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옛 사진 한 장 들고 마포로-03] 사진속 그 사람-박영근 시인

2022-07-13     전라도닷컴
박영근 시인.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안치환이 부른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전은 박영근의 시이다.
박영근(1958~2006) 시인의 고향은 변산면 마포리 산기마을.
그는 전주고를 수학한 뒤 서울로 상경, 현장노동자로 일하다가 노동문화패 `두렁’에 참여하면서 삶의 터를 인천으로 옮겼다. 《반시》 6집에 `수유리에서’를 발표하면서 시인이 됐고, `노동자시인 박영근’은 스물여섯 살이던 1984년에 펴낸 첫 시집 《취업 공고판 앞에서》부터다. `솔아 푸른 솔아-백제 6’도 이 시집에 실렸다.
노동자의 정체성을 갖고 세계와 대결한 그는 박노해, 백무산과 함께 1980∼1990년대를 대표하는 노동시인이다.
오랫동안 인천 부평에서 살며 도시의 노동자들과 함께 한 그의 시에는 깊은 서정과 눈물이 배어 있다.
첫 시집 《취업 공고판 앞에서》의 서시엔 <가다가 가다가/ 울다가 일어서다가/ 만나는 작은 빛들을/ 시라고 부르고 싶다>는 구절이 있다.
그의 시적 지향이 짚어진다. 군사 독재시대의 엄혹함을 `노동의 힘’으로 헤쳐나온 그는 신자유주의와 물질만능에 빠져버린 세상에 절망했다
<내 안에서 누군가 울고 있다// 돌아가고 싶다고/ 오래 나를 흔들고 있다// 한밤중인데 문밖에선 비 떨어지는 소리// 아직도 그곳에서는 봄이면 사람들이 밭을 갈고/ 논물에 비쳐드는 노을의 한때를/ 흥건하게 웃고 있는가//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들과/ 돌아갈 저녁 불빛이 있는가// 종소리/ 시간의 먼 집으로 돌아가는/ 종소리>(`슬픈 눈빛’ 중)
두고 온 고향 부안에 늘 걸쳐져 있던 그의 내면이 들여다 보인다. 2006년 병으로 타계하기까지 《대열》(풀빛, 1987), 《김미순전》(1993, 실천문학사),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창비, 1997), 《저 꽃이 불편하다》(창비, 2002) 등의 시집을 펴냈으며 2003년 제5회 백석문학상을 받았다. 유고 시집으로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창비, 2007)가 나왔으며 10주기를 맞아 《박영근 전집》(2권, 실천문학사)이 2016년에 나왔다.
“시인에게 삶에 대한 절망보다 위험한 것은 글쓰기에 대한 포기에의 유혹일 것이다. 현실과 삶에 대한 절망 속을 살면서 그 절망의 의미조차 묻지 않는다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생전에 쓴 시평 중)
달라진 세상 속에서 절망하면서도, 그 절망의 의미를 묻는 치열함을 내려놓지 않았던 시인이다.
박영근 시인을 기리는 모임인 `박영근 시인 기념사업회’(회장·서홍관)는 지난 2015년부터 `박영근 작품상’을 제정·운영해 오고 있는데, 올해 수상작으로는 이설야 시인의 `앵무새를 잃어버린 아이’가 선정됐다.
시상식과 추모행사가 인천 부평구청 옆 신트리공원에 세워진 `박영근 시비’ 앞에서 해마다 열리고 있다.

글=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