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탈 팰리스와 2030부산세계엑스포

[조숙경 교수 필사이언스]1회 만국박람회 전세계인 핫플이 되다

2023-02-07     조숙경
1851년 개최된 제1회 세계 만국 산업 박람회 삽화.

 축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크리스탈 팰리스(Crystal Palace)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있는 프로 축구 구단의 이름이다.

 이 이름은 1936년 화재로 소실되어 지금은 사라진 건축물의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원래 이 건축물은 런던의 녹색 심장부인 하이드파크에 세워져 있었다.

 유리와 철제로만 지어진 세계 최초의 조립식 건축물로 유명한 크리스탈 팰리스는 1851년 개최된 제1회 세계 만국 산업 박람회(Great Exhibition of the Works of Industry of All Nations)를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다.

 공원에서 자라던 30m 높이의 거대한 느릅나무를 베어낼 것인가 아니면 보존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 끝에 결국 실내에 나무를 보존하기 위해 온실처럼 만든 이곳은 그해 5월 1일부터 10월 중순까지 총 141일 동안 영국과 스코틀랜드는 물론이고 유럽과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인들이 가장 찾고 싶어했던 핫 플레이스였다.

 그 당시 사람들이 크리스탈 팰리스를 열망했던 이유는 빛이 투과되는 투명한 건축물(수정궁)이 주는 신비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던 산업 시대의 대향연, 당시 최첨단의 과학과 기술, 산업과 예술과 연관된 10만여 점의 전시품들을 보기 위함이었다.

 산업시대 대향연…인류 미래 꿈꾸다

 산업혁명을 통해 새롭게 진입한 기계문명 시대의 성과물들을 실제로 보여주면서 향후 기술과 산업이 열어갈 인류의 미래를 꿈꾸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영국 전체 인구의 1/3이 방문할 정도로 대성공이었던 이 엑스포에서 실제로 영국 북부 맨체스터 지역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는 자신이 일하던 산업현장이 어떻게 세상을 새롭게 바꾸고 있는지를 실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루 일을 마친 그는 3등칸 야간 기차에 몸을 싣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이른 아침 런던에 도착했다. 역에서 다시 1시간을 걸어서 도착한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그는 한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입장료를 내고, 피곤함도 잊은 채 하루 종일 기쁨과 환호 속에서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허기진 배를 가져온 샌드위치로 채우며 감동에 젖은 그는 다시 야간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 곧바로 산업현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런던 세계 엑스포가 준비되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공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지만, 재원을 마련하는 데 여러 해가 걸렸고, 전시품을 내놓을 산업체들을 설득하고 홍보하느라 몇 차례 연기를 해야 했다.

 게다가 프랑스가 영국보다 먼저 만국 박람회를 개최할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압박도 거셌다. 1851년 개관은 이 모든 어려움 속에서 그리고 실제로 많은 우려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엑스포는 전시품 숫자로도 참가인원으로도 남겨진 이익금으로도 그리고 새로운 대중적 문화의 창조로도 대단한 성공 그 자체였다.

부산 엑스포.

 영국·프랑스·미국, 자국 우위 경연장으로

 6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엑스포를 방문했고 20만 파운드라는 막대한 이익금을 남겼으며, 그 이익금으로 사우스켄싱턴 지역에는 과학과 교육 그리고 문화를 위한 콤플렉스가 조성되었다.

 엑스포에서 발견한 대중들의 과학과 기술과 산업에 대한 엄청난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우스켄싱턴 지역에는 과학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 빅토리아와 앨버트 박물관이 들어선 전시회 거리가 조성되었으며, 세계 유수의 이공계 대학인 런던대학교 임피리얼 칼리지가 옮겨왔고, 로얄 앨버트 음악홀도 들어섰다.

 이렇게 시작된 엑스포는 이후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교대로 이어지면서 자국의 산업적 우위를 자랑하고, 첨단 기술을 가장 먼저 선보이고 신제품을 홍보하는 쇼케이스로 정착되었다. 마치 오늘날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CES(세계가전전시회)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1851년 런던 엑스포 때는 증기기관차와 거대한 엔진이 선보였다면, 1855년 파리 엑스포 때는 아이작 싱어의 신형재봉틀이, 미국 독립선언 100주년을 기념하는 1876년 필라델피아 엑스포에서는 에디슨의 전신기와 벨의 전화기 그리고 하인즈 케첩이 처음으로 선보였다.

 1893년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하는 시카코 엑스포 때는 무려 2700만 명이 전시장을 찾았고, 대회전 관람차인 ‘페리스 휠’이 대중적 재미를 더했으며, 최초로 ‘한국관’이 마련되기도 했다.

 에펠탑 등 등장 문화 발전에도 큰 몫

 엑스포는 또한 개최하는 국가의 경제적 번영과 문화 발전에도 큰 몫을 담당해왔다.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한 1889년 파리 엑스포 때 등장한 에펠탑은 ‘가장 혐오스런 건축물’이 될 것이라는 비판을 뒤엎고 오늘날 파리의 가장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되었으며, 1986년 벤쿠버 엑스포 때 만들어진 인공섬의 F1 자동차 경기장은 낙후된 캐나다 서부지역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또한 1998년 포르투갈 리스본 엑스포는 쓰레기 하치장, 폐유 저장소, 도살장 등 혐오시설이 있던 빈민가를 최첨단 상업 지구 및 관공서 단지로 탈바꿈시키며 도시재생의 성공적인 모델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1993년 대전 그리고 2012년 여수에 이어 2030년 대규모의 부산 세계 엑스포 유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를 위한 국민적 염원도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제 1회 런던 세계 엑스포를 비롯한 이후의 많은 엑스포들은 엄청난 성공을 통해 개최국의 국격을 높이고 자국민에게 높은 자존감을 주었으며, 전 지구적으로는 기계와 산업 문명으로 이끌 미래 사회의 청사진을 보여주었다.

 마찬가지로 2030 부산 세계 엑스포가 성공적으로 유치되어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민들의 품격을 드높이고, 최첨단의 과학기술과 산업으로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냄으로써 글로벌 지구 모든 인류에게 희망의 빛이 되도록 염원하면서 강한 응원을 보낸다.

 조숙경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