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국화빵’은 다 어디로 갔을까?
문흥동서 만난 광주 ‘유일’ 국화빵 노점
MZ 세대들이 말하길 겨울철 우리들의 가슴속에는 현금 3000원을 필수로 품고 다니라 한다. ‘비상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비상 상황’이란 지갑을 잃어버린 것도,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것도 아니다. 바로 붕어빵, 어묵, 군고구마, 호떡 등 유독 겨울이면 생각나는 길거리 음식들과 마주쳤을 때다.
하지만 슬프게도 요즘 ‘비상 상황’에 돌입하기가 쉽지 않다. 내 주머니에도 파란 지폐 석 장이 고이 잠들어있건만, 겨울잠에서 깨지 못할 것만 같다.
코로나19에서 비롯된 연쇄 효과들이다. 양동시장에 갈 때마다 꼭 들리는 노점이 있는데, 최근 방문하니 올해 여름 1500원이었던 핫도그가 그새 2000원으로 올라있었다.
소시지에 튀김 옷만 입혀놓은 기본 핫도그가 이렇게나 비싸졌다며 놀라니 “물가가 너무 올라서 내년엔 2500원을 받아야 할 판이야. 장사를 아예 그만둬야 하나 싶기도 하고”라는 핫도그 이모의 토로가 돌아왔다.
물가가 얼마나 올랐느냐고 되물으니 “3만 원 정도 하던 식용유 한 통 가격이 9만 원까지 올랐었어. 요즘엔 7~8만 원으로 조금 내려서 그나마 다행이지”라며 “LPG 가스도 한 통에 3만 원 했는데 요즘엔 5만 원이 넘어. 장사해도 힘만 들고 남는 게 없으니 그만두고 나간 사람도 많아”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골목을 가득 채웠던 노점들이 다 사라져있었다. 붕어빵, 호떡, 떡볶이 노점 모두 힘든 시기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허전해진 골목을 보며 문득 떠오르는 음식이 있었다.
바로 국화빵. 광주 구석구석을 누비면서도 유일하게 마주치지 못한 길거리 음식이었다.
국화빵은 본 기자의 ‘최애’ 길거리 음식이다. 겨울이 아니더라도 시장이나 길에서 국화빵을 마주치면 지갑을 꼭 꺼내들고는 했다.
먹고 싶은 것은 꼭 먹어야 하는 성격인지라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며 곧바로 포털사이트 검색창을 띄웠다. 검색어는 ‘광주 국화빵’.
절망적이었다. 포털사이트에도 인스타그램에도 ‘나주 국화빵’은 있어도, ‘경기도 광주 국화빵’은 있어도, ‘광주광역시 국화빵’은 찾을 수 없었다.
회사에 돌아와 실의에 빠져있는데 후배 기자가 맘카페를 뒤져 정보를 찾아왔다. 문흥2동 행정복지센터 옆에 국화빵 노점이 있단다. 역시 ‘인플루언서’의 파워는 위대하다.
하지만 국화빵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광주드림과 문흥2동 행정복지센터의 거리는 약 14km. 자가용으로 40분 가까이 운전해야 마주할 수 있는 국화빵이었다.
실의를 넘어 절망스러웠다. ‘문흥동을 가느니 나주 곰탕거리를 가는 게 빠를 수도 있겠다. 국화빵에 사라다빵까지 먹는 게 행복한 선택일 수도 있겠다’하는 장고에 돌입했다.
국화빵을 너무 울부짖었던 탓일까. 문흥동에 다녀오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 왕복 1시간 30분여의 국화빵 여정에 나섰다.
동광주IC를 벗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흥2동 행정복지센터 간판이 나를 반긴다. 동사무소 간판을 보고 가슴이 뛴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이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새빨간 바탕에 하얗게 쓴 국화빵 간판이 등장한다. ‘눈도 많이 왔는데, 날씨도 추운데 영업을 안 하면 어떻게 하지?’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고이 잠들어있던 내 품 안의 3000원을 꺼내들고 힘차게 외쳤다. “3000원어치 주세요!”
주문을 하고 온갖 질문을 던져본다. “광주에 유일한 국화빵집인걸 알고 계시나요?”, “국화빵 가격이 많이 올랐던데, 4개 1000원도 요즘 시세로는 저렴한 것 아닌가요?”
말 많은 젊은 이에게 당황하신 사장님에게 신분을 밝히자 이내 많은 답이 돌아왔다. “국화빵 만드는 게 힘들어서 다들 다른 걸로 바꾸거나 아예 장사를 그만뒀어요. 붕어빵 2개를 만들 시간에 국화빵은 1개밖에 못 만드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손도 많이 가죠”라고 설명했다.
또 “사실 붕어빵은 재료를 공급해 주는 업체가 있는데 나는 밀가루로 직접 반죽을 해서 원가를 좀 더 아낄 수 있어요. 하루 장사하면 5만 원 정도 남아요”라며 “멀리 서구나 광산구에서도 사러 오시고 담양이나 장성 같은 곳에서도 오시고 하는데 가격을 올리기가 쉽지 않아요”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한 마디 더. “급한 일이 있어서 하루 문 닫으면 손님들이 멀리서 왔는데 실망했다고 뭐라고 해요. 그래서 그런 일이 없도록 눈이 오나 날씨가 춥나 매일 장사를 하려고 해요”라며 “내 나이 64살에 이 자리에서만 26년을 장사했는데, 대체 이 빵이 뭐라고 이렇게들 찾아주시는지 손님들에게 항상 감사해요”라며 다시 빵 뒤집기에 열중했다.
그 사이 국화빵 한 봉지를 해치우고 한 번 더 외쳤다. “5000원어치 더 주세요!”,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과 국화빵의 달콤함이 광주드림 식구들에게도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국화빵이 모두 사라진 광주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곳만큼은 10년, 20년 후에도 자리를 지켜달라는 바람이었다.
한규빈 기자 gangstar@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