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신선한 경험

[조대영의 영화읽기]‘레 미제라블’

2022-03-03     조대영

소설 ‘레 미제라블’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감옥살이를 한 장 발장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이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무엇보다 장 발장이라는 전과자가, 사회 밑바닥에서부터 온갖 고난과 사회의 편견을 극복하고 스스로 속죄하고 희생하는, 숭고한 한 인간의 극적인 드라마를 보여주는 데 있다.

이 불멸의 고전은 그간 여러 차례 타 예술 장르의 재료가 되기도 했다. 만화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으며, 뮤지컬로 만들어 지기도 했다. 1985년 초연 이래 27년간 40여 개국에서 공연되며 전 세계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바로 그 작품을 말한다. 오늘의 영화는 그 뮤지컬이 토대가 되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에 관객들은 알게 된다. 이 영화가 송스루(노래만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 형식의 뮤지컬영화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 ‘레 미제라블’은 여타의 뮤지컬 영화들이 대사와 노래가 적절하게 섞여서 서사를 끌어간 것과는 달리, 대사의 98%를 노래만으로 대치하는 파격을 실험하는 것이다. 하여 배우들의 육성을 실은 노래로 내용을 전하는 것을 관객들은 낯설지만 신선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뮤지컬의 양식성을 취하면서 득을 보게 되는 것은, 상황의 디테일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문제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고 ‘레 미제라블’이 원작이 가지고 있는 거대서사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송스루를 고집하되 원작의 이야기와 주제의식을 이 작품은 견지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배우들의 대사들을 대신하는 각각의 노랫말에는 캐릭터가 살아나도록 신경 쓰고 있고, 함축적인 가사는 원작의 감동을 훼손시키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원작을 살려낸 작품답게, 쫓기는 장 발장(휴 잭맨)과 뒤쫓는 자베르(러셀 크로우)의 이야기가 중심축이 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가석방으로 풀려난 장 발장과 그를 주시하고 감시하는 자베르의 악연은, 히어로 대 안티히어로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영화의 축이자 흥미진진함을 주는 강력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또 주제의식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가난 때문에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이나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장 발장은 법에 대한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고, 법에 대한 원칙적인 가치를 내세워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를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 자베르는 자베르 나름대로 소신이 있는 것이다. 여튼 두 사람의 갈등은 이 작품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를 명확히 한다. 죄란 무엇이고 법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체제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법이 되려 힘없는 민중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를 성찰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또한, ‘레 미제라블’이 개인의 이야기와 프랑스의 역사를 촘촘하게 엮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은식기를 훔친 장 발장에게 은수저를 더해 주며 자비를 베풀었던 미리엘주교의 일화, 자신이 믿고 있는 것만이 정의고 그 정의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업이라는 아집을 가졌던 자베르의 최후의 선택, 마리우스(에디 레드메인)와 코제트(아만다 사이프리드) 그리고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에포닌(사만다 뱅크스)의 삼각관계,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인간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억압에서 인간을 해방시키고자 정부군과 전투를 벌이는 혁명군의 이야기 등이 이름난 배우들의 노래 가락에 실려 흥미롭게 펼쳐지는 것이다.

‘레 미제라블’은 송스루 뮤지컬로서 영화 전편에 하모니가 울려 퍼지도록 했고,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주제의식 역시 놓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노래로 내용을 전하고자 했던 이 작품의 도전정신은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조대영 (영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