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사회 다양성 말살로 이어져

[조현미의 생활심리] 혐오의 시대

2021-05-17     조현미

누군가를 미워하고 싫어한 적이 있는가? 퇴근시간을 앞두고 새로운 일을 주는 상사를 미워할 수도 있고, 매일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하는데도 여전히 아무 곳에나 옷을 벗어 놓는 남편 일수도 있겠다. 무리한 요구, 무심히 하는 배려없는 행동을 보면 짜증이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러나 길가나 카페에서 처음 만난 여성에게 욕설과 폭언, 신체적인 폭력을 휘두르고 ‘여자가 싫어서’ 그랬다고 한다면 어떤가. 

최근 미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인종차별과 그로 인한 증오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특히 코로나를 우한 코로나라고 ‘콕’ 찍어 이야기한 전임 대통령 때문에 미국에 살고 있는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중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이라서 욕설이나 폭언, 폭행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들도 외출했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그러나 이게 꼭 남의 나라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우리나라 농촌에 일하러 온 동남아 이주 노동자가 제대로 된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대신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다 얼어죽는 사건이 있는 걸 보면.   

백인만 유색인종을 차별하고 배제하는가. 또 상식 밖의 소수 몇 명이 이주노동자에게 갑질하고 부당한 대우를 하고 있다고 느껴지는가. 당신은 어떤가. 당신과 성별이, 인종이, 직업이, 성적취향이, 경제수준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여자니까, 동남아 이주민이니까, 택배 노동자니까, 동성애자니까, 가난하니까 부당하게 대우해도 되고 그들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면 ‘싸잡아 비난’하지는 않는지 말이다.

혹은 최근 수도권 아파트에서 택배 차량의 출입을 지하로 한정하거나 배달할 때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도록 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여기는지 아니면 차별이라고 여기는지 궁금하다.

우리가 일하는 직장에서는 어떨까. 직장 상사가 하는 말은 잔소리라고 여기고 ‘꼰대’라고 칭하는 젊은 직원, 요즘 애들은 인사성도 예의도 없는 ‘싸가지’라고 느끼는 나이 있는 직원으로 나누어져 서로를 혐오하고 있지는 않은지. ‘세대가 다른 동료’ 대신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지는 않는지. 만약 서로가 적이 되다면 직장은 꼰대와 싸가지의 전쟁터가 되고 남는 건 피로감 뿐이지 않을까.

게다가 상사의 정당한 조언을 지나친 간섭이나 잔소리로 여겨 무시하고 일을 그르치고 있지는 않을지. 싸가지에게는 업무에 관한 주요 정보를 주지 않아도 되고 무시해야 한다고 여긴다면 심각한 결과를 남길 것이다. 

혐오는 서로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꼰대나 싸기지와 같은 말 뒤에서 적극적으로 꼰대와 싸가지를 차별하고 괴롭히며 배제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또한 그들과 비슷한 이들을 한 집단으로 묶어 그들 전체를 비하하거나 공격하기도 한다.

김치녀, 틀딱, 한남이라 표현이 여성을, 노인을, 남성을 싸잡아 비난하고 있는 것처럼. 게다가 혐오 프레임이 한번 생기면 서로의 ‘차이’나 ‘다름’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자신과 다른 이는 ‘적’으로 간주한다. 적은 ‘잘못되어도 된다’는 생각으로 협박, 폭행, 강간, 방화, 테러를 당해도 된다고 믿고 결국은 집단 학살 가능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은 혐오가 증오가 되어 집단 학살에 이르는 걸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 아닐까. 그러니까 혐오는 인간답게 살 권리를 침해하고, 사회의 다양성을 위협하는 것이다. 

혐오는 인지적 오류를 통해 형성된다. 성범죄 뉴스를 보면서 ‘남자들은 다 이상해’라고 말한다고 한다면 남자라는 유사성은 보고,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차이는 보지 못하면서 과잉으로 일반화하는 오류이다. 또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도 인지적 오류이다.

이처럼 세상을 보는 시야나 경험의 폭이 좁다 보니 편견이 생기고 이렇게 고정된 시선으로 다른 사람을 ‘싸잡아 비난’ 하게 된다. 그러니까 ‘다른 것’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 ‘사고의 결여’가 문제다.  

우리는 고립된 채 존재하지 않고 다 함께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 없이 식탁 위에 음식이 차려지지 않을 것이고, 꼰대와 싸가지 없이 회사는 굴러가지 못할 것이며, 택배 없이 살 수 없는 시대다. 그러니 이제 혐오를 혐오해야 하지 않을까.  
조현미 <심리상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