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고통 속 ‘정상적’ 가족이란
[임유진의 무대읽기]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지나친 애도가 갉아먹은 한 가족의 삶
지난 5월25일과 26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2에서는 뮤지컬 한 편이 올라갔다. ‘넥스트 투 노멀(next to normal)’이라는 극이다. 2009년에 토니상과 퓰리처상(드라마 부문)을 석권한 작품이었다. 토니상에서는 무려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고, 그중 3개 부문(음악상·편곡상·여우주연상)에서 수상했다.
‘넥스트 투 노멀(next to normal)’의 주인공 다이애나는 아들과 딸, 그리고 다정다감한 남편과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다. 다이애나는 아들을 무척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딸과는 갈등이 좀 있어 보인다. 남편 댄은 ‘굿맨’이라는 성(family name)에 어울리게 행동하는 남자처럼 보인다. 가족을 위해, 가족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으로 보인다. 또 댄과 다이애나의 부부 금술은 무척 좋은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갑자기 다이애나가 이상 행동을 한다. 댄은 아내를 정신과 의사에게 데려가고 관객은 다이애나가 우울증 혹은 조울증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다이애나의 병은 오랜 세월 동안 진행된 것인데, 원인은 아들의 죽음이다. 사실 아들 게이브는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병으로 죽었다. 다이애나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환상 속에서 아들과 함께 살았다. 그래서 아들은 18살 청년의 모습으로 가족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대저 지나친 애도는 정상적인 삶을 갉아먹기 마련이고, 애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의 주변 인물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다이애나는 8개월 만에 생을 달리한 어린 생명이 준 고통과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고, 그녀가 그런 시간을 보내는 사이 딸 나탈리와 남편 댄의 삶은 피폐해져 갔다. 특히 엄마에게 소외감을 느낀 딸은 마약까지 하면서 삶을 방치한다.
이렇게 겉으로는 정상적인 가족처럼 보였던 굿맨 집안은 환영인 아들 게이브를 포함해 네 명 모두가 아픈 사람들이다. 다이애나는 자기도 모르게 멀리했던 딸 나탈리를 위해서라도 강력한 치료를 받을 결심을 하고, 전기 충격 요법을 받는다. 이후로 그녀는 아들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동시에 딸과 남편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결국 다이애나는 가족을 떠나 혼자 생활하기로 하고, 집에는 아버지인 댄과 딸 나탈리만 남는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아이가 죽으면 여자만 저렇게 고통스러운 것일까. 남자는, 아버지인 댄은 아내의 고통에 동참하지 못하는 걸까? 여자는 본인의 몸에 10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아이와 함께 하다가 죽고 싶어질 만큼의 고통 속에 아이를 출산하니까? 그래서?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자식을 잃은 고통이 남다른 것일까? 왜 저 남자는 여자를 정상으로 돌려서 가족을 정상에 가깝게(next to normal) 하려는 노력만 하는 것일까? 그것이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남자들의 본능적인 사고일까?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를 보면 남자도 여자도 같은 고통과 슬픔으로 몸부림치는 것이 일반적이던데 저 남자는 참으로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람인가?
그 의문은 극의 마지막에 가서 풀린다. 사실 댄은 다이애나와 같았다. 아버지인 댄 역시 아들의 환영을 보고 있었다. 다만 모른 체 하고 있었을 뿐이다. 다이애나가 떠난 차갑고 쓸쓸한 집에서 댄과 데이브가 서로 대화를 하고 처음으로 댄이 아들의 이름을 부를 때, 내내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아들을 모른 체 하면서 댄이 보낸 시간, 자신의 감정은 꾹꾹 눌러서 억압하고 살아있는 딸과 아내를 보살피려 했던 한 아버지의 선택이 어쩌면 가장 비통한 것일 수 있다는 통찰이 머리와 가슴을 후려쳤다.
다이애나의 고통과 댄의 고통을 저울질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어떻게든 가정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려고 애쓴 댄의 노력을 정당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낳은 첫 아이를 허망하게 보내고 난 뒤, 정신을 놓은 아내와 외로움에 삶을 망가뜨리는 딸을 보면서 긴 시간 혼자 싸워왔을 댄의 시간이 너무나 아팠다. 사실 그 또한 환자라면 환자 아닌가. 8개월이었던 아이가 18살이 될 때까지 보아 왔으니 말이다. 이 극의 중심인물은 죽은 아이를 놓지 못하는 엄마이지만, 극에서나 삶에서나 굳건히 서서 무너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한 아버지자 남편인 댄이 정말 인상 깊었다.
‘넥스트 투 노멀(next to normal)’의 무대는 안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3개의 층으로 돼 있다. 배우가 철골로 이루어진 집을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하거나 마치 절벽 끝에 선 사람처럼 철골 바로 앞에 서서 노래하면 금방이라도 사고가 날 것 같은 불안감이 사람을 긴장시킨다. 특히 아들 역의 배우는 철골을 붙잡고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역동적으로 노래하고 춤을 추는데 그 역동성이 생기보다는 위태로움을 증폭시킨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무언가가 뿜어져 나온다고 할 수 있는데, 아들이 부르는 노래 또한 그렇다.
아들 게이브가 ‘I’m Alive(난 살아있어)’라고 노래할 때, 사실은 환영인 그 아이가 살아있는 사람들을 그만 놓았으면 싶으면서도 그 환영의 노래에 깊이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배우의 노래 실력과 감정선은 너무나 강력해서 그냥 아들(환영)과 같이 살면 안 되는 것인지 잠시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기까지 했다. 사랑하는 존재와 죽음으로 갈라졌을 때 살아있는 사람이 얼마만큼이나 고통을 받는지, 하지만 그 고통이 너무나 길어졌을 때 산출된 또 다른 고통이 어떻게 삶을 피폐화시키는지 ‘넥스트 투 노멀’은 여실히 보여 주었다. 무대가 끝나자 관객 대부분이 기립 박수를 쳤다.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