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남’과 에너지 리터러시(문해력)
[쾌도난마_필사이언스]‘에너지 이슈’ 애매한 상황을 정리해준다면
`애매한 것들을 정해주는 남자’라는 개그 프로그램의 코너가 있었다. 청춘 남녀가 데이트를 하거나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애매한 상황에서 적절히 대처하는 방법을 위트 있게 알려주는 이 코너 덕분에 한동안 많이 웃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그들이 제시해준 방법을 사용해서 결정을 내린 적도 있다. 아름다운 늦가을 시즌에 결혼식 소식이 많이 들린다. 젊은이들에게는 친구의 결혼식에 얼마의 축의금을 내야 하는 지도 상당히 애매할 때가 있다.
이에 대해 애정남은 아주 명쾌한 답을 제시해준다. 결혼식장에서 친구의 부모님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으면 10만원을 내고 아니면 5만원을 내란다. 그리고 4월, 10월 등 결혼 성수기 때는 3만원만 내도 된단다. 한참을 소리 내어 웃었다. 얼마나 재치 있는 답변인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아주 많이 변화했고, 또 훨씬 많이 복잡해졌다. 처음 만나 꺼리낌없이 주고받던 악수도 조심스러워졌고, 온라인을 통한 교육은 일상화되었으며,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짜뉴스에 현혹되지 않으면서 필요하고 정확한 정보를 찾아내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
“집단 대응이냐, 집단 자살이냐” 절박한 시대
이처럼 복잡한 세상에서 누군가가 `애정남(녀)’가 되어 명확한 준거를 제시해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할 것이다. 애매한 상황을 두고 혼자 맘속으로 갈등하지 않아도 되고, 상식에서도 어긋나지 않으니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지도 않으면서 보다 편안한 삶을 보장해줄 수 있도록 누군가가 기준을 정해준다면 세상이 좀 더 좋아질 것 같다.
기술의 진보와 함께 더욱 복잡해지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개개인의 삶에서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 직면하는 아주 일상적이면서 중요한 이슈가 하나 있다. 바로 에너지 이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그 중요성을 전 세계가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에너지 문제는 애매한 측면이 많다.
예를 들어, 우리의 일상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저녁에 잠이 드는 순간까지 에너지를 소비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안의 난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걸어서 출근할 것인지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인지, 자동차를 구입할 때는 무엇을 제일 중요하게 고려할 것인지가 모두 사실은 에너지와 연관된 문제다.
또 에너지는 이산화탄소 배출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지구환경의 문제이면서 올해도 유럽과 파키스탄을 비롯하여 지구촌 곳곳이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 홍수, 가뭄 등 기상이변으로 커다란 손실과 피해를 받은 글로벌 문제이기도 하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때문에 지난 주 이집트에서 열린 제27차 당사국총회(COP27)에서는 강도 높은 메시지들이 나왔다.
특히 올해는 산업화를 먼저 이룬 부유한 국가들이 배출해 온 온실가스가 야기하는 기후변화의 부정적 영향을 논의하는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문제가 처음으로 정식 의제로 채택되었다.
그동안 개발도상국들이 입은 경제적 혹은 비경제적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재원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상위 20개 국가 중에서 16위에 해당하는 대한민국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할까? 또 그러한 입장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어떤 에너지를 선택해야 하는가?
국가 차원에서의 선택은 당연히 관련 기관과 전문가 커뮤니티가 담당할 것이다. 우리나라 상황에 가장 적절한 에너지 원의 비율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해외로부터는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수입할 것이며 또 어떤 에너지를 수출할 것인지, 나아가 에너지와 관련된 새로운 산업의 가능성은 무엇이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을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은 국가와 사회의 몫이다.
인류의 절반이 기후 위기 위험 지역에 있다면서 연설을 시작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의 "집단 대응을 할 지 아니면 집단 자살을 할 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는 심각한 경고는 국가는 물론 개인의 차원에서 무언가 대응을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에너지와 대중이 어떻게 만나는가’
그런데 문제는 무엇을 해야 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안전과 외관의 아름다움을 위해 밤새 켜두는 대도시의 조명은 에너지 절약을 위해 모두 소등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안전도 유지하면서 동시에 에너지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에너지와 관련된 애매한 문제들을 누구인가가 확실하게 정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에너지에서의 `애정남’이 있다. 바로 에너지 리터러시(Energy Literacy)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에너지의 과학적 특성과 지식도 포함하면서 에너지가 우리 사회 및 일상생활에서 행하는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이해와 함께 합리적이고 주체적인 에너지 소비자가 되도록 안내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에너지 리터러시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에너지 리터러시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도 없고 또 국제적인 협력도 없다.
2000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매 2년마다 `과학기술국민이해도조사’를 실시해오고 있다. 이 조사는 국민들이 과학기술에 관한 정보를 얻는 소스가 무엇인지, 신뢰도는 얼마인지, 어떤 분야를 지원하는 것이 좋은지 등을 질문하고, 이를 국제적으로 비교하면서 국내 과학기술 정책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가장 중요한 에너지 이슈는 전혀 다루어지지 못했다.
다행히 이달 말에 몇몇 전문가들이 모여 처음으로 에너지 리터러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는 기쁜 소식이 있다.
본격적인 국민 에너지 리터러시 지수(Public Energy Literacy Index) 개발을 위해 제 1회 `에너지 리터러시 포럼’이 개최된다고 한다.
“에너지와 대중은 어떻게 만나왔는가”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포럼에서는 정부 정책에서 바라보는 에너지와 대중의 관계와 시민사회가 바라보는 에너지와 대중의 관계, 학교 교육 커리큘럼에서 다뤄지는 에너지와 대중의 모습과 소비자 개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에너지가 어떤 의미인가 등이 심도있게 논의된다고 한다.
에너지에 관해 애매한 이슈들을 명쾌하게 결정해주는 `애정남’, 에너지 리터러시 개발에 대한 기대가 크다.
조숙경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