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극복하는 힘, 연대!

[백청일의 독서일기] (36)당신은 전쟁을 몰라요, 예바 스칼레츠카, 생각의힘

2023-03-14     백청일

필자는 그 동안 책을 읽고 조금씩 메모해 온 내용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토론'하고자 글을 쓰게 되었다. 내용은 책 소개와 정리, 간단한 소감, 또는 깊이 있는 분석과 평가 등 책에 따라 달라진다. 읽기 편한 대화체 형식으로 서술하고 1차 목표는 100권이다. 100권을 쓸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독자들과의 건강한 토론이라 믿고 있다.<편집자주>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 표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 푸틴이 특별군사작전 개시 명령을 선언한 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러시아의 압도적 우세 속에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던 전쟁은 이제 1년이 지나고 있습니다(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나무위키).

 1년여가 지난 현재 러시아군 사망자는 최대 6만 명, 사상자까지 하면 최대 20만 명, 우크라이나 군 사상자는 최대 15만 명에 이를 것이라 관측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사망자 수는 최대 4만 명으로 파악되었는데 이중 500여 명이 어린이라고 합니다(시사주간, 2023. 2. 24).

 UN은 전쟁기간 발생한 대부분의 전쟁범죄를 러시아가 저질렀다고 보고하였습니다. 러시아는 전쟁 기간 동안 민간인 밀집 지역에 대한 미사일 공격, 민간인을 상대로 한 조직적 잔혹 행위 등의 전쟁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구체적으로 민간인 밀집 지역이나 아파트, 대피소로 이용하고 있는 영화관과 학교 시설 등을 미사일로 공격하여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으며, 최소 53곳의 유적지와 종교시설, 박물관 등을 파괴하였습니다. 마리우폴과 수미, 부차, 키이우와 외곽지역에서 민간인 폭행 및 학살, 집단 감금 및 고문, 성폭행 등을 저질렀는데, 부차에서의 학살은 조직적 지령에 의한 것이라는 보고가 있습니다(이상 나무 위키 ‘러시아의 전쟁 범죄’ 관련 문서들).

 전쟁이 장기화하자 ‘휴전 협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이 대표적으로, 현재 상태의 휴전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러시아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러시아의 푸틴은 휴전협정이 곧 전쟁 승리라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현재 상태의 휴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전통적으로 나토와 미국의 제국주의적 대외 정책을 비판해 온 세계적인 좌파 그룹과 지식인들은 이번 전쟁 또한 나토의 동진 정책에서 비롯된 거라 보았습니다. 이들 중 대표적 지식인인 노엄 촘스키는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끌어들이려 했던 미국이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비판하였으며 푸틴을 처벌하기보다 그가 원하는 보상을 주는 방식으로 협상해야 한다고 제안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도 일관되게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은 부차에서의 러시아에 의한 학살 만행에 대해 침묵하거나 조작이라는 입장을 취한다는 거입니다(한상원, 2022).

 이에 대해 프랑스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는 전쟁이 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22년 3월 7일 공개된 인터뷰(제목은 ‘평화주의는 선택지가 아니다’)에서 촘스키의 태도를 직접 비판하였습니다. 발리바르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라는 구체적인 방향성 없이 외치는 반전평화 입장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지적하였습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기에, 푸틴에게 퇴로를 열어줄 게 아니라 푸틴을 끌어내려야 하는데, 이는 러시아 시민들의 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저항권을 지지하는 발리바르는 현 시기 국제주의란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와 러시아 민중의 푸틴 제거를 뜻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한상원, 2022).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속에서 전문가들은 세계질서가 이제 ‘신냉전’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하기도 하고, ‘다극체제’로 진단하기도 합니다. ‘신냉전’ 개념은 미국, EU 중심의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중국, 러시아 중심의 ‘권위주의 진영’이 과거 냉전 때처럼 단절되어 대립하게 될 것이라는 시각입니다. ‘다극체제’라 진단하는 사람들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명확한 이념적 기준이 제시되었던 과거 냉전 시기와 달리 오늘날은 국제사회의 의존성이 높아졌으며 진영보다 개별 국가의 국익이 우선한다는 점 등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고 난해한 상황 때문에 냉전 시기로 돌아간다고 속단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제성훈 외, 2023).

 두 입장과는 다른 관점에서 현재의 국제질서를 진단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어느 누구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거라고 보지 않았던 2021년 11월 중앙대학교의 백승욱 교수는 현대중국학회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동시에 중국이 대만의 일부 섬을 점령하고자 나선다면,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한 바 있습니다. 백승욱 교수는 우크라이나와 대만 문제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러시아와 중국의 통치 변화, 국제 질서에 대한 도전이 반영되어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강성현, 황해문화 117호).

 백승욱 교수는 지금의 상황을 “신냉전이 아니라, 20세기 질서의 수립자들 사이에서 갈등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하는 근본적인 위기”라고 진단합니다. 그에 따르면 1945년 얄타회담을 통해 만들어진 세계질서의 기본 구도는 미, 소, 영, 중 4국가로(영국의 처질이 나중에 프랑스를 끌어들였는데 이것이 지금 UN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구도임), 식민주의와 팽창주의에 반대하는 기본 질서를 바탕으로 이들 사이의 직접적 충돌은 피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국제질서의 핵심이었습니다(‘얄타체제’).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중국과 연동되어 중국, 러시아아라는 두 축이 흔들리면서 전후 UN 세계질서가 심각하게 흔들릴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때문에 “동아시아 평화와 국제질서를 지키기 위해,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통일 움직임에 한국은 분명하게 ‘노(NO)'라고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한겨레, 2022. 3.10).

 2023년 3월 11일 ‘중국몽’(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 ‘하나의 중국’을 외치며 대만을 위협해오던 시진핑 국가주석이 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만장일치로 3연임에 성공했습니다(연합뉴스, 2023. 3.10).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2년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에서 불가역적인 핵 보유국 정책을 선언하고 선제 핵 타격 조건을 담은 법을 제정하여 발표하였습니다(서울신문, 2022. 9.12).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장기화, 이와 연동된 중국과 대만 사이의 긴장 고조, 이 틈을 이용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연이은 장거리미사일발사실험과 핵보유국 선언까지 동아시아의 긴장관계와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런 맥락에서 우크라이나의 하르키우에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이 빗발치던 폭격의 한 복판에서 전쟁 상황을 하루하루 일기로 기록한 열두 살 예바 스칼레츠카의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제목이 주는 전쟁의 무게

예바의 일기장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한국 락의 대부 신중현이 떠올랐습니다. 거장이 아주 오래 전 어느 해 열었던 콘서트 제목이 “너희가 락을 아느냐”였습니다. 거슬리기보다 가장이기에 할 수 있는 제목이라 생각한 건 아마 저만은 아닐 듯합니다. 이제는 많이 알려지기도 했고, 여러 차원에서 응용되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책을 쓴 저자인 예바는 이제 겨우 열두 살입니다. 한 편으로 전쟁의 한 복판을 지나왔기에 쓸 수 있겠다, 이해를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제목에 어울리는 내용일지 확인해 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거겠지요. 기대반 우려반의 마음. 하지만 예바가 책의 서두에 쓴 당신은 “전쟁이 가져오는 진정한 공포가 얼마나 큰지는 알 수 없을 거”고, “당신이 계획했던 모든 일은 전쟁이 가져오는 파괴로 예고도 없이 망가진다”는 문장을 읽고는, 갑자기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돌변하게 되었습니다.

 서문을 쓴 동화작가 마이클 모퍼고는 책의 제목을 다음처럼 풀이합니다. “이 문장은 전쟁이 어떤 것인지 진실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서 나온 훌륭한 제목이자 선언 그리고 도전이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전쟁의 진실을 말하는 예바의 크고 또렷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본인이 읽어 본 전쟁에 대한 이야기들 중 예바의 “이 원고만큼 전쟁이 한 사람의 삶에, 그의 가족과 친구, 그가 속했던 사회와 국가에 미친 충격적인 영향에 대해 깊고 힘 있게 서술한 책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흔히 “왕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자 왕관을 쓰지 마라”고 하지요. 우리나라 속담에도 “감투가 크면 어깨를 누른다”가 있습니다.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건, ‘주제’입니다. 그 주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게 ‘제목’인데, 그래서 제목 만들기, 또는 제목 뽑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주제뿐 아니라 종류와 분위기, 인상, 함축성 등 여러 가지를 보여주고 담아야 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자마자, 읽는 내내,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도 이처럼 명확한 제목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전쟁’이 ‘무엇’인지를, 전쟁의 한복판에서 불안과 공포와 공황 증상, 세계의 붕괴를 날마다 경험하면서도, 결코 하루도 쉬지 않고, 날마다, 한 글자씩, 또박또박 기록한 열두 살 소녀의 살아 있는 ‘하나의 텍스트’입니다.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 뒤표지

 책이 나오기까지

 할머니와 함께 하르키우에 살고 있던 예바는 살던 아파트가 미사일 폭격을 받자 지하 대피소로 피신합니다. 지하 대피소 또한 안전하지 않자 하르키우 서쪽 끝에 있는 할머니 친구인 이나 아줌마네 집에서 머물게 됩니다. 그러나 곧이어 그곳도 안전하지 않게 되자 적십자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야르세니로 가는 기차에 가까스로 올라타게 됩니다. 연고가 없기에 슬로바키아와 헝가리 국경이 있는 종착역 우즈호로드까지 가기로 결정한 할머니와 예바는 그곳에 도착하여 학교 건물에서 지내게 됩니다.

 그곳에서 예바와 할머니는 일기를 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영국 지상파 방송국인 채널4 뉴스팀을 만납니다. 뉴스팀 기자들은 자원봉사자들을 연결해주었는데, 이들의 도움으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하게 됩니다. 채널4 뉴스팀의 계속 이어지는 도움으로 예바와 할머니는 아일랜드 더블린에 정착할 수 있게 됩니다. 예바의 일기를 출판할 출판사 에이전트도 소개해줍니다. 책 속에서 예바는 자원봉사자들과 채널4 뉴스팀 기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생명을 구해주었다고.

 예바는 책을 출판하게 되면서 친구들 몇 명에게 자신들이 겪은 일에 대해 이야기해 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필자는 친구들이 겪은 전쟁 이야기를 읽다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했더랍니다. 친구들 이야기는 예바의 이야기와 함께 그대로 소중한 이야기가 됩니다.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예바의 이야기

미사일 폭격을 당한 예바의 아파트.

 책은 출판사에서 예바와 상의하여 편집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쟁이 발생한 날부터 기록하였는데, 출판사에서 이를 시간대별로 묶어서 분류하였고, 작은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작은 제목 다음에는 장이 시작되는 날짜에 발표된 세계적인 잡지들과 방송사에서 내보낸 중요한 머리기사들이 실려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일기가 쓰여진 날들 주변 상황에 대해 아주 조금이나마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대충이라도 가늠한 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출판사의 영리한 배려입니다.

 책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 평범했던 일상을 가볍게 스케치하는 “그 일이 있기 전”과 하르키우에서 전쟁을 경험하면서 쓴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일어나다”, 집이 미사일 폭격으로 지하 대피소 생활을 하다, 대피소조차 안전하지 않아, 하르키우를 떠나야 했고, 헝가리를 거쳐 아일랜드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헝가리”, “아일랜드”, 그리고 뒷이야기를 다룬 “그 후”와 “친구들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였을 때, 네덜란드를 점령한 독일군을 피해 은신처에 2년 동안 숨어 살면서 나치에 발각되어 끌려가기까지 써내려간 안네 프랑크가 쓴 ‘안네의 일기’를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감수성이 강하면서도 영리했던 소녀 안네가 ‘사춘기’라는 보편적인 상황과 ‘은신처’의 구체적이면서도 특수한 환경 속에서 경험하였던 다양하면서도 솔직한 여러 내면 세계를 보여주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예바의 이 책이 ‘안네의 일기’와 다른 점 중 하나는 전쟁과 폭격의 진행 상황에 따른 예바의 정신과 심리 상태가 시간 단위로, 하루 단위로, 공간의 변화에 따라 표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공황증상을 겪고 극도의 불안함과 공포 속에서도 초기에는 시간 단위로,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났을 때는 날마다 잠을 청할 때면 어떻게 꼭 기록을 하였는지, 놀라울 뿐입니다. 사이사이에 깜짝 놀랄 만한 표현들이 참 많아서, 다시 읽고, 또 읽기도 합니다. 그 성숙함에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지하실로 들어가자 공황 증상이 다시 느껴졌다. 숨을 쉴 수 없었고 손은 차갑고 축축해졌다.”

 “매일매일 나는 삶이 전쟁 중에서도 계속된다는 걸 알아 가는 중이다.”

 “내 집을 공격하는 건 내 일부를 공격하는 것과 똑같다. 심장이 짓밟힌 기분이다.”

 “전쟁을 겪은 이들은 이제 포격과 미사일 소리에 잠에서 깨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토록 그 소리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고향을 위해 매일 기도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도 말이다. 오늘 당장 집이 미사일에 맞지 않아도 내일은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난민’이라는 단어를 견디는 게 힘들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 같다. 할머니가 우리 스스로를 난민이라고 칭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할머니에게 당장 그렇게 말하는 걸 그만두라고 했다. 속으로는 부끄러웠다. 왜 부끄러웠는지 이제야 겨우 알 것 같다. 집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창피하다. … 내 꿈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가 다시 우리만의 집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나는 삶이란 그 자체로 진정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

 “전쟁 첫날의 꿈을 여러 번 꿨다. 그 꿈에서 난 안전한 어딘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 그러다 나는 갑자기 지하실로 매번 달려 내려가 숨느라 지치게 되었다. 전쟁이 가져다주는 매일매일의 공포에 지쳐 가며 말이다.”

 ‘안네의 일기’와 다른 점 또 하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예바는 휴대폰으로 학교 단체 채팅방을 통해 친구들과 문자로 소식을 주고 받았다는 점입니다. 예바의 일기 사이사이에 친구들과 나눈 ‘대화 창’이 끼어 있습니다. 예바와 친구들이 짧은 몇 개의 낱말로 서로의 상황이나 소식을 주고받고 있는 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짧게 끊어서 나누는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전쟁의 급박함을 느끼다가, 웃음이 나기도 하다가, 다시 생존 의지를 표현하는 데서는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가령, “나 있는 곳도 폭격당하는 중”(폴리나), “들판에서 연기가 나”(톨야), “절망하지 마, 힘내”(예바), “내 컴퓨터 고장 나는 거 싫은데, 어디에 두지?”(미론), “우린 살아남을 거야, 이겨 낼 거야.”(예바).

 어떤 대화창의 대화를 읽을 때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뭉클함과 미안함, 숙연해짐, 부끄러움 등 복잡한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폴리나 : 여기 폭격당하는 중.

 나디아 : 여기도 완전 가루가 되고 있어.

 폴리나 : 소리가 너무 커.

 나디아 : 소리 때문에 귀가 먹을 것 같아.

 예바 : 우리 할머니 차고 바로 뒤가 폭격을 맞았어. / 바로 오늘.

 폴리나 : 우린 지금 폭격당하는 중. / 너무 무서워.

 나디아 : 무서워하지 마.

 나디아 : 내가 하는 방법대로 해 봐. / 난 음악을 들어.

 인류가 보편적 공유하는 ‘저항권’

 2023년에도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에 대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1월에는 우크라이나 드니프로 아파트 단지에 미사일 폭격을 가해 최소 44명이 사망하였고, 2월에는 도네츠크주 아파트 단지를 한밤중에 미사일로 폭격하여 2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SBS NEWS, 2023. 2. 2).

 국어사전에 실린 ‘연대’의 뜻은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짐”,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입니다. 이를 연결해 보면, “함께 연결되어 있으니 함께 일을 하고, 함께 책임을 지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은 쉽지만, 현실은 어렵습니다.

 책 속에 등장한 예바와 할머니가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왔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특히 그렇습니다. 민간인 거주지역인 아파트단지와 시민들이 밀집해 있는 기차역을 향해, 미사일과 폭격, 총격을 가하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돕는 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방송사의 특징이라 해도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정착과 학교 등교, 일기 출판까지 연결해 주는 건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러시아의 침략 행위를 규탄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집회와 연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우크라이나인들이 봉기하여 저항을 하는 건 우크라이나인들의 당연한 권리이면서 인류가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저항권’이기에, 마땅히 우리 모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지지하고, 연대하는 거겠지요.

 80년 5월의 상처를 안고 있는 광주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유일한 통신선이었던 전화도 끊기고 외부로 연결되는 모든 도로들이 차단된 채, 심지어 산길과 숲속까지 계엄군이 광주를 에워싸고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할 때, 광주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봉기하였고 시민군을 조직하여 계엄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광주 시민들의 권리를 지키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마지막 날 새벽까지 도청을 지켰습니다.

 필자는 오늘날 광주 정신 계승, 광주 정신의 현재화와 세계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부당하게 가해지는 폭력과 침략에 맞서, 분연히 일어나 맞서 싸우거나, ‘아니오’라고 분명하게 외치거나, 여러 모양으로 지지와 지원을 하는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저항과 연대를 통해서만이 ‘현실’은 ‘새로운 역사’가 되고 ‘우리의 미래’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예바와 할머니의 삶을 지지하는 거처럼 수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의 삶을 지지합니다.

 백청일(논술학원장)

 ■ 참고문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전쟁범죄, 나무위키.

 [러-우크라 전쟁 1년] “종전… 명분이 없다 아입니까”, 시사주간 2023. 2.24.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질서의 변화, 제성훈, 박정호, 박상남, 김재관, 공민석, 조형진, 윤성욱, 현승수, KCI, 2023.

 ‘불가역적 핵 보유국’ 선언한 북… 윤석열 ‘담대한 구상’ 난관, 서울신문, 2022. 9.12.

 시진핑, 만장일치로 중 국가주석 선출 … 첫 3연임, 연합뉴스, 2023. 3.10.

 “우크라이나와 대만 위기는 연결된다 … ‘노’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이 중요”(백승욱 교수 인터뷰), 한겨레신문, 2022. 3. 9.

 우크라 아파트에 또 한밤중 폭격… “최소 23명 사상”, SBS NEWS, 2023. 2. 2.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량폭력 이후의 세계는, 강성현, 황해문화 117호, 2022 겨울, 새얼문화재단.

 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반전운동의 난제들, 한상원, 황해문화 117호, 2022 겨울, 새얼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