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삼시롱 공력을 들임시롱 살아야제”

[다시 봄-02]

2022-05-16     남신희
큰 소나무가 굽어보는 자리, 김선이 어매는 오늘도 밭에서 오늘치의 공력을 다 기울이고 있다.

“오매 인자 자기 밭에 나옴서도 마스크를 써야 하는 시상이 되아불었소. 코로나는 안 끝났어도 봄 와서 따솨진께 좋구만. 징역살이 조깨 풀려난 것 같구만.”

흙밭에 앉은 김선이(85·담양 대덕면 운암리) 어매는 “여그가 내 병원이요”라고 말한다.

“이러코 일을 해야 맘이 핀하고 좋아.”

어매네 밭은 길 건너 소나무가 듬직하게 굽어보는 자리다. 키 29미터에 수령은 350년. 몽한각(夢漢閣, 양녕대군의 증손인 이서의 재실) 들머리의 250살 잡순 또 다른 소나무와 더불어 ‘담양 매산리 소나무’(전라남도기념물 제242호)로 불린다.

“나 열아홉 살에 시집온게로 그때도 이 솔나무가 꼭 요로코 커갖고 있었어. 팽생 여그서 날마다 보제. 훤칠하니 잘 생기셨어. 하래 두 번 시 번씩 쳐다봐. 나 죽드락 보제. 나 안 보이문 그 할망구 어디 갔는고 하시겄제.”

소나무가 저만치서 항시 지켜보는 밭에서 어매는 오늘도 꼼지락꼼지락 일을 하고 있다.

“둘이 몽그려서 밭을 사고 사고”
“아파서 잘 걸어댕기도 못해. 일을 내가 많이 했어, 허기는. 팽생 꾀병을 못해. 지금도 꾀병을 못해.”

이유는 “엄살 하문 누가 받아준다요.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엄살도 부리는 것이제.”
“집에서 십 분 걸어서 요 밭으로 와. 보행기 밀고 살살 걸어와.”

밭은 이 봄날 어매가 ‘젤로 오고자운’ 곳이다.

“인자 요거 남았어. 다른 밭은 나이를 묵어서 인자 못 하겄길래 못 가겄길래 아들한테 말했어, 팔아라. (밭을) 벌 사람이 없어. 이참에 설 안에 팔았어.”

‘팔아라’. 어매한테는 무겁고 힘든 한마디였다.

“우리는 땅이라문 눈물나고 부러뵈는 시상을 살았제. 전에는 땅 늘려가는 재미가 젤로 컸어. 영감이 온동네 논이야 밭이야 토옹 쟁기질 해갖고 벌고 놈의집살이해서 벌어서 한 마지기 한 마지기 보태나왔제. 둘이 고생고생해서 몽그려서 논 사고 밭 사고.”

영감님은 65살에 먼길 가셨다.

“맨 쟁기질만 하다 가셨제. 핀하게 밥 한끄니를 못 묵고 일만 일만 하다가. 일하는 모습으로만 떠올라. 소 갖고 하릿내 놈의 밭이야 논이야 다 갈아주고.”

해마다 봄이면 영감님과 더불어 쟁기질하던 소와 마지막으로 작별했던 날도 기억한다.

“쥔이 죽어불고 없응께, 인자 쟁기질 할 사람 없응께 담양장 소전으로 팔러갈라고 소차가 왔는디 소가 눈물을 펄펄 흘리고 차로 안 올라갈라그래. 겨우 실어갖고 갔는디 담양장에 내려노문 딱 걸어들어가야 한디 차에서 물팍을 꿇고 인나도 안했다요. 아들이 속상해서 얼릉 싸게 폴고 와불었어. 아들도 울고 왔제. 한 식구인디, 항. 소가 울던 얼굴도 아들이 울던 얼굴도 눈에가 시방도 환하제.”

“잠을 자도 풀이 어른어른거려서 잠이 안와. 일을 해불어야 개안하제.”

“잠을 자도 풀이 어른어른거려서 잠이 안와”
“거그를 인자 집을 두 채 지슨다요. 한 보름 전에 마지막 농사 지은 시금추 캐러 갔제.”

마지막이란 말에 서운함이 서린다.

“못 댕기겄능께 팔기는 팔았는디 맘이 서운하제. 몽그리고 사갖고 영감이 땀흘리던 땅인디. 날마다 내 손으로 따듬던 밭인디.”

“나, 마지막으로 왔소”라고 그 밭에도 고하고, 돌아가신 영감님께도 고했다.

“아들은 맨나 일하지마라그래. 호맹이도 내불고 밭이 안 보이는 디로 고개 돌리고 댕기라고 쳐다보도 말고 댕기라고 근디, 나는 잠을 자도 풀이 어른어른거려서 잠이 안와. 뽑아불어야 개안하제. 일을 해야 시원하제. 인자 요리는 꽤 숨꼬 저 욱으로는 꼬추 숨꼬 고구마 땅콩 숨꼬….”

빈밭에 어매의 계획이 옥잘옥잘 심어진다.

“아직 이녁땅이라고 말할 땅이 있응께 좋제. 손발에 흙을 몬쳐야 존 것이여. 사람이 삼시롱 공력을 들임시롱 살아야제 놀기만 하문 재미가 없제.”

글 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