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도 높인 과감한 삭제 돋보여
[임유진의 무대읽기] 광주연극제 ‘갈매기’ 리뷰 상징성 큰 ‘갈매기’는 어디로 갔나? 아쉬움도
‘제38회 광주 연극제’(3월 5~9일)의 네 번째 작품은 극단 ‘시민’의 ‘갈매기’였다. ‘갈매기’는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작품이다. 극단 ‘시민’은 작년에 있었던 ‘제37회 광주 연극제’에서도 체호프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작년에 올라갔던 작품은 ‘세 자매’였다.
‘갈매기’는 1896년 10월에 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되었는데 대실패로 끝났다. 실망한 체호프는 다시는 희곡을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체호프의 천재적 극작성을 알아본 네미로비치 단첸코가 체호프를 설득한다. 또, 단첸코는 작품 연출을 뛰어난 연출가인 스타니슬랍스키에게 맡긴다. 스타니슬랍스키의 ‘갈매기’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어 찬사와 호평을 받는다.
그 뒤로 체호프는 ‘갈매기’에 이어 그의 대표작이 되는 장막 희곡 세 편을 더 발표한다. ‘바냐 아저씨’(1987), ‘세 자매’(1900), ‘벚꽃 동산’(1903)이다.
러시아 연출가인 에프로스는 “저마다 자신만의 체호프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 정도로 체호프의 희곡은 각자만의 독특한 해석이 가능한 지점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이고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도 연출가들이 자신만의 체호프를 무대에 올리려는 욕망을 품게 되는 것 같다.
이번 ‘갈매기’는 작년의 ‘세 자매’와 기본적으로 무대가 같았다. 아무런 무대 장치가 없는 텅 빈 공간에 바둑판 같은 네모들의 연결을 무대 바닥에 조명만으로 비추었다. 그리고 배우들이 어깨춤(춤이라고 해야 하는지 몸짓이라고 해야 하는지)을 추면서 등장하고 퇴장하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세 자매’를 연출했던 사람이 올해는 체호프의 다른 작품을 비슷한 구성으로 가져왔나 보다고 생각했다.
‘갈매기’는 지방에 있는 소린 집안의 영지에서 벌어지는 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소린은 나이 든 남자인데 지금 그 집에는 소린의 여동생인 아르까지나와 그녀의 연인인 소설가 뜨리고린이 와 있다. 아르까지나의 아들 뜨레플레프는 희곡을 쓰는 젊은 청년인데, 마을 지주의 딸 니나를 사랑한다. 하지만 니나는 뜨리고린을 흠모한다. 소린 집안을 돌보는 관리인 사므라예프와 폴리나의 딸인 마샤는 뜨레폴레프를 연모한다. 그런 마샤를 사랑하는 메드메젠꼬는 마샤에게 구애한다. 마샤의 어머니 폴리나는 의사인 도른에게 연정을 바친다.
‘갈매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과 그들의 얽히고설킨 연정 관계를 일반 관객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고 본다. 또한 ‘갈매기’라는 작품이 이들의 복잡한 사랑 이야기가 주인 것도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새로운 형식을 찾아서 작품을 쓰려고 하는 뜨레폴레프와 그런 아들을 비웃는 전직 배우 아르까지나, 뜨레폴레프의 뮤즈이자 연모 대상인 니나와 니나가 흠모하는 소설가 뜨리고린의 애매한 사랑법.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들과 좌절 속에서 포기를 배우는 이들이 교차하며 직조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 ‘갈매기’이기 때문이다.
이번 극단 ‘시민’의 ‘갈매기’에서 좋았던 점은 과감한 삭제였다. 체호프의 희곡은 메드베젠꼬와 마샤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번 극단 ‘시민’의 ‘갈매기’는 등장인물이 모두 관객에게 등을 돌리고 일렬로 앉아서 무언가를 보는 걸로 시작했다. 그 무언가란 바로 뜨레플레프가 쓴 희곡을 상연하는 니나의 연극 무대다. 과감한 장면 생략과 도입이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체호프의 희곡에서 나름 비중을 차지하는 소린이라는 캐릭터가 삭제된 점도 신선했다.
두 번째로는 깔끔한 연출력이 좋았다. 같은 무대 장치에 같은 어깨춤 동작을 보면서 같은 연출이라고 짐작했을 때는 1년 사이에 연출력이 몰라보게 신장했다고 느꼈다. 공연이 끝난 후 찾아보니 이번 ‘갈매기’ 무대는 김민호 연출이었다. 김민호는 러시아에 가서 연극 공부를 하고 온 유학파 출신이다. 그래서 좋았을까? 그것까진 모르겠다. 외국 사람이 한국에 와서 한국 고유의 문화를 경험하고 공부한다면 (한국적) 무대를 만들 때 도움은 되지 않을까 정도의 추측만 한다.
아쉬운 점은 ‘갈매기’에서 갈매기가 잘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뜨레플레프는 갈매기 한 마리를 죽여서 니나의 발치에 던진다. 뜨리고린을 쫓아 모스크바에 갔다가 버려지는 니나는 자신을 갈매기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뜨레플레프는 갈매기를 죽였던 그 총으로 자살한다. 이 ‘갈매기’라는 연극에서 갈매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혹은 상징하는지 이번 무대에서는 잘 다가오지 않았고, 사실 생각할 여지도 별로 없었다. 지나치게 깔끔하고 삭제된 부분이 많은 연출 덕이었을까?
마지막으로 ‘어깨춤’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작년에 처음 보았을 때 이미 충격을 받아서인지 올해는 충격이 좀 덜했고 심지어 적응했다. 올해 배우들이 어깨춤을 덜 부자연스럽게 소화한 덕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여전히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그런 기괴한(uncanny) 동작과 함께 올리는 이유나 의의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무얼 말하고 싶어서 그런 동작을 배우들에게 요구한 것일까. 희극성? 체호프가 생전에 자신의 작품은 ‘희극’이라고 해서? 어떤 의도가 되었든지 간에 관객에게 전달되지 못했다면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관객(나)이 수준 미달일 수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연출이 달랐는데 같은 무대와 같은 어깨춤 동작을 보인 것의 의미도 궁금하다. 극단 ‘시민’은 앞으로 (연출자가 달라지더라도) 같은 무대와 같은 어깨춤으로 체호프의 작품을 계속 만들 생각일까? 꼭 체호프가 아니더라도 동일한 방식의 무대와 몸짓을 이용한 무대를 만들 계획일까? 몹시 흥미롭다. 극단 ‘시민’의 행보를 주목한다.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