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고전을 만나다]파스칼 ‘팡세’ & 김용규 ‘생각의 시대’ 

인공지능과 협업하는 아이의 특징

2021-10-27     박혜진

[시, 고전을 만나다]파스칼 ‘팡세’ & 김용규 ‘생각의 시대’

내가 존엄을 찾아야 하는 것은 
공간에서가 아니라 
나의 사유의 규제에서이다.
많은 땅을 소유한다고 해서 
내가 더 많이 갖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공간으로써 우주는 
한 점처럼 나를 감싸고 삼켜버린다.
사유로써 나는 우주를 감싼다.
- 파스칼, ‘팡세’

누구일까?

“자기 자신과 대결하며 새로운 수 발견, 60승 후 은퇴 선언. 앞으로 의료 과학 신소재 연구, 에너지 관리 효율 연구에 매진할 것” 누구일까? 2016년 이세돌과의 대국에서 3:1로, 이후 프로기사 팀과의 경쟁에서 60:0으로 완승을 거두고 은퇴를 선언했던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에 대한 기사다. 알파고는 이후 자신을 업그레이드하여 에너지 효율성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 밝혔다. 그리고 2021년, 알파고의 후배격인 알파폴드(AlphaFold)는 생물학계 난제였던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며 학계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20여 생명체의 단백질 구조 35만개 예측. 생물학계 난제로 남아있던 단백질 접힘 문제 해결. 알츠하이머, 치매 예방, 감염병 신약 개발 착수 중”

알파폴드에 이은 알파폴드2가 코로나19와 반응하는 단백질 구조까지 밝히면 변이바이러스에 대처할 길이 열린다하니 놀랍다. 몇몇 학자들이 예측하듯 이제 인간은 인공지능에 의해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는걸까? 인간과 기계의 경쟁이 불가피한가? 최근의 뇌 과학 연구 결과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모라벡의 역설이라는 말이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 읽기조차 어려운 이런 문제들을 인공지능은 입력과 동시에 풀어낸다. 
그렇다면 고양이와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이 섞인 사진에서 고양이를 구별해내는 능력은 어떨까? 고양이가 몇 마리인지 세어보라.

더 나아가 ‘어떤 표정의 고양이가 가장 귀여운가?’ 라는 질문에 AI는 선뜻 답하지 못한다. 

모라벡의 역설.

“지능검사와 체스에서 어른 수준의 성과를 발휘하는 컴퓨터를 만들기는 쉽지만 지각이나 이동능력 면에서 한살짜리 아기만한 능력을 갖춘 컴퓨터를 만드는 일은 어렵다.” 

미국의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의 말이다. 

그의 이름을 따 인간에게는 어려운 것이 AI에게 쉽고 AI에게 어려운 것이 인간에게는 쉬움을 가리켜 ‘모라벡의 역설’이라 부른다. 컴퓨터와 모바일에 뜨는 인증 칸에 알파벳과 숫자가 뒤섞인 창이 나오고 ‘보이는 대로 입력하시오’ 요청하는 것도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설치해 해킹을 시도하는 무리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고성능의 인공지능이 아니라면 S와 5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학습법과 인간 아이의 학습법
인공지능은 빅데이터에 모인 ‘개’데이터와 ‘고양이’데이터를 기반으로 1:1 대응해 제시된 대상이 개인지 고양이인지 알아낸다. 즉 A는 A이다. A는 ~A가 아니라는 동일률과 비모순률에 기반해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인간 아이에게는 세상의 모든 고양이와 강아지를 보여줄 필요가 없다. 보여준들 이를 낱낱이 기억하기란 불가능할 뿐더러, 데이터의 양이 지식과 인간 지능을 결정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의 뇌는 어떻게 대상을 알아가는 걸까? 인간 아이는 ‘유사성’에 기반을 두고 사유한다. 아이들은 각각의 사물들에서 어떤 공통점을 뽑아 카테고리화 하는 범주화 능력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지능을 개발한다. 

가령, 닭과 풀이 있고 ‘소’라는 대상이 제시될 때 나는 소를 무엇과 묶는가. 즉 범주화하는가. 실험에 의하면 동양인은 풀-소로 범주화하고 서양인은 닭-소로 범주화하는 경향이 있단다. 오랜 시간 농경 중심으로 살았던 동양인은 협력을 위한 질서와 조화가 중요했기에 무의식적으로 ‘관련성’을 중심으로 범주화한다는 것! 그러나 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가속화된 도시 중심 생활을 하는 현대의 동양인에게 아직도 이런 범주화 경향이 남아있을지는 미지수다. 

반면 목축과 상업이 중심이던 서양인은 상대적으로 협력보다는 경쟁이, 조화보다는 독립과 개인주의가 생존에 유리했기에 개별적 속성에 따라 묶는 닭-소 범주화 경향이 높다고. 이렇듯 인간의 범주화는 절대적이지 않으며 유연하다. 게다가 느슨한 범주화 능력은 창의성과 영재성의 특징이기도 하다. '융통성 제로‘라거나 ‘옹고집’은 재범주화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뇌 가소성이 떨어진다. 

인간의 뇌 지능은 세포 수가 아닌 시냅스의 연결망이 결정한다. 연결망이 촘촘할수록, 복잡한 동시에 튼튼할수록 우리의 뇌는 더 잘 기능하고 문제를 발견하거나 해결하는데 빠르게 기여할 수 있다. 범주화 즉 유사성을 찾아 이리저리 묶을 줄 아는 능력이 곧 시냅스의 연결망을 계속 늘려가는 행위이다. 그런데 만약 인공지능이 스스로 범주화하는 능력을 익히게 된다면 어떨까? 인간의 뇌신경망을 연구해 인공지능이 ‘러닝’하게 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인간 아이의 유사성에 의한 사고, 범주화 지능을 따라잡을지는 요원하다.

인공지능에게 불가능한 은유

범주화가 시각 청각 후각 등 직접적인 감각지각으로 대상을 묶거나, 크기 형태 무게 등의 좀 더 추상적인 개념들을 착안해 대상을 묶는 것이라면 ‘은유’는 그보다 과격하고 파격적이며 인공지능은 넘어설 수 없는 사유의 영역이다. 

은유는 문학의 수사법이 아닌 인간 사유의 지도, 뇌의 지도다. 은유는 서로 거리가 먼 것에서 유사성을 찾는 능력으로 아이스토텔레스는 은유능력을 가리켜 ‘천재의 징후’라 칭했다. 

21세기는 카(VUCA)시대! 변동성(Volatile)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함(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이 특징인,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는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당연히 인공지능은 불가능한 은유의 능력-관련 없어 보이는 사건과 사물, 학제들에서 어떤 유사성-연결고리를 찾고 유의미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2022대한민국의 교육 로드맵.

2022년 발표 후 2025년부터 시행될 대한민국의 교육 로드맵은 이에 대비한 고민과 대응의 결과물이다. 고등 과정을 공통과목과 선택과목으로 카테고리화 한 2015년 교육과정은 2025년 융합선택을 더해 네 개로 카테고리화 된다. 
국어영역에서 실용국어, 심화국어, 고전읽기로 단순하던 선택과목 카테고리가 담화와 언어문화·주제탐구독서와 작문·문학비평과 창작으로, 수학은 수학과 인공지능·수학과 경제·수학과 문화·자유설계 수학 등으로 묶였다. 서로 떨어져 있던 것들 간의 관련성 탐구를 통한 융합. 하나 더 특징적인 건 주요 과목들이 과정 중심 평가로 즉 발표와 토론, 창작 등 적극적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점. 그야말로 주도성에 의한 설계(디자인)능력, 그리고 소통을 위한 다양한 사유와 표현역량-수행력이 중심이다.

메타포의 사용은 새로운 학문적 관점을 가능하게 한다. by 리처드 도킨스

경계를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는 은유(메타포) 능력이 중요하다는 진화생물학자 도킨스의 말은 법칙이 되었다. 숫자와 기하를 연결한 데카르트 좌표, 입자인 동시에 파동인 빛과 전자, 물리학 개념과 사회를 연결한 바우만의 액체근대, 인간의 본성을 생물학과 맞댄 이기적 유전자…은유적 발상은 오직 인간만이 가능한,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역능의 사고 분야다. 

일곱 살 아이들이 ‘그럼 오리너구리 자리는 어디지?’를 읽는다. 엄마젖을 먹고 털이 복슬복슬하지만 물갈퀴와 부리도 있는 오리너구리는 어디로 가야할까. 조류와 포유류 양쪽의 특징을 가진 오리너구리가 울 때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오리너구리는 어디에도 포함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 집단이 아닌 다양한 집단에 포함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아이들은 ‘그럼 내 자리는 어디지?’ 생각한다. 

나의 자리
나는 우리 집에서 잘 생긴 아들입니다.
어렸을 때 나는 울기 잘 하는 아이였어요.
나는 친구를 좋아하는 유치원생입니다.
나는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 어느 일곱 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리와 역할이 달라짐을 알아채는 범주화 능력은 나중 ‘시간이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추상적 질문으로, ‘인간이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이어진다. 이러한 포괄적 사유의 과정이 곧 인식론이며 IB(국제 바칼로레아)의 범교과적 주제다. 

인간의 뇌.

다시 책으로

자아개념과 시간성에 대한 사유는 시간이 지나 성장한다고 해서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에 몰입하며 미래를 계획하거나 그려보는 뇌 발달은 문해력, 독서를 통해 성장하고 자극된다. 사람들은 독서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문자를 읽어가기에 시각적이고 공간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독서는 청각적 행위에 가깝다. 갓 태어나 아직 글자를 모르는 아기들은 눈으로는 사물의 방향을 기억하고 즉 공간감각을 뇌에 새기고, 소리로는 원인과 결과의 뇌 영역을 넓혀간다. 소리는 끝까지 들어야 의미망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기억하고 앞 내용을 망각하고 다시 들춰보며 되새기는 문자적 과정이 축적돼 비로소 ‘자아’ 혹은 ‘시간’과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뇌 구조가 형성되는 것. 그러나 1.5초에서 3초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스크롤하며 읽는 디지털 문자는 도리어 공간감각적이라는 실험결과가 나왔다. 뇌에 전극을 연결한 후 시신경의 변화를 살피니 책 읽는 눈은 오선지의 선처럼 글자를 따라 왔다 갔다 하는 데 비해 디지털 문자를 읽는 눈은 마치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지그재그로 건너뛰며 읽었다. 

책 읽는 뇌와 디지털에 친숙한 뇌를 모두 사용할 수는 없을까. 책을 읽으며 내용을 범주화하고 범주화한 카테고리를 토대로 자료를 검색한 후 유의미한 정보를 모아 데이터 마이닝하는 작업을 아이들이 한다면 어떨까. 자신이 만든 자료와 다른 친구가 만든 자료와의 유사성과 비유사성을 찾아 의미망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면 어떨까. 대한민국, 학교는 이미 바뀌고 있다.

우리의 아이들, 즉 신인류는 가상 세계에서 산다. 인지과학에 따르면 우리가 웹상에서 서핑할 때, 엄지를 사용해서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위키티피아나 페이스북을 훑어볼 때 자극 받는 뉴런과 뇌의 부위는 책, 칠판 또는 공책같은 것을 사용할 때 자극받는 뉴런과 뇌의 부위와는 다르다고 한다. 신인류는 여러 정보를 동시에 다룰 수 있다. 이들은 그들의 조상인 우리 기성세대와 같은 방식으로 정보를 인식하지 않을 뿐더러, 이들이 정보를 취합하고 종합하는 방식도 우리가 늘 사용하는 방식과 전혀 다르다. 한 마디로 이들의 머리는 우리의 머리와 다르다.

Active Learning Synergy.

예전에는 몸과 하나였던 인지기능을 두 손에 꺼내 들고 다닐 수 있는 엄지 세대는 기성세대처럼 지식을 암기하며 자신의 머리를 꽉 채울 필요가 없다 뛰어난 정보 수집 능력으로 가상과 실재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상상에 한계를 두지 않는다. 세상의 변화를 재빨리 감지하고, 테러리즘이나 기후 변화 등의 전 지구적 주제에도 관심을 가진다. 나라간의 장벽을 무의미하게 여기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계층, 종교, 연령대와 관계를 맺는 이들은 열린 사고를 선호한다. 지역, 인종, 성별 등의 집단적 가치에 따라 움직이며 한정된 공간에서 제한된 관계를 맺고 소속감에 똘똘 뭉쳐 살았던 기성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신인류가 등장한 것이다. 엄지 세대의 삶이 기성세대의 삶과 다를 것이 확실한 이상, 그들에게 맞는 새로운 윤리와 교육방식이 필요하다.
- 미셸 세르, ‘엄지 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

박혜진 (문예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