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현 교수 철학 세상]중용에 대하여
중간을 추구하고 선택하라!
감정과 성품의 관계
인간은 다양한 감정을 갖는 존재다. 분노, 두려움, 대담함, 시기, 질투, 기쁨, 우정, 사랑, 미움, 갈망, 연민 등 인간의 감정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고 다양하다.
그런데 감정은 그것을 의식하는 능력에 의해서 표출되고 조절된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 능력을 통해서 화를 내거나 연민을 느끼며, 또 즐거움이나 고통을 느낀다. 그런데 그런 감정에 직간접적으로 관계하는 것은 인간의 성품이다.
말하자면 성품은 감정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결정적인 역할과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분노와 관련하여 너무 지나치거나 너무 모자란다면, 그것은 적절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성품을 갖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여기서 성품이란 말은 성격, 품성, 인품 혹은 인격이란 말로 바꿔 써도 별 상관은 없다.
지나침과 모자람의 중간
어떻게 하면 우리의 감정과 행위를 적절하게 잘 조절할 수 있을까?
동서고금의 사상가들이 제시한 답은 중용의 길이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 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란 책에서 지나침과 모자람을 피하고, 너무 많지도 너무 모자라지도 않는 중간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중용을 추구하고 선택하라는 것이다. 감정과 행위에서 지나침과 모자람은 잘못을 범할 수 있지만, 중간적인 것은 성공하고 칭찬을 받는다고 조언한다.
탁월성으로서 중용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중용은 일종의 탁월성이다. 탁월성은 무엇을 좋은 상태에 있게 하고, 좋음의 기능을 잘 수행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눈(目)의 탁월성은 눈과 눈의 기능을 좋은 것으로 만든다. 눈의 탁월한 기능 덕택에 우리는 잘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말(馬)의 탁월성은 말을 신실하고 좋게 만들어, 잘 달리고 잘 실어 나르는 좋은 말로 만든다.
이와 같이 인간의 탁월성은 그것에 의해 좋은 인간이 되며, 그것에 의해 사람됨을 잘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성품의 상태이다. 한마디로 중용은 중간적인 것을 겨냥하고 추구하는 일종의 탁월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상에서의 중간
중용은 지나침과 모자람의 중간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것에서 더 많거나 더 적은 양을 혹은 동등한 양을 취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더 많거나 적거나 혹은 동등한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될 수 있다. 그 하나는 대상 자체에 따르는 것이고, 그 다른 하나는 우리와의 관계에 따르는 것이다.
대상에서의 중간은 양 끝에서 같은 거리만큼 떨어진 중간 값이다. 이때 중간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다. 이를테면 0과 10의 중간이 5인 것처럼, 대상에서의 중간은 비교적 쉽게 찾아 질 수 있다. 또 10은 많고 2는 적다고 한다면, 대상에 따른 그 중간 값은 6이다. 이것은 산술적인 계산과 비례에 따르는 중간이다.
관계에서의 중간
그런데 문제는 대상에서의 중간이 아니라 우리와의 관계에서의 중간이다. 말하자면 인간지사에서 중간을 찾는 일이다. 인간관계에서의 중간을 찾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이지도 않고 동일하지도 않다. 마치 원의 중심을 어림잡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세상사에서 중용을 찾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지나침과 모자람을 피하고 중간을 추구하고 선택할 수 있을까? 물론 이때의 중간은 우리와의 관계에서의 중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답은 이렇다.
“마땅한 때에, 마땅한 일에, 마땅한 사람에게, 마땅한 정도로, 마땅한 방식으로 감정과 태도를 갖는 것이 최선이다.” 이 말을 외워서 각자의 실생활에 적용해보는 것도 중용의 태도를 익히는 하나의 방법이 되겠다.
<표 참조>
성품은 주로 습관을 통해서 획득되는데, 습관은 일정한 조건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느끼고 행동하는 품성의 상태다.
훌륭한 성품은 그것이 중용의 원칙과 일치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위의 표에서처럼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중용의 탁월성을 참조하여 훌륭한 성품을 소유하기 위해 각자의 형편에 따라 노력해 볼 일이다.
김양현 (전남대 철학과 교수·유튜브 ‘철학TV’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