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현 교수 철학 세상]자연과의 평화, 가능할까
자연을 도덕적으로 고려하라!
끓는 지구(global boiling)의 시대가 시작됐다
마침내 장마가 끝났다.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극단적인 폭우였다. 수많은 인명과 엄청난 재산 피해가 났다. 참으로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보도에 따르면 양적으로는 역대 세 번째 장마였으며, 강우의 강도가 역대 1위였다고 한다. 장마와 폭우로 수많은 사람들이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스트레스를 겪었다. 지구 다른 편에서는 거대한 산불이 나서 진화가 안 되고 있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폭우와 홍수, 다른 한쪽에서는 가뭄과 산불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엊그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 시대가 끝나고 이제 끓는 지구(global boiling)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평화만이 우리의 생존, 자유, 그리고 존엄성을 지켜준다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극단적인 기후재난! 이러다가 세상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기후변화, 기후위기, 기후재난, 그것을 어떻게 부르든지 간에, 그것은 인류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인간 사이를 넘어서 인간과 자연의 평화가 불요불급하다. 평화가 없다면 인류의 생존을 보장할 길이 없다. 아니 평화가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자유와 존엄성을 지켜낼 방법이 없다. 인간 상호간의 평화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과 자연과의 평화가 마침내 이 시대 최고선이요 가치가 되었다. 현존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미래세대의 지속가능한 삶의 토대를 위해서도 자연과의 평화체제가 시급히 정착되어야 한다. 따라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온전한 책임과 의무를 인류의 확고부동한 제1의 원리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그럴 때만이 비로소 인류 문명의 지속가능성이 열리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 과도한 성공이 위기를 불러왔다
일찍이 철학자 한스 요나스(H. Jonas)는 ‘책임의 원칙’ 책에서 전지구적 차원의 생태적 위기는 과학기술적 유토피아주의가 과도하게 성공한데에 그 원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과학기술에 의한 자연지배사상은 자본주의체제와 결합했으며, 그 결과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자본주의 경제의 성공은 인간의 노동력의 투입이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양적·질적으로 증가된 1인당 상품 생산, 다수의 복지 향상, 체제 내에서의 모든 사람들의 비자의적인 소비가 증가된 형태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류 사회전체와 자연 환경과의 신진대사가 과히 형용할 수 없는 수준으로 폭발한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모습은 무한성장, 시장만능, 물질만능, 금융자본, 그리고 환경파괴로 드러난다. 최근 40년의 글로벌 경제를 작동시킨 자본주의는 인간 삶의 가치체계를 전도시키고 있다. 인류가 직면한 위기라는 문제의식에서 무한성장과 발전이라는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유효한가를 물어야 한다. 또한 ‘할 수 있으면 한다’는 과학기술적 논리가 여전히 적실한가를 반성해 봐야한다.
최근 지구상의 인구는 80억 명을 넘어섰다. 사실 자본주의가 초래한 위험은 인류의 생물학적 성공으로 가속화되었다. 말하자면 인구의 폭발적 증가는 자연환경을 무자비하게 착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던 측면이 분명이 있다. 그래서 오랫동안 유지되어오던 자연생태학의 평형의 법칙이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보면, 당면한 위기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과학기술적 자연지배사상과 유토피아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신봉 태도를 거부해야 한다. 그러나 전지구적 차원의 파국의 위험성이 눈앞에 도사리고 있고, 인류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생존의 토대가 위협받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 사람들은 과학기술적 낙관주의를 신봉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과학기술적 낙관주의가 인류를 구원해 줄 것인가 의문이다.
자연은 더 이상 무차별적인 지배대상 아니다
인간과 자연의 평화를 위한 원리 원칙은 무엇인가? 인간과 자연의 공존 원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자연을 도덕적으로 고려하라! 인간에 의해 훼손된 자연환경을 도덕적으로 고려하라! 미래세대의 생존의 토대를 위협하지 마라! 요나스는 인류가 제1 원리로 삼아야 할 도덕명령을 이렇게 제시한다. “너의 행위 효과가 지상에서의 진정한 인간적 삶의 지속과 조화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지상에서 인류의 무한한 존속을 가능하게 하는 제 조건을 위협하지 말라.”
오랫동안 인류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자연을 지배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자연은 더 이상 인간의 무차별적이고 전제적인 지배대상이 아니다. 자연은 인간의 자의적인 목적에 따라 마음대로 조작하고 이용할 수 있는 한낱 유용성의 수단이나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자연은 인간처럼 상호 협력할 수도 없고, 원활하게 의사소통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과 공존해야 할 도덕적인 고려의 대상이다. 인간과 평화체제를 유지해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인류가 직면한 생존의 차원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는 없다.
인류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 마라
자연을 도덕적으로 고려하라는 새로운 도덕명령은 인간적 삶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합당한 행위를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철학자 한스 요나스의 조언을 마음 깊이 새겨보고자 한다. “나는 미래의 선을 희생함으로써 현재의 선을 바랄 수 있다. 나는 내 자신의 종말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종말도 역시 바랄 수 있다. 내 자신과 모순에 빠지지 않고서도 나는 스스로와 인류를 위해서, 평범하게 끝없이 지속되는 것보다는 극단적인 자기만족을 주는 짧은 만족을 주는 불꽃놀이를 선호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도덕명령은 우리 자신의 생명을 걸 수는 있으나 인류의 생명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김양현(전남대 철학과 교수·한국철학회 회장·유튜브 ‘철학TV’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