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협력과 한반도 미래] 70년을 넘어가는 기이(奇異)한 전쟁
민간 교류협력, 한반도 평화 구축 핵심 “25여년전 남북 관계 새 지평도 민간이 열어”
올해는 정전협정이 조인된 지 70년이 되는 해이었다. 70년 전인 1953년 7월 27일, 당시 판문점에서의 정전협정 조인식을 취재한 한 기자는 “거기에는 의식에 따르는 어떠한 극적 요소도 없고 강화(講和)에서 예기할 수 있는 화해의 정신도 엿볼 수 없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전’이지 ‘평화’가 아니라는 설명을 잘 알 수 있었다”고 적었다. 이 기사의 제목은 ‘기이(奇異)한 전투의 정지’이다. 70년 전의 전쟁은 그 자체가 기이한 것이었으며 정전협정이 조인된 그 날의 모습 또한 기이했다.
최근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정전 체제가 남북간의 무력 충돌을 방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고 항구적인 평화 상태를 구축하는데 있어서는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지난 2018년 남·북·미 정상들은 ‘정전’을 ‘종전’으로 바꿔야 한다는 합의를 이뤄낸 바 있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후 지난 정부의 종전선언에 대한 보수진영의 공세와 현 정부가 냉전적 사고에 갇혀 있다는 진보진영의 반발은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는 종전선언을 둘러싼 갈등이 거의 진영간 이념적 내전 상황으로 비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전·현 정부 할 것 없이 우리 정부에 대한 북한의 태도는 일관적이다. 현 정부의 강경 위주의 대북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상종’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지만 이는 2019년 이후 문재인 정부를 대했던 태도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 다음날 “남조선과는 더 이상 상종하지 않겠다”라는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마지막 담화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2019년 2월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핵무력을 국체로 삼기로 결정하면서 종전선언, 평화협정, 평화체제에 대한 지향과 관심을 완전히 접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 평화체제라는 단어가 사라지면서 이제는 어느 일방에 의해서든 혹은 양자간의 대화을 통해서든 한반도 문제의 핵심 의제였던 종전과 평화협정, 평화체제는 상당기간 언급조차 어려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사라지는 ‘남북교류협력’
올 한해 동안 우리 민간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를 수습하고 평화프로세스를 실현하기 위해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촉구하면서 ‘한반도 평화선언(Korea Peace Appeal)’ 캠페인을 전개하여 왔다. 그렇지만 우리 민간의 주장이 대다수 국민들의 확고한 지지를 획득하고 남·북·미 당국의 정책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기에는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군사협력 추진을 통해 힘의 우위를 확보하여 북한 비핵화를 강제하려는 방안과는 달리하면서도 당사국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적인 평화프로세스의 대안을 새로이 제시하기에는 남북관계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북관계의 변화는 우리 정부가 주도하기 보다는 미국의 정책변화나 북한의 전략변화에 의해서 가능할 것이며, 민간 차원의 관여도 사실상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 민간은 남북관계 배제와 대북억제 위주의 현 정부의 정책 수정과 북한과의 대화 모색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하며 국민적 지지를 확대해 나가기 위한 보다 실천적이고 창의적인 캠페인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또한 미국의 관성적 대북정책과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시민사회가 주창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의제는 남·북·미가 ‘전쟁 방지와 긴장 완화’를 최우선적인 의제로 삼고 단절된 대화를 복구하는 것일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무력 충돌을 방지하고 비핵화를 이루려면 압박과 제재보다는 대화와 외교가 우선 되어야 하며, 남·북·미 모두 2018년 ‘4.27 판문점 합의’와 ‘싱가포르 합의’에서 다시 시작해야 함을 주창해야 한다.
요즈음 들어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민간차원의 남북교류협력에 대한 현 정부의 부정적 태도와 정책으로 민간 교류협력사업의 생태계(역량, 자원, 사람, 네트워크 등)가 급격히 소멸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정부가 문화예술인들의 일본 조선학교와의 교류행위를 문제삼고 있듯이 그간 절차를 간소화하여 신고제로 운영하였던 북한 주민 접촉 신청을 이제는 허가제로 전환하고, 대단히 자의적인 단서조항을 내세워 북한 주민 접촉 신청을 끝내 불허(수리거부)하는 초유의 일들이 최근 발생하고 있다. 앞으로 정부가 민간단체들의 사전신고는 수리거부하고 사후신고는 사전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함으로서 민간의 교류협력 활동을 허용하지 않고 원천 차단하지 않겠냐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원칙과 질서 확립’ 원칙 아래 교류 위축
민간의 교류협력활동에 대한 제약은 지난 6월 발표된「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중 ‘과태료를 엄격히 부과, 건전한 민간 교류협력 질서를 확립하여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방침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겠지만, 남북교류협력법은 제1조에서 “남북간의 상호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며 그 법 제정과 운용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원칙과 질서 확립’이라는 명분을 앞세우기 위해 민간의 대북지원과 교류협력활동을 위축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앞으로 상당기간 남북관계 개선이나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사업들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득세하고 있다. 그럼에도 남북간 합의사항을 준수하고 교류협력을 재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선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성과와 신뢰를 쌓는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 정부와 민간의 몫이다. 또한 우리 민간은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꾸준히 준비하고 동시에 북한의 태도변화를 전방위적으로 설득해 나가야 한다. 특히 정치·군사적 근본문제의 우선적 해결을 주장하면서 교류협력을 비본질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있는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평화는 두 개의 축으로 달성 가능하며, 정치·군사적인 신뢰구축이 그 하나라면 각 분야의 다양한 남북 교류협력이 또 하나의 축이다.
25여 년 전 민간차원의 교류협력 활동이 남북관계의 새 지평을 여는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듯이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다시 우리 민간단체들의 힘으로 돌파해 낼 수 있도록 ‘낙관적 의지’를 가지고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평화는 교류협력의 지속적 상태에 다름아니다. 교류와 협력만이 한반도에 궁극적인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열쇠이며, 교류와 협력은 압박과 제재보다는 대화와 외교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인식의 확산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정전 70년, 이제껏 한반도를 억누르고 있는 70년의 ‘기이함’을 이제는 민간의 힘으로 끝내야 할 때이다.
강영식(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 본란 쾌도난마 중 ‘아시아 협력과 한반도 미래’ 분야 필자인 정영재 북방경제문화원 운영위원장의 개인적 사유로, 이번주부터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가 동일 분야 집필을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