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와 산기 두 마을의 지킴이

[옛 사진 한 장 들고 마포로-04] 당산나무

2022-07-13     전라도닷컴
거대한 산을 이루는 팽나무 한 그루. 마포와 산기 두 마을을 잇는 당산나무다.

 

팽나무 한 그루가 거대한 산을 이룬다. 그늘도 드넓다.
300여 살을 잡순 당산나무는 마포와 산기 두 마을을 잇는 마포다리 부근의 길가에 자리하고 있다. 백마산 아랫마을 마포와 옥녀봉 아랫마을 산기는 마포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이웃 마을. 마포에서는 산기를 `저건네’라고 부르고 산기에서는 마포를 `저건네’라고 부른다.

거대한 산을 이루는 팽나무 한 그루. 마포와 산기 두 마을을 잇는 당산나무다.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두 마을이 함께 당산제를 지내왔다. 두 마을이 경계 없이 함께 아끼고 돌보고 귀하게 여기는 나무다. 당산나무 건너편 고추밭에서 일하던 장동민(69)씨는 “여럿이 정성을 모으긴 했는디 올해는 옷이 덜 이뻬”라고 아쉬워 한다.
“몇 년 전까지는 마포, 산기 양 마을 잔치하다시피 했지. 근디 코로나로 당산제가 중단되고 여럿이 만나는 거이 안된께 올해도 정월대보름에 제는 못 지내고 몇 명 모태서 옷을 입혔어. 나도 나갔지. 원래는 지푸라기로 동아줄을 굵게 꽈서 이삐게 입히는디….”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서로 마음을 모으고 힘을 합치는 시간이 된다. “꼬는 것이 시간도 꽤 걸리고, 한둘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사람도 꽤 많이 모타야 혀. 추수하문 지푸락을 보관했다가 음력 정월보름날을 기해서 마포, 산기 두 마을에서 합심해서 줄을 꽈. 길게 꽈. 두 마을이 한 마을이나 마찬가지여. 종교 안 따지고 마을의 잔치 개념으로 치러. 새끼 꽈서 동아줄 만들어서 마을주민들이 메고 이 동네 한 바쿠 돌고 저 동네 한 바쿠 돌고 나서 나무에 옷을 입히지.”
정월 보름날이면 새끼줄을 꼬아 만든 용줄을 어깨에 들쳐메고 마을 구석구석 지신밟기를 하고 당산나무 주위를 돌며 한 해의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빈다. 남자 여자로 편을 갈라 용줄로 줄다리기도 한다. 남자 대 여자의 줄다리기는 그 옛날부터 여자 편이 이기도록 설계돼 있다.
여자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용줄을 당산나무에 감고 입히고 나서 당산제를 모신다음 함께 음복을 하고 음식을 나눠 먹는다.
마포, 산기 두 마을 주민들을 비롯 `천둥소리’ 풍물패며 `한살림’의 부안 생산자공동체 `산들바다공동체’ 등이 당산제를 함께 해 왔다. 들썩들썩 흥과 힘을 불어넣는 당산제. 변해가는 시절 속에 마을공동체를 이어온 중심엔 당산나무가 서 있다.
마포마을 최희영(78)씨는 “거판해요. 양쪽 동네 다 오고 풍물도 치고 학생들도 오고. 코로나만 없으문 내년에는 지낼 것이요”라고 말한다.
당산나무 둘레 담벼락에 `세 친구의 이야기’란 벽화가 그려져 있고 유래도 전한다. <지금부터 5백년도 넘은 옛날에 마포천과 포구가 만나는 이 부근은 세 친구들이 재미나게 놀던 장소였습니다. 조씨 성을 가진 친구는 옥녀봉 밑에서 옹기를 구웠고, 오씨 성을 가진 친구는 하섬에 살면서 고기를 잡고 생활하였습니다. 비가 오기 전에는 농사 짓는 친구 일을 돕고, 비가 올 때는 옹기 굽는 친구의 일을 돕고, 비온 뒤에는 고기 잡는 친구의 일을 서로 도우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는 석 달이 넘도록 비가 오면서 옹기 굽는 친구 일만 돕다가 그만 친구들이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후 친구들이 죽을 때까지 우정이 회복되지 못하고 급기야 죽을 때에 자식들에게 재미나게 놀던 이 자리에 묻어 달라고 유훈을 했습니다.
친구들이 죽고 난 몇 년 후에 나무 세 그루가 서로 보듬고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이 마을에는 오씨, 김씨, 조씨 성을 가진 주민들이 사이좋게 지냅니다. 또한 주민들이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각기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어도 정월대보름이면 세 친구의 우정을 기리기 위해 큰 잔치를 벌이며 사이좋게 놀고 있습니다.>

글=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