상대방으로부터 거절당하지 않고 인정받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사랑이다.
상대를 사랑하는가. 혹은 배우자랑 친한가. 친한 사람과는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있다. 그와 함께 자신의 희로애락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그러나 부부가 갈등하는 상황에서 누군가 ‘이야기 좀 하자’고 하면 두려워진다. 경직된 관계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워져서 화를 내던지, 입을 닫게 되든지 하기 때문이다. 결국 꼴 보기 싫으니까 이야기하기 싫어지고 상대를 더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
그래서 부부 문제는 옳고 그름으로 해결할 수 없다. 남편의 옳음과 아내의 옳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깔끔한 남편과 사는 털털한 아내를 깔끔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깔끔하길 원하는데 안돼서 힘들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조현미<심리상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