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앞, 모든 사람은 평등한가?
[코로나19 속 사람들] 4부_코로나 이후 남겨진 사람들 (11)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야 라이 위원장
‘PEOPLE-19’ 열아홉 사람이 겪은, 열아홉 가지 코로나
코로나 시국에 감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마스크’다. 그러나 마스크마저 구매하는 것이 어려웠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한국의 이주노동자다. 마스크를 자유롭게 구매할 수 없는 현실에 그쳤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이주노동자는 이밖에도 사회적 거리두기, 재난지원금, 실업급여 등 다방면에서 배제되었다. 심지어 코로나19를 퍼뜨릴 수 있다는 부정적 시선과 사회적 낙인·혐오를 감내해야 했다. <PEOPLE-19>는 코로나19와 함께 전파된 혐오와 차별을 비판하고 감염병 사회 속에서 평등의 길을 모색하는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을 찾았다.
※ 내국인과의 구분을 국적으로 삼아 부정적 어감과 차별적 인식을 담고 있는 ‘외국인노동자’라는 표현 대신 ‘이주노동자’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또한 ‘불법체류자’ 대신 ‘미등록 체류자’로 표기했습니다. 미등록 체류는 형사상 범죄가 아니기에 처벌 대상에 속하지 않아 ‘불법체류’는 부정확하며,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불법이라 칭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 노동조합과 함께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 우다야 라이입니다. 현재 한국에는 많은 이주노동자가 살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에게도 노동자로서 누릴 수 있는 노동3권이 있는데요. 많은 이주노동자가 한국에도 이주노동자의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설립을 위해 노력한 결과 2005년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이 출범했습니다. 현재는 전국의 이주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해 있습니다. 이주노조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폐지하고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 제도를 바로 세우기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마스크·정보·재난지원금서 소외받아”
- 많은 이주노동자가 방역에서 소외되었다는 이야기가 간간이 들려오는데요. 이와 관련해 코로나19 이후 이주노동자가 겪은 문제는 무엇인가요?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많은 이주노동자가 다방면에서 차별받았습니다. 먼저, 코로나 확산 초기에는 이주노동자들이 공적 마스크를 구매하지 못했습니다. 공적 마스크는 건강보험에 가입된 이주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했기에, 미가입자는 마스크 없이 위험하게 생활해야 했습니다. 공적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는 노동자라 할지라도, 장시간 노동과 감금으로 인해 마스크를 구매할 여유조차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주노동자에게 마스크를 제공하지 않는 사업장도 많았습니다. 정주노동자에게는 마스크를 하루에 하나씩 지급하지만, 이주노동자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지급하거나 아예 지급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죠. 차별적인 정책으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은 언제나 불안했습니다.
둘째, 적절한 방역 정보를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 확산 현황과 확진자 동선뿐만 아니라, 만약 코로나19에 감염될 경우 어떤 조처를 할 수 있는지, 감염 시에 갈 수 있는 병원의 위치가 어디인지 등의 정보를 각국 언어로 제공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어디서, 어떻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모르는 이주노동자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셋째, 이주노동자는 세금을 내지만 재난지원금은 받지 못합니다. 그나마 작년에 서울시가 결혼이주자와 난민을 대상으로 지급했지만, 여전히 이주노동자와 서울 외 지역의 이주자는 배제되었습니다. 이처럼 차별적으로 방역대책을 실행할 경우 코로나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주노동자는 거리두기조차 불가능한 생활 환경에 있습니다. 과거부터 사업주들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의 기준에 미달하는 숙소를 이주노동자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농촌지역의 이주노동자는 주로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가건물은 애초에 사람이 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잠깐 쉬거나 농산물을 보관하기 위해 임시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들어오니 그곳은 숙소로 둔갑했어요. 이런 곳은 냉·난방 장치나 욕실, 심지어 화장실도 없습니다. 물이 제대로 안 나와서 비위생적이거나 화재가 일어나기 쉬운 위험한 곳입니다.
공장의 이주노동자 숙소도 문제입니다. 공장 이주노동자들은 공장 근처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습니다. 애초에 그런 곳에서는 기계 소음으로 인해 편안히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주간과 야간에 2교대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같은 방을 교대로 쓰는 경우가 많아 방역에도 취약합니다. 그리고 사업주는 비용을 아끼려고 여러 이주노동자들이 작은 한 방을 쓰게 합니다. 이런 숙소에서는 거리두기가 불가능할뿐더러 주거환경의 질도 낮아, 코로나19 외에 다른 질병에도 취약합니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70% 이상이 임시가건물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올해 1월 전까지는 한 방에 15명의 이주노동자를 수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었습니다. 이를 두고 몇 년 전부터 저희가 제대로 된 기숙사를 제공하라는 요구 끝에 법이 개정되었습니다. 하지만 한 방에 15명 거주를 8명으로 줄이는 데 그쳐, 문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8명이 한 방에서 생활하는데 어떻게 거리두기가 가능한지 의문입니다. 사업주들은 개선할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이주노동자에게 방역의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검사 강제 명령=바이러스 전파자 낙인’
-최근 각 지자체가 이주자를 대상으로 무조건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코로나가 지역사회로 퍼지면서 이주노동자 역시 코로나를 피할 수 없었던 건 맞습니다. 그런데 각 지자체는 이주노동자가 코로나를 퍼뜨리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든 이주노동자들에게 의무적으로 검사를 받으라고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검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이주노동자만을 대상으로 검사를 받게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주노동자를 바이러스 전파자로 낙인찍는 부정적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발성에 의한 검사가 아니라 매우 강제적이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코로나19 초기에 중국 교포들이 바이러스 보균자로 낙인찍혀 엄청난 차별과 혐오를 당했습니다. 여러 가게에 ‘외국인 출입금지’ 문구가 붙었고, 몇몇 식당에는 출입하지도 못했고요. 이후 전체 이주자에게도 혐오 정서가 번졌습니다. 이주민을 질병 전파자 혹은 감염원으로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이 이번 행정조치에도 그대로 반영되었고, 또다시 혐오를 부추겼습니다.
- 코로나19를 계기로 심화한 경제 위기가 이주노동자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텐데요. 이주노동자는 어떤 경제 문제를 겪었나요?
△다른 노동자들처럼 이주노동자 다수도 해고됐습니다. 처음에는 서비스업종에 일하는 중국 교포와 난민, 이주노동자가 많이 해고되었고요. 나중에는 제조업 노동자도 실업자가 됐습니다. 코로나로 항공편이 없어 실직한 노동자들이 출국하지도 못하고 한국에서 일할 수도 없는 딜레마가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소득이 없다 보니 생활고가 커졌습니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취업한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쫓겨나면 이후에 갈 곳이 없습니다. 취업 기간이 만료된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구직 중인 노동자들 또한 취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친구나 지인이 있는 경우 생활비를 빌리기도 하지만 생활을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이를 빌리는 것조차 어려운 이들도 많습니다. 숙소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주노동자가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쉼터도 별로 없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고용보험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사업주가 고용보험을 가입시켜주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대다수는 실업급여를 받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코로나 실직’ 일 없지만, 돌아갈 비행기도 없어
- 팬데믹으로 출국이 어려워지면서 이주노동자들이 미등록노동자가 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사례는 얼마나 많나요? 그리고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두 달 전 통계를 봤을 때, 4000명 정도의 이주노동자가 항공편이 없어 귀국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최근에는 값비싼 항공권이라도 구매해 귀국하는 사람도 있어 조금은 줄었습니다.
이렇게 불가피하게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출국 시기를 유예해주기도 하는데 취업은 불가능합니다. 이들이 생활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몰래 일하다가 적발된 사례도 있습니다. 출국 유예를 위해 출입국관리사무소를 가야 하는 것 자체를 몰라 미등록노동자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출입국 관리의 지침도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4월 13일부터 12월 31일까지 만료되는 비자를 보유한 이주노동자의 체류 및 취업활동 기간을 1년 연장해주었지만, 하루 이틀 차이로 이 기준을 맞추지 못한 노동자도 있습니다. 이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 코로나19가 하반기에도 계속될 전망입니다. 이 시기에 침해되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이 마련돼야 하나요? 평등한 사회를 위해 개선돼야 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자국민만 건강하면 된다는 정부의 인식과 여기서 비롯되는 정책을 ‘차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많은 이주노동자가 함께 살아가고 있고, 한국의 많은 산업은 이주노동자 없이 작동할 수 없어요. 언제까지 이주노동자를 배제하거나 피할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를 같은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같은 노동자로, 같은 사람으로 봐주었으면 해요. 차별금지법처럼 누구도 소외받지 않게 할 법들이 마련되어, 인식의 변화와 함께 이주자들이 지적하는 부분들이 개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일터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실질적인 방역대책이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께 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가요?
△이주노동 문제에 관심 가지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이번 인터뷰로 우리 이야기를 많은 분이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저희도 한국에 사는 구성원이지만, 아직은 아주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처럼 차별대우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지우고 있습니다. 저희는 정부로부터 ’너희는 이것까지 요구하면 안 된다’, ‘이 정도면 만족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너희가 어려우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면 되지 않느냐’, ‘왜 한국까지 왔냐’라고 말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저는 독자 여러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지금 발생하고 있는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함께 노력해주시면 바랍니다. 우리의 외침으로 문제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못다 한 이야기
최근 이주노조에서는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숙사 산재 사망 사건을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기숙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비극은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사망했고 코로나19 이후에는 감염 문제까지 겪고 있지만, 정부는 계속 현실을 외면해왔습니다. 몇몇 사업주는 ‘기숙사 정보제공 및 비용징수’에 관한 지침을 악용해 열악한 기숙사를 제공하면서 과도한 기숙사 비용을 청구하거나 임금에서 공제하고, 무조건 사업주가 제공한 숙소에만 살도록 강제하기도 합니다. 저희는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한편, 이주노조는 기숙사 문제 외에 강제노동, 임금체불, 성폭력 등 다양한 이주노동 문제를 낳는 근본적 원인으로 ‘고용허가제’를 짚고 있습니다. 고용허가제 아래, 이주노동자는 자유롭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열악한 노동/생활환경 조건을 개선하라고 사업주에게 쉽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1년 10개월을 연장해 일할 수 있는 것도 전적으로 사업주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자유롭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는 ‘노동허가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헌법소원을 냈고, 서명운동과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으며, 6월 5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당사자들이 1인 피케팅을 진행했습니다.
소감 나누기: PEOPLE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형호: 무엇보다, 이주노동자들이 감염 위기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서 ‘고용허가제’를 알게 되었어요. 고용허가제가 코로나19 이전에도 문제였지만, 방역과 건강권, 노동권 등 여러 측면에서 코로나19가 고용허가제의 모순을 폭발시켰다고 느꼈어요.
진희: 이주노동자가 겪는 문제엔 정부 책임도 있고, 근본적으론 이주노동자를 평등하게 대하지 않고 사회적 낙인을 찍는 게 제일 큰 것 같아요. 코로나19가 말해주는 불편한 진실이 개선되지 못한다면,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반복될 거예요.
유빈: 인터뷰에 참여하며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이주노동자에 무관심했는지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고용허가제가 정말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근원적으로 문제는 노동자가 사업장을 마음대로 정하지 못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한국 사람이 다른 나라에 가서 그런 대우를 받는다면 얼마나 기분이 나쁠까요? 역지사지의 자세로 깨어있어야합니다.
무빈: ‘이주노동자는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과 ‘코로나19는 모두가 걸릴 수 있다’는 말씀이 인상 깊었어요. 우리는 이주노동자를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해야 하고, 이주노동자를 차별하고 문제를 계속 방치한다면 결국 우리 모두가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되새겨야겠어요.
인터뷰 및 필자: ‘프로젝트팀 PEOPLE-19’ 김유빈 권예진 남진희 문예린 송진아 이형호 정무빈
본 기사는 Project People-19 인터뷰집 ‘PEOPLE-19: 열아홉 사람이 겪은, 열아홉 가지 코로나, 그들을 이야기하다’의 일부입니다. Project People-19의 활동은 텀블벅을 통해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