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유머 코드, 실험적 요소
[조대영의 영화읽기]‘남자사용설명서’
‘러브 픽션’은, 이원석 감독에게 선물 같은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저속취미로서의 키치적인 감수성이 돋보였던 ‘러브 픽션’은, B급스러운 작품을 8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버틴 신인감독에게 희망을 주었을 것이라고 가정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남자사용설명서’는 영화 전반이 B급 정서가 물씬 풍기는 저속취미의 감수성으로 채워진 영화다. 고급스러운 것에 엿 먹이는 상스러움을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가 ‘남자사용설명서’인 것이다.
영화의 설정부터가 그렇다. 존재감 없던 여자가 마법사가 추천한 ‘남자사용설명서’라는 비디오를 보고, 한류스타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남자를 사용하는 설명서’라고? 그렇다. 연애와 일에서 잘 풀리지 않는 최보나(이시영)가 재생시키는 남자공략 비디오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키기는 것이다.
그 내용인즉슨, 남자에게 호감을 얻기, 관계를 지속시키기, 남자에게 칭찬하기, 생활 스킨십으로 친밀감 높이기 등 인데, 이를 그대로 따라하는 주인공을 주시하면서 관객들은 묘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영화의 묘미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고 결정적인 소품이기도 한 ‘남자사용설명서’는 그 화면에 있어서도 키치적인 정서가 풀풀 풍긴다. 외국인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가 엉뚱하게 재미있고, CG로 완성된 복고풍의 자막이나 저화질의 영상, 원색을 강화한 색감까지 B급스러운 요소들이 한데 버무려지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비디오 속의 주인공인 스왈스키(박영규)가 영화 속에서도 맹활약하며 훈수를 두도록 한 것이랄지,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 등 관습을 깨트리고자 하는 유희적인 요소역시 B급 정신의 발로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로맨틱코미디일 수밖에 없는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여자와 남자의 밀고 당기기의 사랑게임이 지배적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 수긍한다면, 보나가 자신에게 키스세례를 퍼부으려는 승재(오정세)를 밀어내고 여러 차례 따귀를 때리는 엘리베이터신은 이 영화의 대표적인 장면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문제는 부분 부분의 장면들은 재치 있다고 하더라도, 러브라인을 구축하고 갈등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어색함이 노출되는 것은 다소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결국, ‘남자사용설명서’는 남녀 간의 달콤한 로맨스의 완성이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고 마무리 된다. 허나 감독은 정작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표면 아래에 숨겨 놓고 있기도 하다.
5년 째, 잘나가는 광고감독 아래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최보나는 말한다. “내 성공을 놓고 만약 내가 남자였다면 능력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내가 여자라서 내 능력이 아니라 다른 남자랑 잔거냐는 말을 듣는다”는, 그녀의 말에 압축되어 있는 것은 남성지배구도의 세상에 대한 불만이다.
육봉아(이원종) 감독이나 우성철(김정태) 감독은 여자로 대변되는 약자를 착취하는 기득권자들이다.
영화는 소박하게나마 이런 세상에 응징을 가한다. 개들의 장난으로 이 세상의 축소판인 광고세트장이 무너져 내리도록 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곳에 ‘사랑’이 남겨지도록 했다는 것이다.
‘남자사용설명서’는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영화일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예상하고 극장을 찾는 관객이라면 ‘이게 뭐야?’ 라며 낯선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고, 빤한 로맨틱 코미디에 싫증난 관객이라면 독특한 유머 코드에, 실험적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이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조대영<영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