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책맹’이라면 책을 읽어주세요

[김경란 교수 자녀교육 일기]

2022-08-25     김경란
김경란 교수

 어려서 늘 책을 읽어달라고 조르던 아이가 한글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던 아이인 줄 알았는데, 아이는 자신이 혼자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는데도 책을 멀리합니다.

 유아기에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부모님 곁에서 스킨십을 즐기고 싶은 욕구가 가장 많고, 책읽기를 하는 시간은 부모님과 신체적으로 가장 밀착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즉, 어린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조르는 것은 책보다는 부모님과 눈을 맞추면서 부모님의 부드러운 음성을 듣는 동안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좋은 경험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모님 곁에서 즐거운 경험을 하는 동안 책에 대한 흥미가 발생하고 글자와 어휘도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즐겁고 행복했던 경험이 나중에는 책을 좋아하는 경험으로 전이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자녀가 부모님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할 때 부모님은 바빠서 책을 읽어주지 못했습니다. 막상 자녀가 초등학생이 될 때, 자녀에게 “왜 집중해서 책을 한페이지도 못읽니?” 라고 꾸짖습니다. 분명히 다양한 영상자료를 볼 때, 집중을 잘한 아이인데 책을 볼 때는 잠시도 앉아있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영상을 볼 때의 뇌파는 잠잘 때의 뇌파와 유사해서 아이들이 텔레비전이나 유튜브를 보면서 집중하고 몰입한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아이들의 뇌는 별로 활동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아이가 학습을 잘하기 위해 꼭 필요한 집중력은 책읽기를 해야만 발달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잠시만 기억할 수 있는 단기기억은 얼굴의 이마 부분인 뇌의 이마엽이 담당하는데 이마엽이 성숙하면 뇌의 처리용량(워킹메모리)이 커지게 되어 기억을 많이 저장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워킹메모리 저장소에는 1~2개 항목만 저장할 수 있고 12세에는 5개, 약 15세에는 워킹메모리가 최대 용량으로 발달합니다.

 또한 워킹 메모리의 용량이 커지면 아이들은 장기 기억을 잘 해서 학습은 물론 자신의 감정 통제나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 노력도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뇌의 집중 능력과 워킹 메모리 용량의 발달을 위한 방법을 알아내기 위한 연구에서 밝혀진 공통점은 독서입니다.

 독서는 책을 보는 동안 페이지를 넘겨야 하는데 책을 넘기기 전에 약 3분 이상 한 페이지에 집중해야 하고, 책의 내용 중 등장인물, 장소, 이어지는 책의 내용에 대한 연관성을 중간, 중간 반복해서 계속 뇌에 저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뇌의 노화를 늦추기 위한 활동이나 치매예방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도 책읽기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책을 읽어달라고 할 때 똑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직 학습이 완성되지 않은 아이는 계속 새로운 단어를 듣고 낯선 단어들을 맥락적으로 이해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어휘의 의미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성인이 새로운 모임에서 만난 낯선 사람의 이름을 여러 번 듣고도 자꾸 잊어서 다시 묻거나 전화번호, 주소를 한 번에 외우지 못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제롬 케이건은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고 아이가 보이는 반응에 성심껏 귀를 기울여야하고 특히 개별적으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면 아이의 집중력 향상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정보를 알게 하는 통로는 언어인데 언어를 잘하게 된다는 것은 외부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좋아진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지식과 정보를 일반적으로 말(언어)을 통해서 습득하기 때문에 알고 있는 어휘가 많다면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도 기본 단어를 알고 있어야 학습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수학도 스토리텔링의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능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하늘을 날던 참새 8마리 중 3마리가 전깃줄에 앉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참새 2마리가 또 전깃줄에 앉았습니다. 그러면 하늘을 날고 있는 참새는 모두 몇 마리인가요? 전깃줄에 앉은 참새는 모두 몇 마리인가요?’ 문제처럼 숫자를 알아야하는 것은 물론 셈을 하기 이전에 언어로 구성된 수학문제를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혹시 지금 당신의 자녀가 `책맹’이라면 지금 바로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셔야 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점은 자녀의 현재 발달수준과 흥미에 맞는 책을 선정하는 것입니다. 공주 이야기에 푹 빠진 아이에게는 역사 속의 공주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축구에 관심이 많은 아이라면 축구 선수의 자서전, 축구의 역사적 유래에 관한 책도 있습니다. 자녀가 다양한 패션에 흥미가 있다면 역사 속 복식 변화나 패션을 연구한 사람들의 이야기 등 자녀가 관심이 있어서 알고 싶어하는 내용이 담긴 책을 추천해주어야 합니다.

 자녀가 흥미있게 생각하는 내용의 책을 선정한 다음, 자녀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면 자녀는 문맹은 물론 책맹에서도 쉽게 탈출할 것입니다. 문의 : kimklan@kwu.ac.kr

 김경란 (광주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