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함과 열정 가득 로맨스 코미디

[임유진의 무대읽기] 연극 '연애를 잃다' 주크박스 뮤지컬로 사랑 무겁지 않게 풀어내

2024-02-14     임유진
뮤지컬 '연애를 잃다'

 지난 1월12일부터 14일까지 ‘시어터 연바람’에서는 극단 ‘밝은밤’이 창작 뮤지컬 ‘연애를 잃다’를 올렸다. 광주에서 뮤지컬이라니, 그것도 창작 뮤지컬이라니 신선했다.

 ‘연애를 잃다’라는 제목도 신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극단 ‘밝은밤’의 주요 구성원이 젊은 연극인으로 되어 있다더니 요즘 젊은 세대는 연애를 잃어버린다고 표현하기도 하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제법 호기심이 일었다.

 약간의 우려도 있긴 했다. 극단 ‘푸른연극마을’의 전용 극장인 ‘시어터 연바람’이 지하에 있는 작은 극장임을 알기에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뮤지컬은 대체 어떤 형태일지, 과연 그동안 알고 있던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그곳에서 제대로 공연이 될지 하는 것 말이다. 흔히 뮤지컬이라 하면 화려하고 큰 무대 세트와 춤, 노래가 어우러진 대형 공연이 연상되는 까닭이다. 어쨌든 지방 연극의 맥을 이어가려는 젊은이들의 창작 뮤지컬이 반가웠고, 설레임과 흥분을 안고 ‘시어터 연바람’을 찾았다.

 무대는 두 개로 분할되어 있었다. 왼쪽은 대성 슈퍼인데, 오래되고 낡은 가게였다. 가게 앞에는 평상이 있었다. 슈퍼에 달린 문으로 배우들이 나왔다 들어간다. 슈퍼임을 알리는 자잘한 소품이며 벽에 난 낙서 같은 것들로 제작진이 무대 세트에 공을 들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성 슈퍼 바로 옆에 초록색 대문이 있는데 여자주인공 지현이 사는 집이다. 슈퍼와 대문 사이 벽에는 빨간색 작은 우체함이 벽에 붙어 있다. 지현의 집 오른쪽 벽에는 전봇대가 있고, 전봇대 위에는 가로등이 있다.

 무대 오른쪽에는 요즘 젊은 세대가 자주 찾는 장소 중 하나인 ‘인생 네컷’ 촬영소가 있었다. 슬며시 웃음이 났다. 진짜로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겠구나 싶어서 말이다. 뭐, 나이 든 사람 중에서도 ‘인생 네컷’을 찍으러 가는 이들이 있을 수 있으니 편견에 사로잡힌 발언일 수도 있겠지만, 역시 ‘인생 네컷’은 젊은이들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이 사진 촬영소는 나중에 포차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슈퍼와 지현의 집, 그리고 사진 촬영소(혹은 포차)는 전봇대를 기준으로 나누어지고, 그 사이는 골목이자, 배우들의 등, 퇴장로가 된다.

 여자 주인공 지현과 남자 주인공 인호는 처음 만나 사랑을 느낀 후 3년 넘게 만나 온 커플이다. 하지만 지금은 헤어진 상태다. 그런데 남자가 다시 와서 사랑을 이어가길 원한다.

 과연 그들은 다시 사랑하고 연애할 수 있을까. 여자는 사랑하는 만큼 상대가 모든 것을 자신과 공유해 주길 원한다. 하지만 남자는 중요한 일이 생기면 말없이 잠수를 탔다. 그것을 ‘잠수 이별’이라고 한다는 것을 연극을 보면서 알았다.

 그리고 상대에게 말해도 될 일 같은데 말없이 떠나버리는(잠수 타는) 남자가 답답했다. 그래서 알았다. 내가 어쩌면 평범한 여자의 속성일지도 모르는 것들을 지닌 지나간(나이 든) 세대임을.

 ‘연애를 잃다’가 뮤지컬이었기에 노래에 신경을 썼다.

 그런데 듣다 보니 내가 아는 노래가 계속 나온다. 그렇다. 극단 ‘밝은밤’의 ‘연애를 잃다’는 주크박스 뮤지컬(Jukebox Musical)이었다. 뮤지컬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주크박스 뮤지컬은 대중에게 친숙한 기존의 노래를 모아서 극의 구성에 맞게 재편집한다. 스웨덴의 대중가요 그룹인 ‘아바(ABBA)’의 노래를 모아서 만든 뮤지컬 ‘맘마미아’가 주크박스 뮤지컬의 대표적인 예다. 우리나라에도 가수 김광석의 노래로 만든 ‘그날들’이나 주로 이문세가 불렀던 작곡가 이영훈의 노래로 구성한 뮤지컬 ‘광화문 연가’ 등 주크박스 뮤지컬이 꽤 있다.

뮤지컬 '연애를 잃다'

 일단은 극의 내용에 맞게 노래를 찾아내서 편집하고 구성한 ‘밝은밤’의 공을 인정하고 싶다.

 문제는 총 4회 공연 중 마지막 공연이어서 그랬는지 배우들의 목 상태가 좋지 않아 노래를 부를 때 오히려 극에 대한 몰입감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냥 연극이었다면 괜찮았을 부분도 노래가 시작되면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들어서 관극에 방해가 되는 지점이 있었다.

 마지막 공연이라 남은 에너지를 모두 불사를 결심이었는지 춤은 모든 배우들이 정말 열정적으로 추었다. 그러니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젊은 그들의 열정이 온전하게 드러나지 못하는 노래에. 명색이 뮤지컬인데, 노래가 취약점이 되어 버려서 말이다.

 창작 뮤지컬이 아니라 주크박스 뮤지컬이었지만, 지방에서 뮤지컬을 시도한 젊은 극단의 시도는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공연은 대학로에서 롱런하는 로맨스 코미디물과 보통 순수 연극(상업성을 배제하고 예술성만을 추구하는 연극)이라고 부르는 무대 그 중간 어디쯤 위치했다. 아마도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법을 너무 무겁지 않게 풀어내려고 하면서 춤과 노래를 섞어 놓으니, 대학로식의 로맨스 코미디물과 비슷해진 것 같고, 그러면서도 주제에 관한 진지함을 잃지 않고 중심을 잡으려고 하는 부분에서는 순수 연극에 대한 열망이 추(錘)가 되었던 것 같다.

 ‘연애를 잃다’는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열정적이어서 젊은 에너지로 충만한 무대였는데, 그중에서도 ‘쇼츠’역을 했던 배우가 단연 돋보였다. ‘쇼츠’는 일종의 ‘멀티맨’ 역할이었는데, 다양한 역할을 잘 소화 해내면서 관객에게 계속 웃음을 주었고, 노래와 춤도 좋았다.

 극을 쓰고 연출한 임채빈과 최혜민(쇼츠 역), 그리고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한 배우들과 세심하게 무대를 꾸민 스태프까지 극단 ‘밝은밤’의 전 구성원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다음에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극단 ‘밝은밤’의 무대를 기다려본다.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