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서로 그 맘으로 살아”
[훈짐나게 - 01] 무주 지전마을 이유찬·신정심
“오늘 나이 한 살 더 묵었어.”
동지날이라고, 숭얼숭얼 팥죽을 쑤었다. 죽 한 그릇과 더불어 나이 한 살을 더 먹은 날이다.
“인자 여섯 들어가.”
“나는 싯(셋) 들어가고.”
한 해 한 해 함께 나이들어 온 세월이 60년인 이유찬(86), 신정심(83) 부부.
남대천이 휘돌아 흐르고, 골목 따라 굽이굽이 흙돌담 이어지는 무주 설천면 지전마을에 산다. 고샅을 걷다보면 감나무 선 자리와 겹쳐지는 돌담은 잠시 끊긴다. ‘담의 논리’만으로 막아서지 않고, 나무에게 선뜻 자리를 내어 주었다.
이유찬 할배네 집도 마당가 감나무 선 자리로는 돌담을 잇지 않고 너른 틈새를 두었다. 여기는 너의 자리, 라는 존중과 배려.
“나는 이날팽생 할멈 덕으로 묵고산다 생각하는디, 할멈은 맨나 영감 덕으로 묵고산다 그래. 서로 늘 그 맘으로 살아.”
서로에게 먼저 내어주는 자리.
“우리는 팽생 입다툼 한번을 안해. 싸움을 몰라. 일을 해도 오순도순 같이 맞들고 장에를 가도 내가 할멈을 갱운기에 태와갖고 꼬옥 같이 댕갰어.”
사람 인(人)자처럼 서로 기대어 살아온 한평생이다.
“벽 찌고 앙겄으문 뭔 재미여”
희망이라는 오래된 반짝거림을 꺼뜨리지 않고, 평생 써도 닳지 않은 부지런함으로, 생의 어둔 밤들과 가파른 고개들을 함께 넘어왔다.
“옛어른들이 하는 말씀이 있어. 사람은 항시 속아서 산다고. 올해 실망을 했더라도 내년엔 잘 될란가 하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지. 누구나 잘 할라는 맘을 묵지, 못 할라고 맘묵는 사람은 없어. 실망시론 결과가 나와도 또 희망에 속아야 힘이 나는 거여.”
“고상을 해본 사람은 이거를 벌로 안봐”라고 할배가 말하는 것은 마당 한쪽을 온통 채운 장작더미다.
“나이 이러코 많이 묵은 사람이 이러코 나무를 많이 해놨구나 그 노력을 알지. 고상을 많이 한 사람이라 이러코 하지. 젊어서 호강시롭게 살았으문 이러코 안하지.”
부지런함의 증표처럼 쌓여 있다.
“우리는 나무가 겨울 양식이나 마찬가지여. 불 때고 산게. 큰방에 지름을 때먼 손이 곱아져. 온도를 좀 씨게 해노먼 마음이 두근두근해. 지름은 함부로 못 때. 아까와서. 나무는 맘놓고 때지. 근게 뜨셔.”
아무리 무거운 짐도 짊어져야 할 줄로만 생각하고 걸어온 길. 옛날에는 나무장사도 했다.
“그때는 나무장시가 많앴어. 나무해서 지게에다 짊어지고 무주장까지 십리길을 걸어가. 그때는 미투리를 삼아서 신어. 다 떨어진 것도 질질 끌고 댕갰어. 산에 가문 산림계가 지킨게 몰래 도둑나무를 해오지. 뜰킬까니 그 걱정이 앞서서 춘지 어짠지도 힘든지 어짠지도 모르고 나무를 해. 묵고살라니 해야지. 산림계가 장에가는 길목에도 집을 하나 얻어서 지켜보고 있어. 그집 앞을 지날 때는 살살 걸어가. 발자국 소리도 없이 가망가망. 그러다 나뭇짐을 덜컥 내부치문 와락 소리가 나고. 뜰키문 나무 뺏기고 후툿하니 빈몸으로 돌아오지.”
박토에서도 질기고 푸르게 이겨나왔다.
“나는 부모를 일찍이 잃었어. 고생시롭게 살았지. 나 말고도 우리 나이 사람들은 밥을 배부르게 묵어보들 못했어. 애릴 때 배고프던 그 기억이 남아있응게 자석들 양식은 내가 기어이 대줘야겄다, 그 정신이 항시 박혀 있어.”
쌀농사며 밭농사며 아직도 많이 짓는다.
“겨울에도 나는 가만히 안 있어. 돌아댕김서 뭐이라도 일을 하지. 가만히 있으먼 몸이 무거져서 안돼. 경운기도 아직 내가 부려. 나이들문 모도 일이 무섭다고근디 아직 그런 맘이 없어.”
다가올 새봄에 일이 무섭지 않도록 할배는 겨울에도 일을 놓지 않는다.
“벽 찌고(끼고) 앙겄으문 뭔 재미여. 나는 팽생 농사 잘 짓는 거이 제일 재미져. 웬만하문 꿈적거려야지. 촌에서는 일을 해야만 활발하지. 내가 소띠여. 소띠라서 일만 하는개벼. 내 몸이 부서져라 내 몸뚱이를 오늘날까지 부리고 살았지. 일복만 타고났어.”
할배가 평생 지니고 살아온 복은 일복이다.
“큰집서 제금날 때 쌀 한 말 갖고 나왔어.”
곤궁했다. 먹고 살 길을 찾아 고향인 적상면을 떠나 이곳으로 흘러들어왔다. 할멈의 여동생이 시집와 살고 있던 곳이라 인연이 됐다. 이 마을에 깃들어 살아온 지도 어언 45년.
“처음엔 놈의집 겹방살이함서 쥔네 토지를 부침서 살았어. 3년이 지나서 나는 인자 고향으로 가겄다고 부락주민들한테 말했더니, 올 적엔 내 발로 걸어서 왔지만 갈 적엔 내 맘대로 못한다고 그래. 날 보내기가 아깝다고. 내가 부지런하고 누가 일하는 것 보문 항시 달라들어서 같이 거들어주고 그런게 놈들 눈에 들은 거여. 나만 생각하고 살았으문 가거나 말거나 하지. 붙잡지 않지.”
타관사람으로 살아온 3년을 거쳐 그렇게 이 마을에 뿌리를 내렸다.
“놈 보기에도 참 부지런하구나 인정 받게 살고, 놈의 땅만 부쳐묵다가 시나브로 내 땅을 사게 되고.”
신정심 할매는 “여그 와서 팥죽을 니 번을 낄였네”라고 말한다. 이사를 네 차례 했다는 말이다.
“옛날에는 이사하문 팥죽 낄이고 술 장만해서 이웃 사람들 불러서 집들이를 해.”
이 집에 산 지는 스무 해 남짓이다. 결산하면, “가진 것 없이 왔지”에서 “인자 남 안 붑지(부럽지)”.
허투루 보지 않고 건성으로 대하지 않고
“딸만 내리 셋을 낳고, 머스마를 늦게 났어. 애기가 하도 커서 근가 못 낳고, 갤국 벵원에 가서 애기를 났어. 그전에는 집에서 낳제 누가 벵원에 가서 낳가니. 벵원에서 난게 왜 그러코 놈부끄런가 몰라. 대전 벵원에까지 가서 낳는디 논 두 마지기 값이 들어갔어.”
마땅히 부끄러워 해야 할 일 앞에서도 부끄러움 잃고 사는 세상에서, 별것을 다 ‘부끄러움의 내력’으로 간직하고 살아온 할매. 딸 셋 아들 둘, 오남매를 낳고 키웠다.
“짐장할 때문 자식네들 다 와서 떼죽으로 하지.”
할매 할배에게 행복이란 “자식손주들 모도 모태서 옥작옥작 왁작왁작 화목한 것”이다.
골목쪽 담벼락에 농구대가 있다.
“우리 막내아들이 애기들 놀라고 맨들았지. 손주들이 노는 것 보문 귀여워. 우리 손주뿐만 아니라 놈의 손주들도 보문 다 귀엽지 귀여워 겁나게 귀여워. 놈의 손주들도 벌로 안봐. 다 이뻬.”
“요놈! 요놈! 요 이쁜놈!”,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좋다! 좋다! 좋다”고, 아름답고 무구한 것들을 향해 세 번 되풀이 말하던 천상병 시인의 말버릇처럼 할배도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 한 번으로는 도무지 양에 차지 않는 대견함과 귀여움인 것이다.
“벌로 안봐. 애린 것들은 다 이쁘지. 사람도 곡식도 기르고 키우는 것들은 다 그래. 한없이 귀하고 이뻬.”
허투루 보지 않고 건성으로 대하지 않고 귀히 여기고 귀히 대접하는 마음이 ‘벌로 안본다’는 그 말씀에 깃들어 있다.
“우리는 성질이 오무리고는 못 살아”
할배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대문 여는 일이다. “새 공기 들오라고, 집도 기지개 키라고.”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 내 집 앞을 지나는 그 누구든 환영하고 환대하는 마음길 따라 복(福)이 들어올진저.
집 대문 양 옆으로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그저 쓰임과 나눔을 위해 투덕투덕 수더분하게 지어낸 솜씨다. ‘누구든 쉬어가시오’라고 묵묵히 청하는 의자.
“동네 사람이라문 한번씩은 다 앙거봤지. 밭에 옴서감서 쉬었다 가고 노다 가고. 저 욱으로 또랑 건너서는 충청도 영동이여. 충청도 사람들이 장에 갈 때 요 앞으로 걸어서 큰질로 나가. 여그서 쉬었다 가지. 사람들이 여그 앙겄다 갈 적이문 하다못해 물 한 그릇이라도 음료수 한 개라도 대접해야 내 맘이 좋아.”
지나는 사람마다 불러들여 추운 날에는 따숩게, 뜨건 날에는 시원하게 물 한 그릇이라도 먹여 보내고자픈 그 마음으로 산다.
“우리는 성질이 오무리고는 못 살아. 피고 살아야 좋제.”
‘놈 주는 추미(취미)’를 갖고 사는 할배에게 ‘곤란한 때’란 이런 때다.
“특히나 장에 나갈 때문 주머니에 돈이 떨어지문 안되지. 근디 주머니에 돈이 달랑달랑할 때문 꼭 반가운 사람이 만나지네. 그러문 술 묵으러 가잔 소리도 못하고 그때가 심히 곤란할 때여. 근게 돈을 션찮게 가져가문 안돼. 주머니 도독허니 가져가야지.”
“우리 할멈 따숩게 하는 게 좋지”
예전엔 소죽방과 사랑방이 잇대져 있던 아랫채가 할매 할배의 겨울방이다.
방 윗목을 차지한 것은 깊고 큰 다라이. 왕겨 채곡채곡 채워 고구마 채곡채곡 간수해 두었다.
“덜 썩으라고 왱겨를 놓는 거여. 이래 놔두문 봄내 묵어. 아들네딸네 오문 가져가고. 옛날에는 봄에 해동하드락 고구마가 겨울내 묵고사는 양석이여. 따시라고 통가리 만들어서 싸고 마루밑에 구덩이 파서 묻고 그랬지.”
윗목을 차지하고 긴긴 겨울을 함께 나는 고구마 다라이는 그 방의 어엿한 일원이다.
“초등학교 댕기는 손주가 보고 고구마밭이라고 그래.”
늙은호박 한 덩이도 그 ‘고구마밭’ 위에 덩실하니 좌정했다.
“씨 할라고 냉겨둔 거.” 듬쑥한 덩이 안에 봄날의 기약을 품고 있다.
겨울 내내 아랫목 뜨근뜨근하다. “절절 끓어. 춘 디서 일하다 곱은 손을 아랫목 이불 아래 넣는 그 재미가 좋아.” 아궁이에 군불을 때는 일은 할배의 소임.
“해 넘어가문 때지.” 겨울날 어둑해질 무렵의 일과다. 아궁이 앞에 낮게 쭈그려앉는다. 긴 겨울밤을 건너갈 채비를 한다.
“이거 오래 되도 안했어. 얼매 안돼”라고 말하는 거멍무쇠솥은 스무 해 남짓.
솥뚜껑은 꿈적하지 않는다. 무거운 것이 그의 미덕. “소두방은 무거야 안 열려. 개보문 쉽게 열려불지. 사람 입도 개보문 자꼬 열리대끼.”
무쇠솥 안에는 물이 담겨 있다.
“뜨시게 해서 즘생들 줘. 요새는 춘게 물이 얼잖아. 개하고 닭한테 따땃하니 해서 주문 좋지.”
타닥타닥 타는 불빛이 할배 얼굴을 바알갛게 물들인다. 익숙하고 정다운 냉갈내가 피어오른다.
“우리 할멈 따숩게 한게 이 내맘이 좋지.”
내 마음에 불씨가 있어야 불이 붙는 법. 마음속에 늘 따순 불씨를 품고 산다.
할멈을 따숩게 해서 이 내맘 행복해지는 겨울 저녁의 고요한 평화가 그곳에 어린다.
글=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