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과 ‘먹는다는 것’ 일상속 비일상성 탐구
[임유진의 무대읽기] 제프 소벨(Geoff Sobelle)의 ‘Food’ 관객 참여형 공연…언어의 한계가 주는 아쉬움
지난달 19일부터 21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제프 소벨(Geoff Sobelle)의 ‘Food’라는 작품의 공연이 있었다. 웨이터 복장의 외국인이 아주 큰 식탁에서 관객일 것 같은 사람들과 섞여 있는 모습의 포스터만으로도 재미있어 보였고 흥미가 돋았다. 무얼 하는지는 몰라도 30여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큰 식탁 자리는 이미 매진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흥미로웠고, 잘 보고 싶어서 되도록 식탁 가까운 자리로 예매했다. 참고로 식탁 자리가 제일 비싸고 식탁에서 멀어질수록 티켓비는 저렴해진다.
극장에 들어서면 거대한 식탁이 있다. 위에는 샹들리에도 있고, 식탁 뒤쪽 벽에는 커다란 그림도 있는, 제법 고급 레스토랑이다. 비싼 티켓을 구입한 사람들은 식탁에, 기회를 놓친 사람들은 식탁 주위의 관객석에 앉는다. 포스터에서 본 웨이터(제프 소벨)와 한 여자가 식탁 앞쪽에 서 있다. 여자는 통역사인데 제프 소벨이 미국인이라 영어를 사용해서 통역사가 필요했고 따라서 통역사도 퍼포먼스의 일원이다.
‘Food’는 잘게 나누면 네 부분, 크게는 두 파트로 나눌 수 있는 공연이다. 관객이 모두 입장하면 웨이터가 관객에게 와인을 따라준다. 이 공연에서 두 번 ‘No’라고 말할 뻔했는데, 이때가 처음이었다. 왜냐하면 와인은 (당연한 듯이) 식탁에 앉은 관객에게만 주었는데 모두 받았냐고 물어봤기 때문이다. 웨이터는 자신이 따라 준 와인에 대해 설명한다. 와인을 받은 관객 중 몇몇은 와인의 맛과 향기에 대해 자신의 느낌을 얘기해야 한다(그래서 관객 중 일부(남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는 자신이 식탁 자리에 앉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관객은 웨이터의 주문에 따라 눈을 감고 음식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서 오는지, 왜 먹는지, 뭘 먹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엄마의 뱃속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하다 못해 인류의 시원까지 가야 한다. 그렇게 간단한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이 끝나면, 이제 음식에 대한 본격적인 공연이 이뤄진다. 웨이터는 사람들에게 주문을 받고 음식을 즉석에서 만들어 대접한다. 여기가 약간 코미디적 요소가 있는 지점인데, 채소가 가득한 샐러드를 달라고 하면 조리되지 않은 채소를 접시에 가득 담아 가져다주고, 생선 요리를 주문하면 북극에 가서 얼음을 깨고 생선을 잡아 펄떡이는 생선(인형인데 펄떡인다)을 통째로 가져다주는 식이다.
여기까지가 파트 1의 1, 2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스 브레이킹’이 첫 번째 장이고 식당에서 관객들과 음식으로 소통하는 것이 2장이다. 그런데 사실 식당 장면은 흥미롭고 유쾌하기도 하지만, 살짝 지루한 점도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언어의 소통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 공연자와 관객이 하나의 언어로 소통하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언어’가 주가 되는 공연이라는 장르에서는 주의를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래서 오히려 더 공연자에게 집중할 수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약간 답답한 분위기가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본다.
웨이터가 관객에게 한정식을 먹는다고 가정하라고 하면서 대표적 한국 음식을 대라고 할 때, 불고기나 잡채, 갈비찜 같은 것을 대는 관객 사이로 한 관객이 자신이 떠올린 음식을 영어로 설명했다. 그가 왜 룰(한국이니까 관객은 한국어로 말하고 통역이 그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공연자가 다시 영어로 말하고 그것을 다시 통역이 한국말로 옮기는)을 깼는지는 몰라도, 그 관객은 그 정도의 간단한 영어는 통역 없이도 직접 소통할 수 있다고 느꼈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영어를 썼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창한 영어를 사용하던 이 관객은 갑자기 뭔가 깨달은 사람처럼 ‘영어 쓰기’를 중단하고, 자신이 설명하려던 음식을 한국말로 얘기한다. 관객의 영어에 잠시 당황한 것처럼 보였던 통역이 그것을 공연자에게 영어로 옮겨 말한다. 잠깐의 해프닝에 불과했지만, ‘아시아에도 영어로 소통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간과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영어를 못하는 사람도 이런 관객 참여형 공연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공고하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파트 1이 끝나고 웨이터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그전까지 웨이터의 모습과 공연자의 모습이 혼재되어 있었던 제프 소벨이 구두를 벗어 던지고 양말까지 벗어 던지고 의자에 아주 편하게 앉아 사과 하나를 먹을 때까지도 관객은 그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른다. 아마 사과를 두 개 먹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을 것이다. 제프 소벨은 무려 사과 다섯 개를 무서운 기세로 먹어 치운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이 상황을 아주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는데, 그는 사과를 ‘흡입’한다.
그가 사과를 두 개 먹을 때까지는 웃는 관객이 있다. 하지만 그가 사과뿐만 아니라 식탁 위에 있는 거의 모든 것, 불이 붙어 있는 양초를 포함, 피우던 연초와 핸드폰까지 우적거리면서 ‘걸신들린’ 사람처럼 탐욕스럽게 섭취를 시작하면 관객 사이에는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이때가 두 번째로 ‘No’라고 외치고 싶은 순간이었다. 나는 이러다간 그가 식탁 위로 기어 올라가 사람들의 머리통이나 귀, 혹은 목 부위를 씹어 먹으려고 들지도 모르겠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Food’라는 이 공연은 결국은 ‘카니발리즘’으로 귀결되는 것인가.
(다행히도) 내가 미친 사람처럼 공포에 사로잡혀 ‘Noooo!’라고 외치면서 객석을 박차고 일어나 공연장을 뛰쳐나가기 직전에 공연은 전혀 다른 장으로 접어들었다. 제프 소벨은 먹을 것을 다 먹어 치우고 나자 식탁을 덮고 있던 흰 천을 걷었다. 흰 천 아래는 흙모래였다.
여기서 이제 공연의 마지막 장이 펼쳐진다. 밀밭이 생겨나고, 작은 소들이 걸어 다니다가 흙모래 아래에 묻히고, 집과 건물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공연자인 제프 소벨이 흙모래 아래로 묻혀 사라지면서 공연은 정점에 이르렀다가 끝이 난다.
제프 소벨은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프랑스에서는 피지컬 씨어터(신체극)를 배웠으며, 마술사이기도 하다. 사실 그가 도대체 먹을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까지 포함해서 갖가지 것을 먹어 치울 때 그것은 마술사의 쇼였다. ‘Food’는 2022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초연되었고, 2023년 영국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에서는 27회 전회차 매진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번 공연은 아시아 초연인데, 서울과 공주에 이어 광주가 세 번째 공연지였다.
제프 소벨은 일상적인 소재에서 비일상성을 탐구해 왔다고 하는데, ‘먹는다고 하는 것’과 ‘먹거리(food)’라는 아주 일상적인 것을 가지고 관객과 함께 그 의미를 찾는 퍼포먼스에서 문득 미국의 화가 조지아 오키프를 떠올렸다. 오키프가 크게 확장해서 그렸던 꽃과 동물의 뼈, 사실적이지만 사실적이지 않고 추상적이면서도 추상적이지만은 않았던 그의 그림이 연상되었다. 일상적으로 여기는 것들의 의미가 확대돼 색다른 해석과 본질을 보여줄 때 느껴지는 감상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