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서 길 찾는 방법

[쾌도난마_필사이언스]디지털·에너지 문해력 문해력, 교양을 넘어 생존의 조건이 되다

2022-10-11     조숙경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급격한 행정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도 마련해주지 않은 공권력에 대한 항거를 다뤘다.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 종종 듣게 되는 이 말을 두고 얼마 전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깊고 간절하다는 뜻의 한자어 `심심(甚深)한’을 `지루한’으로 잘못 이해하면서 일어났던 이 에피소드를 두고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걱정이라며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이것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첨단기술과 함께 급격하게 변화된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문해력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일이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한 해에 선정되는 새로운 용어만도 5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생존 좌우 불구 누구도 안내해주지 않아

 새로운 용어의 출현은 오직 그 용어로서만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현상이 등장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요구하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되었음을 말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과학자scientist’라는 용어도 사실은 19세기에는 완전히 낯설고 새로운 용어였다.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로 자연현상을 탐구하는 철학자들은 `자연철학자natural philosopher’로 불렸다.

 하지만, 과학 혁명기를 거치면서 뉴튼이 만유인력법칙을 정립하고 라브와지에가 산소를 발견했으며,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주창하면서 그 내용과 방법이 방대해지고 복잡해졌다. 자연스럽게 자연철학으로부터 물리학·화학·생물학·지구과학이라는 분야들이 분리되어 나왔고, 특정 분야를 연구하는 전문가라는 의미에서`과학자’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2016년 개봉한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는 인터넷을 전혀 사용할 줄 모르는 장년의 남성이 나온다. 병으로 일을 그만 둔 그는 실업급여를 신청하려고 하지만 온라인에 접속하는 방법조차 모르고, 전화 안내를 받고 싶지만, ARS 전화기에서는 안내 멘트만 계속 반복될 뿐이다. 결국 실업수당 신청을 포기한 그는 깊은 절망감과 좌절을 겪다가 급기야는 회사 벽면에 스프레이로 글을 쓰면서 외로운 투쟁에 들어간다.

 그는 왜 분노하고 항거하는가? 바로 생존과 디지털 기술과의 커다란 간격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급격한 행정 변화에 미처 적응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도 마련해주지 않은 공권력에 대한 항거인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특징을 이해하고 디지털 기술을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인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이 개인의 생존을 좌우함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디지털 문해력에 대한 안내를 해 주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그의 거친 목소리는 디지털 문해력 향상을 위한 제도와 시스템의 부재를 향한 것이었다.

 지난 달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광주를 찾아 `대한민국 디지털 전략’을 발표했다. 포용하는 디지털 사회를 추구하면서 디지털 접근성 확보 및 디지털 격차 해소 등을 담은 `(가칭)디지털 권리장전’을 수립한다고도 밝혔다.

 디지털 인재 양성 만큼이나 중요한 디지털 문해력 향상과 디지털 포용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정말로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에 기여해야 하고, 디지털 문해력 격차가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에너지 문제 해결없인 미래 없다

 디지털 문해력만큼이나 우리의 생존과 연관해서 필요한 문해력이 또 있다. 바로 에너지 문해력(Energy Literacy)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는 에너지의 생산과 유통의 선순환 구조가 깨졌을 때 일상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피폐해질 수 있는지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또한 세계 각지에서 겪는 폭우와 폭염, 가뭄과 태풍 등 각종 재해가 사실은 빠르게 진행되는 기후변화 때문이며, 탄소중립(Net Zero)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 에너지 문제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때문에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해외 선진국들은 청소년과 대중의 에너지 문해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교육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다양한 에너지원이 갖는 장단점이 무엇인지, 에너지를 적정수준으로 사용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지구를 유지할 수 있는 실천적 방법이 있는지, 나아가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시간인 2050년까지 과연 성공적인 에너지 전환을 이뤄낼 수 있는지 등등을 포함하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에너지를 삶의 이슈이자 신산업 창출의 기회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이슈로 보는 견해가 많다. 때문에 에너지와 대중의 접점은 항상 `갈등’이라는 단어가 매개하는 것으로 비쳐져왔다.

 GO(정부기구)는 다분히 에너지 정책의 홍보 차원에서 대중에게 다가가려했고, NGO(시민사회단체)는 정부 정책의 비판자로서 대중을 대변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대중을 잘 대변하고 있지는 못하는 것 같다.

 현실 속의 대중은 에너지의 과학적 특성에 대한 기본적 정보와 지식을 필요로 하고, 합리적인 에너지 소비가 구체적으로 일상생활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가도 알고 싶어 하며, <2050 탄소중립>이라는 글로벌 목표를 위해 어떤 선택의 가능성들이 있으며,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판단하고 싶어한다.

 에너지 문제의 해결 없이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바로 내 삶의 질을 결정하고, 미래 생존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 얼마 만큼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에너지 문해력은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가?

 현대 물리학의 거장인 아인쉬타인은 “나에게 지구를 구할 수 있는 1시간을 준다면, 나는 59분이라는 시간 동안 문제를 파악하는 데 쓸 것이며, 나머지 1분을 해결책을 찾는 데 쓰겠다”라고 말했다.

 해결책을 찾는 일에서 가장 최우선적이고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은 문제를, 즉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에너지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도대체 현재 에너지에 대해 대중이 얼마만큼이나 알고 있으며, 무엇을 잘 알고 있고, 또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일일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현황을 파악하는 일, 지금 당장 그 일부터 시작하자.

 조숙경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