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평범한 사람들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
[마흔두 번째 오월-04] 뮤지컬 ‘광주’ 광주항쟁의 첫 기억, 수시로 소환되는 기준점
기억 하나.
1987년 5월, 중학생이었던 나는 우연히 금남로에 나갔다가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광주가톨릭센터(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렸던 5·18사진전을 보게 된다. 총탄이 관통한 시신들과 무자비한 폭력이 여과없이 담긴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고, 사실상 내게 광주항쟁의 첫 기억이 된 그날의 충격은 이후의 삶에 수시로 소환되는 어떤 기준점이 되었다.
기억 둘.
1995년 5월. 대학생이었던 나는 5·18전야제를 보러 나갔다가 금남로에 나붙은 그림들(광주미술인공동체의 일곱 번째 5월전 ‘5월 특별법 제정을 위한 35인 가해자 얼굴’)을 보았다.
전두환·노태우는 물론이고, 군복을 입은 지휘관들이 제각각 뒤틀리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고, 구름떼처럼 몰려들어 그림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속에서 ‘풍자’라는 개념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5월 특별법 제정을 위해 수없이 열린 집회와 시위에 참여하며 느꼈던 긴장과 불안감과는 완전히 다른 통쾌함과 신선함이 온 몸을 휘감았고, 이날을 나는 누군가의 가르침 없이 예술의 힘을 체감했던 날로 기억한다.
기억 셋.
2013년 2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이 개최한 창작레지던시 ‘도시횡단프로젝트’는 당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었던 광천시민아파트와 전일빌딩에서 각각 공연과 전시를 펼쳤다.
들불야학의 역사를 품은 광천시민아파트에서의 공연과 전시에 참여한 나는, 그날 저녁 전일빌딩에서 열린 ‘유랑축제, 광주 <침묵의 시간들>’을 보았다.
전일빌딩 옥상에서 피어오르는 불꽃과 연기, 마치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이 건물을 위로하듯 벽면을 타고 춤을 추는 배우의 몸짓을 시계탑 언저리 교통섬에서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슬픔과 감동에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날 프로젝트 이후 전일빌딩 보존에 대한 담론이 지역에 확산되었고, 광주항쟁의 참상을 겪어낸 이 사연 많은 빌딩은 끝내 리모델링을 거쳐 오늘까지 남아 있다.
계엄군의 총칼 앞에 맞섰던 평범한 광주사람들의 저항정신 형상화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졌던 항쟁의 기억은 지난 42년 동안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사람들과 사건들을 종과 횡으로 엮어내며 기억되고 있다. 그 강렬했던 시간의 기억들은 시인, 소설가, 화가, 만화가, 연극인, 영화감독 등에 의해 다종다양한 콘텐츠가 되어 어딘가에서 사람들의 가슴을 때린다.
내가 겪었던 시간들 속에 우연히 다가와 나 역시 경험하지 못한 항쟁의 기억을 간접체험하게 해준 것은 바로 누군가가 절박한 심정으로 만들어낸 그 콘텐츠들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4.15~5.1)에 올려진 뮤지컬 <광주>(극본 고선웅·안필단, 연출 고선웅)도 그렇다. 광주항쟁 40주년을 앞둔 2019년, 광주문화재단이 광주에서 벌어진 이 역사적 사건을 뮤지컬로 제작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멀어진 세대들에게 보다 생생하게 항쟁을 간접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겠다는 의도였다.
항쟁지도부로 참여해 끝내 목숨을 내던짐으로써 광주의 존엄을 지켜냈던 대변인 윤상원과 들불야학의 별들, 항쟁의 거리에서 가두방송으로 언론을 대신했던 전옥주 같은 여성들, 무엇보다 평온했던 일상을 빼앗겼지만 인간됨을 포기할 수 없어 계엄군의 총칼 앞에 맞섰던 평범한 광주사람들의 저항정신이 배우들의 몸짓과 음악, 무대 연출에 녹아들어 그날의 참상을 재현해낸다.
여기에 항쟁 40주년을 앞두고 터져나왔던 전직 미국 정보요원의 증언이 이 뮤지컬을 그간의 콘텐츠들과 구분짓는 모티브가 된다.
2019년 5월, 전직 미군 정보요원 김용장씨는 1980년 광주에서 신군부가 민간인 복장의 특수요원인 편의대를 시민들 속에 투입해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무기를 탈취하는 등의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함으로써 광주 유혈진압의 명분을 만들어냈다는 충격적인 증언을 남겼다.
뮤지컬 <광주>는 그의 증언을 토대로 하여 광주항쟁의 주역으로 활동했던 ‘윤이건’과 505보안부대 소속 편의대원인 ‘박한수’라는 두 인물을 축으로 서사를 창작해냈다.
독재자의 죽음을 틈타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또 다른 독재자에 맞서 광주시민들은 민주화를 외치고, 시민들을 선동하기 위해 특수임무를 띠고 고향 광주에 투입된 편의대원 박한수는 항쟁지도자 윤이건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항쟁의 한복판에서 참상을 목격하면서 점차 자신의 임무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폭력적 저항을 유도하는 편의대원들의 선동에 거리를 두던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의 만행에 맞서 끝내 총을 들게 되고, 박한수는 결국 자신의 임무를 부정하며 시민군과 군 지휘부 양쪽을 설득해 시민들의 희생을 막으려 노력한다. 끝내 윤이건과 시민군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목도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괴로움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의 책무를 다짐하며 희생된 광주시민들의 이름 앞에 선다.
교과서와는 달리 우리가 예술작품에 기대하는 것은 기존의 타성을 뛰어넘는 창의적 발상과 도전적 문제의식일 것이다.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인, 밝혀내야 할 의문점이 무수히 많은 역사적 사실들 중에서 어떤 조각을 선택하느냐의 해답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까.
무엇보다 광주항쟁 이후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기념하기 위해 창작되어 한국 민주화운동의 애국가가 된 ‘님을 위한 행진곡’이 극 중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며 비극성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이 인간의 도리를 포기하지 않은 채 참여와 희생을 통해 항쟁을 완성해낸 광주의 위대함이 두 주인공의 활약을 뒷받침하는 보조재로 쓰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작진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다.
광주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설 미래 세대들을 기다리며
2시간45분에 이르는 광주항쟁의 서사를 지켜보며 관객들은 저마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경험, 관점에 따라 극의 마디마디에서 불현듯 복잡한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아직 진실이 다 밝혀지지 못한 광주항쟁의 면면들 중에서도 특히 편의대원의 이야기가 극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과 당혹감이 그렇다.
광주의 오월이라는 저수지에서 건져올려야 할 감동적인 사연들은 차고 넘치며, 지금 이 순간에도 발굴되고 있다. 생과 사의 갈림길 위에서 빛났던 감동적인 이야기들보다 굳이 편의대 이야기가 핵심적인 플롯으로 자리잡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아마도 등장인물들의 갈등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을 것으로 짐작해보지만, 결과적으로 이 야심찬 기획의 취지가 실현될 수 있을지 자문해봐야 한다.
광주 사람들이 겪은 비극은 너무도 강렬하고도 때론 아름다운 체험이었다. 42년에 걸쳐 지속된 억압과 왜곡의 시도에도 결국 진실을 찾아가고 있는 이 역사를 다름아닌 ‘뮤지컬’이라는 형식으로 재현하는 도전이 못미더운 이들도 있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이 무모한 도전에 기꺼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뮤지컬을 통해 광주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설 미래 세대들이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나 자신이 직접 겪지 못했던 1980년 광주를 세 번에 걸쳐 강렬하게 간접체험하면서 오월의 자장에 빨려 들어갔듯이.
광주를 다룬 콘텐츠들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냉정한 비평은 어쩌면 숙명이 아닐까. 그날의 광주사람들이, 혹은 그 후의 광주사람들이 겪어내야 했던 현실은 그 어떤 콘텐츠도 다다를 수 없는 절대적 경험인 까닭에.
서울 예술의전당 벽면에 걸린 대형 현수막에 적힌 ‘광주’라는 단어를 보며 느낀 기대와 우려, 공연을 보고 난 뒤 다시 올려다본 ‘광주’는 다시금 나와 우리들에게 숙제를 남긴다. 오월광주엔 해야 할 말이 아직 많고, 들어야 할 말들도 많으며, 그 말들은 젊은 세대들에게도 통하는 콘텐츠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 살아남은 자의 책무를 생각해보는 밤이다.
글·사진 최성욱 <다큐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