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국화빵’은 다 어디로 갔을까?

문흥동서 만난 광주 ‘유일’ 국화빵 노점

2022-12-29     한규빈 기자
갓 구워낸 국화빵을 담아주는 아저씨. 올겨울 문흥동을 자주 찾게 될 것 같다.

 MZ 세대들이 말하길 겨울철 우리들의 가슴속에는 현금 3000원을 필수로 품고 다니라 한다. ‘비상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비상 상황’이란 지갑을 잃어버린 것도,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것도 아니다. 바로 붕어빵, 어묵, 군고구마, 호떡 등 유독 겨울이면 생각나는 길거리 음식들과 마주쳤을 때다.

 하지만 슬프게도 요즘 ‘비상 상황’에 돌입하기가 쉽지 않다. 내 주머니에도 파란 지폐 석 장이 고이 잠들어있건만, 겨울잠에서 깨지 못할 것만 같다.

 코로나19에서 비롯된 연쇄 효과들이다. 양동시장에 갈 때마다 꼭 들리는 노점이 있는데, 최근 방문하니 올해 여름 1500원이었던 핫도그가 그새 2000원으로 올라있었다.

 소시지에 튀김 옷만 입혀놓은 기본 핫도그가 이렇게나 비싸졌다며 놀라니 “물가가 너무 올라서 내년엔 2500원을 받아야 할 판이야. 장사를 아예 그만둬야 하나 싶기도 하고”라는 핫도그 이모의 토로가 돌아왔다.

 물가가 얼마나 올랐느냐고 되물으니 “3만 원 정도 하던 식용유 한 통 가격이 9만 원까지 올랐었어. 요즘엔 7~8만 원으로 조금 내려서 그나마 다행이지”라며 “LPG 가스도 한 통에 3만 원 했는데 요즘엔 5만 원이 넘어. 장사해도 힘만 들고 남는 게 없으니 그만두고 나간 사람도 많아”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골목을 가득 채웠던 노점들이 다 사라져있었다. 붕어빵, 호떡, 떡볶이 노점 모두 힘든 시기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허전해진 골목을 보며 문득 떠오르는 음식이 있었다.

 바로 국화빵. 광주 구석구석을 누비면서도 유일하게 마주치지 못한 길거리 음식이었다.

 국화빵은 본 기자의 ‘최애’ 길거리 음식이다. 겨울이 아니더라도 시장이나 길에서 국화빵을 마주치면 지갑을 꼭 꺼내들고는 했다.

 먹고 싶은 것은 꼭 먹어야 하는 성격인지라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며 곧바로 포털사이트 검색창을 띄웠다. 검색어는 ‘광주 국화빵’.

 절망적이었다. 포털사이트에도 인스타그램에도 ‘나주 국화빵’은 있어도, ‘경기도 광주 국화빵’은 있어도, ‘광주광역시 국화빵’은 찾을 수 없었다.

 회사에 돌아와 실의에 빠져있는데 후배 기자가 맘카페를 뒤져 정보를 찾아왔다. 문흥2동 행정복지센터 옆에 국화빵 노점이 있단다. 역시 ‘인플루언서’의 파워는 위대하다.

 하지만 국화빵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광주드림과 문흥2동 행정복지센터의 거리는 약 14km. 자가용으로 40분 가까이 운전해야 마주할 수 있는 국화빵이었다.

 실의를 넘어 절망스러웠다. ‘문흥동을 가느니 나주 곰탕거리를 가는 게 빠를 수도 있겠다. 국화빵에 사라다빵까지 먹는 게 행복한 선택일 수도 있겠다’하는 장고에 돌입했다.

 국화빵을 너무 울부짖었던 탓일까. 문흥동에 다녀오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 왕복 1시간 30분여의 국화빵 여정에 나섰다.

 동광주IC를 벗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흥2동 행정복지센터 간판이 나를 반긴다. 동사무소 간판을 보고 가슴이 뛴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이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새빨간 바탕에 하얗게 쓴 국화빵 간판이 등장한다. ‘눈도 많이 왔는데, 날씨도 추운데 영업을 안 하면 어떻게 하지?’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고이 잠들어있던 내 품 안의 3000원을 꺼내들고 힘차게 외쳤다. “3000원어치 주세요!”

 주문을 하고 온갖 질문을 던져본다. “광주에 유일한 국화빵집인걸 알고 계시나요?”, “국화빵 가격이 많이 올랐던데, 4개 1000원도 요즘 시세로는 저렴한 것 아닌가요?”

 말 많은 젊은 이에게 당황하신 사장님에게 신분을 밝히자 이내 많은 답이 돌아왔다. “국화빵 만드는 게 힘들어서 다들 다른 걸로 바꾸거나 아예 장사를 그만뒀어요. 붕어빵 2개를 만들 시간에 국화빵은 1개밖에 못 만드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손도 많이 가죠”라고 설명했다.

 또 “사실 붕어빵은 재료를 공급해 주는 업체가 있는데 나는 밀가루로 직접 반죽을 해서 원가를 좀 더 아낄 수 있어요. 하루 장사하면 5만 원 정도 남아요”라며 “멀리 서구나 광산구에서도 사러 오시고 담양이나 장성 같은 곳에서도 오시고 하는데 가격을 올리기가 쉽지 않아요”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한 마디 더. “급한 일이 있어서 하루 문 닫으면 손님들이 멀리서 왔는데 실망했다고 뭐라고 해요. 그래서 그런 일이 없도록 눈이 오나 날씨가 춥나 매일 장사를 하려고 해요”라며 “내 나이 64살에 이 자리에서만 26년을 장사했는데, 대체 이 빵이 뭐라고 이렇게들 찾아주시는지 손님들에게 항상 감사해요”라며 다시 빵 뒤집기에 열중했다.

 그 사이 국화빵 한 봉지를 해치우고 한 번 더 외쳤다. “5000원어치 더 주세요!”,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과 국화빵의 달콤함이 광주드림 식구들에게도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국화빵이 모두 사라진 광주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곳만큼은 10년, 20년 후에도 자리를 지켜달라는 바람이었다.

 한규빈 기자 gangstar@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