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눈, 청년의 인문학]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의 ‘저공비행’
길 잃은 양을 인도하는 목자의 저공비행 하와의 재림과 유디트의 후손
어느 젊은 부부의 불길한 세기말적 출산 여행
포리스터는 아직까지도 남은 희망에 매달리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럴 때마다 결실 없는 임신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 채 제네바를 떠나 지중해 연안의 텅 빈 휴양지를 계속 돌아다니면서, 다시 한 번 심각한 결함을 가진 태아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기다리기만 했었다. 그러나 이번 마지막 임신만은 고대하고 있었다. 거의 도전처럼, 확률은 낮지만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상품이 걸린 게임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섯 달 전에 주디스가 다시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그는 즉시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자동차를 수배했다. 주디스는 너무도 간단히 임신을 했다. 쓰디쓴 역설이었다. 이제 인간이 거의 남지 않은 이 세계에 남은, 격렬하고 가시지 않는 성행위에 대한 갈망과 결실이 없기는 해도 엄청난 생식력.
주디스는 카트를 자기 의자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장난감처럼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침실 거울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포리스터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후기 작품에 등장하는 연인들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잘생기고 육감적인, 그러나 내면에 죄의 비밀을 감추고 있는 한 쌍의 육체.
코스타브라바 북쪽 끝의 이 한적한 휴양지를 찾아온 것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실 포리스터는 이곳에 굴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 히피같은 의사는 해변의 버려진 호텔 한 곳에 살고 있었는데, 주말 동안 자리를 비웠다가 갑작스레 비행기를 타고 나타났던 것이다. 포리스터는 줄지어 늘어선 텅 빈 호텔과 아파트들을, 문을 닫은 지 한참이 지난 식당과 슈퍼마켓들을 눈으로 훑었다. 이곳의 인적 없는 풍경에는 어딘가 마음을 편안하게 주는 데가 있었다. 이곳, 세상이 잊은 마을에서 다른 사람은 거의 없이 지내는 쪽이 훨씬 편한 기분이 들었다.
그레이엄 밸러드, <저공비행>
인류가 종말을 맞이하는 풍경은 어떠할까? 오백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부터 현재의 호모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인류는 바로 직전의 인류가 어떻게 종말을 고하는지 목도하지 못했다. 세계를 인식하는 그들의 시야가 지구적 관점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학과 철학으로 무장한 호모사피엔스는 자신의 종말을 스스로 지켜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종말의 풍경을 감상하는 일이 행복인지 불행인지 알 수도 없거니와 그들의 종말을 바라보는 더 높은 차원의 후임자가 존재하고 있을지 알 길이 없다.
인간은 문학과 영화를 통해 그들의 종말을 상상하곤 하는데, 대개는 가공할 위력의 폭발물과 첨단의 기계, 세균과 바이러스로 인한 멸종이나 외계인의 침입, 운석 충돌과 오염 등이 주요 소재였다. 이런 원인 말고는 종말을 고하는 비극의 씨앗은 또 없을까?
젊은 부부 포리스터와 주디스가 사랑으로 잉태한 아이의 출산을 위해 여행을 시작한다. 영주권을 구걸하기 위해 아메리카로 원정 출산을 했었다는 한반도의 20세기 인류는 들어본 바가 있지만, 출산을 위해 멀리 여행을 떠났다는 사례는 접한 바가 별로 없다. ‘결실 없는 임신’이니 ‘심각한 결함을 가진 태아’니 ‘인간이 거의 남지 않은 이 세계’니 하는 묘사는 종말을 향해 치닫는 인류의 멸종 원인을 짐작하게 하며, 젊은 부부의 출산 여행이 즐거운 바캉스가 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과학은 결함을 적발하고 철학은 생명을 말소한다.
정상으로 태어날 확률은 1,00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출산율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었다.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은 기형 태아가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극단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였다.
지금과 같은 비율로 감소한다면, 유렵의 20만 명과 미국의 15만 명의 인구는 몇 세대를 버티지 못하고 0으로 수렴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제네바의 인구는 아직 2,000명가량이나 되었지만, 유럽의 도시 권역은 대부분 이미 텅 비어 버렸다.
출산율은 도리어 급증했지만 신생아의 거의 대부분은 심각한 기형을 안고 태어났다. 포리스터는 주디스의 첫아이를 떠올렸다. 눈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그 자리에 시신경이 드러나 있던 모습을, 그보다 더 끔찍했던 기형의 성기를, 모든 종류의 부끄러움과 혐오를 담은 인간 생식기의 패러디같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레이엄 밸러드, <저공비행>
포리스터와 주디스에게 닥친 불운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고 인류 전체의 불운이다. 종말하는 인간들이 낳은 아이들은 하나같이 육신의 눈이 퇴화된, 엄밀하게 말하자면 눈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이 이룩한 위대한 과학의 금자탑은 눈 없는 신생아의 탄생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이룩한 위대한 철학의 금자탑은 눈 없는 인류의 미래를 그리지 못하고 있다.
포리스터는 아이에게 기형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양막 스캔을 하러 주디스를 출산 준비 진료소에 내려주고 박물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텅 빈 미술관을 돌아다니다가 굴드가 초현실주의 화가가 만든 축 늘어진 배아와 해부학적 괴물들을 감상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은빛 얼룩이 가득한 재킷과 뒤로 묶은 긴 머리카락 때문에 의사라기보다는 중년 폭주족처럼 보였다.
"3주 후면 주디스가 아이를 낳을 겁니다. 혹시 주디스를 돌보아 줄 수 있으신가요?"
"보조의는 어떤가? 그 사람이 나보다는 솜씨가 좋을 텐데."
"사실 출산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럼 죽음을?"
"그게..."
"물론 희망을 잔뜩 품고는 있지만, 현실에 대처하는 법도 배워 둬야 하니까요."
"두 분 모두 훌륭하시군"
"그런 일도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디스는 선생님같은 분이 도와주시기를 바랄 것 같습니다만."
"결과가 어떻든 그 아이를 키워보는 것은 어떤가?"
포리스터는 굴드의 이 공격적인 말에 마음속 깊은 곳까지 충격을 받았다.
그레이엄 밸러드, <저공비행>
포리스터와 주디스가 사는 세계의 주인들이 그들에게 닥친 재앙을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양막 스캔이라는 별로 놀랍지도 않은 기술로 태아의 기형을 판단하고, 기형일 경우 태아를 모조리 중절시키는 해답을 예외 없이 도출하고 있다. 위대한 과학은 결함을 적발하고 위대한 철학은 생명을 말소한다. 적발과 말소가 당대의 상식과 진리가 되어버린 시대이니 인구의 감소는 당연한 결과이고 인류의 종말은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다가온다.
길 잃은 어린 양을 인도하는 목자의 저공비행
소는 이제 없었다. 수년 전에 전부 도축되어 버린 것이다. 계곡을 따라가다 보니, 포리스터는 언덕을 넘어가는 진입로와 비포장도로 위로 형광 페인트가 뿌려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은빛 구획이 계곡 한쪽을 복잡하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굴드가 비행기를 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 듯했다. 의사는 계곡 아래쪽을 향해 손짓했다. 꼬마 들소처럼 생긴 작고 털이 덥수룩한 송아지 한 마리가 홀로 튀어나온 바위 위에서 당황한 듯 명하니 서 있었다.
굴드는 엔진 회전을 늦추고 계곡 바닥을 향해 송아지에게서 20피트도 떨어지지 안은 곳까지 저공비행으로 내려갔다. 은빛 페인트가 공중으로 흩뿌려지며 뒤쪽으로 부채꼴을 그리기 시작했다. 페인트는 그대로 반짝이는 구름이 되어 허공에 떠 있다가 이내 내려앉아 산 측면에 붓칠을 한 것처럼 가느다란 선을 그렸다. 굴드는 살포기를 집어넣고는 방향을 틀어 다시 계곡 쪽으로 내려갔다. 이번에는 엔진을 최대한 올리고 송아지의 머리 위로 급강하하면서 그 짐승을 바위 위에서 아래쪽으로 내몰았다. 송아지는 좌우로 비틀대며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채로 은빛 길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는 즉시 자세를 제대로 잡더니 페인트의 길을 따라 활기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리스터는 공중에서 뿌린 페인트 선이 산속의 안전지대까지 이어지는 복잡한 도로망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침내 기수를 돌려 작은 호수 위편 협곡을 선회하자 그곳에 수백 마리의 짐승이 살고 있는 모습이 있었지만 포리스터는 이제 놀라지 않았다. 소 때는 고개를 들고 그들 위를 날아가는 굴드를 눈으로 좇는 듯했다. 굴드는 지치지도 앟고 필효한 곳에 계속해서 선을 덧붙이고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소를 빛나는 길 위로 올리는 일을 반복했다.
그레이엄 밸러드, <저공비행>
낮은 데로 임하시는 게 야훼의 아들이고 알라의 사도이며 석가의 모니라 했던가? 구세주 그리스도는 늘 핍박받는 이웃과 함께 살았고 선지자 무함마드는 늘 위태로운 민족과 함께 일했으며 고타마 싯다르타는 늘 고통받는 중생과 함께 있었다. 생명을 살리고 보호하는 일이 어찌 의사(醫師) 만의 일일까 만은 ‘히피’로 오인되는 굴드는 생명을 살리고 미래를 대비하는 과학자이며 철학자다. 그에게 있어 눈먼 인간이나 눈먼 짐승은 하나의 소중한 생명일 뿐 하등 다를 것이 없다. 목자의 눈에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두 어린 양일 뿐이다.
의사 굴드는 목숨을 걸고 날마다 위태로운 비행을 한다. 인간에 의해 무의미하게 도살되는 지옥으로부터 탈출한 눈먼 소들을 인도하는 비행이다. 그가 뿌리는 형광 페인트는 인간의 야만으로부터 벗어나는 빛이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시력은 아직 형광 페인트를 인식할 수 있으며, 스스로 생명을 보존하는 능력을 갖출 때까지 적응하는 과정은 그들 진화 과정의 새로운 길이 될 것이다. 굴드의 비행은 그 자체로 순례이며 거룩한 순교다.
눈먼 하와의 재림과 유디트의 눈먼 후손
"자네 아이는 문제가 뭔가?"
"똑같습니다. 같은 기형이에요. 보조의를 불러서 처리할 생각입니다."
"왜지? 포리스터, 이건 정당한 질문일세. 누가 기형인지 정하는 사람은 누군가?"
"어머니들은 아는 모양이더군요."
"하지만 그들의 생각이 옳은 건가? 우리는 무고한 태아를 학살하는 앞에서 이미 헤롯 왕을 능가한지 오래일세. 우리는 방대한 교체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는 거라네. 애석하게도 교체되어 사라질 존재는 바로 우리겠지. 우리의 임무는 그저 우리 후손들로 세상을 채우는 것뿐이야. 우리가 고독을 필요로 하고, 홀로 있으면서 극도로 행복을 느끼고, 어떤 절망도 느끼지 못하는 현상은 아마도 자연이 우리에게 건네는 작별인사가 아닐까 싶네.”
(... 중략 ...)
포리스터는 어두운 거리를 지나서 운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굴드와 함께 산속으로 날아갈 때 입었던 그 은빛 재킷을 다시 입은 채였다. 다리를 건너자 젊은 여인이 검은 숄 때문에 거의 보이지도 않는 모습으로 격납고에서 나왔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가면서 튼튼하게 태어난 아이가 공기를 빨아들이고 옹알이를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갓난아이를 그녀의 품에 안겨준 다음 운하 쪽으로 돌아서서 재킷을 벗어 던지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레이엄 밸러드, <저공비행>
포리스터와 주디스의 여덟 번째 아이가 태어났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기형이었다. 아내 주디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포리스터는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해보기로 작정한다. 의사 굴드가 그에게 한 말과, 눈먼 여자와 눈먼 소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기대가 있기도 했을 터이다.
에덴의 하와는 선악의 과실을 먹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눈이 밝아지는 황홀경은 언젠가 닥칠 비극을 예측하기에는 너무도 강력한 마약이어서 잠시도 주저할 수 없게 만든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얻어 세계를 바꿀 힘을 얻었듯이 선악의 과실로 세계를 바꿀 지혜를 갖추었지만, 힘과 지혜는 과욕과 오만으로 치닫는 때가 무시로 찾아오고 항상 경계해야 하는 인간이란 동물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에 그 조율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눈먼 하와의 품에 안긴 눈먼 아이의 미래는 어찌 될까? 의사 굴드의 말처럼 눈먼 생명들의 탄생이 자연이 선택한 ‘방대한 교체 프로그램’이라면 기형(畸形)은 신형(新型)이다. 기형아를 낳은 부부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야 할 부모가 아니라 신(新) 인류를 생산하는 데우칼리온과 피라다. 종막의 그늘에서 쓸쓸하게 퇴장하는 멸종의 인류가 아니라 진화된 인류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모태가 된다. 나아가 인류 역사상 인류와 인류가 교체되는 혁명적인 과정을 최초로 목도하는 영광을 누리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에덴의 사탄께서 어두운 개안(開眼)을 주시자 저공의 야훼께서 찬란한 실명(失明)을 주셨다. 개안과 실명을 오로지 육신의 일로만 보려는 우둔(愚鈍)의 맹인들에겐 형광(螢光)의 농(濃)에도 형설(螢雪)의 공(功)에도 눈을 뜨지 못한다.
김시인 (인문학공간 소피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