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뛰어넘는 붓다의 깨달음
[임유진의 무대읽기] 뮤지컬 '싯다르타' ‘마음의 평화, 행복한 세상’
음력으로 4월 초파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다. 가끔 삶이 힘들 때, 부처님에게 귀의하면 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부처님은 타 종교의 신들과는 좀 다르다. 그분께 무조건 의탁하는 것은 불교의 가르침이 아닌 것 같은 것이다. 부처님은 원래 한 왕국의 태자였다. 세속의 부귀와 영광은 다 누릴 수 있는 자리를 마다하고 그는 왜 험난한 고행의 길을 선택하여 깨달음을 얻은 후 ‘붓다’가 되었을까?
아마 나처럼 붓다의 삶에 의문을 가진 비신자나, 이미 불교에 귀의했음에도 끊임없이 세속의 유혹에 시달리며 진리를 깨치지 못한 자들을 위해 이 뮤지컬이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뮤지컬 싯다르타’다.
지난 3월8일부터 10일까지 ‘광주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랐다. 종교 뮤지컬이라 스님이나 불교 신도들만 볼 것 같았는데 나 같은 비종교인도 꽤 관람한 것 같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극이 끝날 때쯤 알게 되었는데 주인공 싯다르타 역을 맡은 배우가 잘 알려진 트로트 가수(고정우)였다. 그 가수의 팬들이 관객 중 일부를 차지했던 것 같다.
종교 뮤지컬로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밖에 본 적이 없어서 ‘뮤지컬 싯다르타’를 보러 갈 때 나름으로는 조금 흥분됐다. 너무나 잘 알려진 한 인물을 소재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말이다. 어쩌면 뮤지컬 한 편을 보고 대뜸 불교에 귀의하는 사건이 내게 발생하길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본 후에도 기독교에 귀의하지 않았으니 문제는 작품에 있지 않고 나에게 있을 것이다), 왕족의 신분으로 태어나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고통을 목도하고 모른 체 하지 않은 한 인간 싯다르타의 일생은 그 의미가 컸다.
작품은 우선 인도의 카필라국의 왕자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의 어린 시절을 보여준다. 어린 싯다르타 역을 맡은 소년이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곧잘 해서 보는 내내 미소가 지어졌다. 어린 싯다르타는 부족함 없이 화려하고 행복한 궁궐 생활과는 다른 삶,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목한다. 하지만 그는 일국의 왕자로서 행해야 하는 과업이 있다. 부왕의 대를 이어 왕도 되어야 하고, 결혼해서 자손도 낳아야 한다. 그래서 생로병사(生老病死)에 시달리며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에 관한 생각과 고민을 계속 가져가면서도 일단은 태자의 삶을 충실하게 행한다.
여기에 싯다르타를 보살피는 하인 찬나와 나중에 싯다르타의 아내가 되는 공주 야소다라의 하녀 우팔라가 주요 등장인물로 나와서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역할을 맡는다.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로 만들어진 극마다 등장하는 희극적인 역할들인데, 전체적인 극의 흐름을 깨지는 않았지만, 꼭 있어야 하는 장면인지를 생각해보면 판단이 쉽지 않았다.
결혼까지 하고도 왕족의 신분을 버리고 수행을 떠나는 싯다르타와 싯다르타의 번민이 불러오는 마라(魔羅, 수행 중인 싯다르타를 방해하는 존재)와의 갈등에 좀 더 치중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을 만들 때, 제작자나 연출가나 한 템포 쉬어가는 느슨한 구간을 만들고 싶어지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말이다.
싯다르타는 결혼까지 하고서도 결국 왕좌를 박차고 나와서 6년간의 고행길에 들어선다. 마라의 달콤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는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소름이 끼쳤다. 안락한 삶을 버리고 극한의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는 게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 싯다르타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왕비 야소다라도 대단하다 싶었다. 어린 시절 싯다르타에 관한 위인전을 읽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상이었다. 남편이자 아버지인 사람이 ‘가정을 버리고’ 붓다로 향한 길을 걸어가는데, 동조하며 받아들인다니. 싯다르타 못지않게 야소다라도 한 편의 뮤지컬로 만들기 충분한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싯다르타를 맡은 트로트 가수가 노래를 무척 잘해서 감탄했는데, 싯다르타를 유혹하는 마라를 맡은 배우도 깜짝 놀랄 만큼 노래를 잘했다. 뮤지컬은 아무래도 노래가 주가 되는 장르다. 주, 조연할 것 없이 모두 노래를 잘하니 뮤지컬을 감상할 맛이 났다. 특히 트로트 가수라는 배우의 노래에서 트로트 특유의 기법을 느낄 수 없어서 좋았다. 노래뿐만 아니라 ‘뮤지컬 싯다르타’는 춤이나 무대 장치도 공들여 만든 흔적이 역력해서 제대로 된 뮤지컬을 한 편 볼 수 있었다.
싯다르타가 개인의 안락을 버리고 고행을 통해 붓다가 된 것은 사랑(불교에서는 자비라고 해야 하나?),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아무나 함부로 따라 할 수 없는 사랑이지만, 그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들(꼭 불교도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이 많은 것에 따뜻한 위안을 느껴본다. 불의에 항거하며 ‘마음의 평화, 행복한 세상’(2024년 부처님 오신 날 기념 봉축 표어)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싯다르타’는 2019년에 초연되었다. 이번 광주 공연은 시즌 6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싯다르타 개인의 내적 고민과 인간들의 고통에 좀 더 천착하고 마라와의 갈등이 약간 더 부각 되었으면 하는 감상이 남지만, 잘 만든 뮤지컬이었다. 내년에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보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싶다.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