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우정’을 소환하자!

[교육의 창]  “학교 폭력, 언제까지 법에 의존할 것인가”

2024-07-03     정성화
광주시교육청이 지난달 광주교육연수원에서 학교폭력 제로센터와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 도입을 앞두고 시교육청·각 교육지원청·Wee센터·117센터 등의 업무 담당자가 참여한 가운데 연수를 실시했다. 사진=광주시교육청 제공.

 부지불식간에 학교를 점령한 개념이 있다. ‘학교폭력’이다. 그전에 있었던 ‘왕따’를 어린아이 취급하면서 아이들 생활문화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든 학교폭력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이것이 몇 차례 반복되자 법을 통해서라도 아이들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2012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교폭력법)에 관한 법이 세워졌다.

 2024년 현재 학교 상황을 들여다보자. 법의 성과는 어떠하며, 이로 인해 학교 현장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첫째, 발표되는 통계에 따르면, 초기 5년간(2012~2017년)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다가 다시 증가하고, 코로나 기간에 줄어들다가 또다시 증가하여 초기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유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있어야겠지만, 결과 자체만 보면 만족스럽지 못하다.

 둘째, 학교폭력을 담당한 교사의 업무가 천정부지로 많아졌다. 1건이 신고될 때마다 1달 정도 이 업무에 매달려야 한다. 3~4건을 동시에 진행할 때는 정말 힘들다.

 가ㆍ피해자 부모로부터 듣는 차마 듣지 않아야 할 항의나 민원은 교사가 왜 이 업무를 해야 하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올해 전담 조사관 제도가 생겼다지만, 그 효과는 두고 볼 일이다.

 초등 1~2학년 시절 사건도 신고하는 세상

 셋째, 생활문화의 조정자로서 교사 권위가 추락했다. 자신의 아이가 당했다는 분노와 함께 가해 아이가 더 이상 폭력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려면 혼나봐야 한다는 심리 때문에 피해 부모는 적극적으로 학교폭력으로 신고한다.

 이와는 달리 학생기록부에 기재되어 피해 볼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가해자 쪽에서도 사과보다는 더욱 센 반발로 대응한다. 이 속에서 교사가 설 자리는 없다.

 넷째, 관계 회복이 어려워졌다. 보통 (초등) 아이들은 싸운 뒤에 다음날 언제 그랬나는 듯 또 함께 논다. 그러나 학교폭력법을 통해 해결되어가는 과정에 온갖 감정 소비를 하고 나면,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사이가 된다.

 다섯째, 행·재정적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교육청에 있는 생활 분야 관련 조직이나 업무, 예산이 상당 부분 학폭과 관련되어 소비되고 지출되고 있다.

 여섯째, 초등 입장에서 이 법의 매뉴얼을 살펴보면 너무나 얼토당토 않다. 법을 만들게 된 이유도 그렇고, 법에 의해 처벌해야 할 수준 또한 대부분은 중ㆍ고등학생들이 저지른 것들이다.

 그런데 만들어진 매뉴얼은 초등학생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통계로 잡히는 학교폭력의 상당 부분은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것들이다. 사건이 커서가 아니다. 초기에는 3~6학년 정도에서 신고가 이뤄졌는데, 요즘에는 1~2학년이라고 해도 안 봐준다.

 8~9세면 자기의식에 갇혀 있는 시기다. 주변을 고려하면서 행동에 옮기는 시기가 아니다. 발달단계가 그러는데, 이 시기에 저지른 사건도 법으로 처벌해야 한다.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결과적으로 보자면 학교폭력법은 실패했다.

 학폭수를 줄여보자는 것도 실패했고, 부모들의 민원 가중과 함께 교사의 생활지도에 대한 권위도 추락되었으며, 무엇보다도 교육의 논리를 무력화시켜 버렸다.

 성과는 없고, 아이들 생활 문화 초토화

 한마디로 성과는 거의 없으면서 학교와 아이들의 생활문화를 초토화시킨 것이다.

 교육의 장에서 일어난 일은 교육 논리로 풀어가야 한다. 굳이 사회와 법의 논리로 풀어가야 했다면, 법 집행을 경찰 쪽에 뒀어야 했다.

 학교 폭력의 문제는 관계성 약화에서 찾아야 한다.

 관계가 약하면 작은 갈등도 학교 폭력이 되나, 관계가 두터우면 어느 정도의 갈등까지는 관계의 힘으로 해결된다.

 학생 때 가질 수 있는 긍정적 관계란 게 뭔가? 바로 ‘우정’이다.

 관중과 포숙의 오래된 고사부터 이반 일리히까지 그토록 중요시했던 우정이야말로 아이들의 갈등을 교육적으로 해결해 갈 방편이자 목적이다.

 다음은 우정을 기르는 것에 대한 몇 가지 제안이다.

 첫째, 놀이문화를 복원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아이들 놀이가 사이버에서 이뤄지는 게임으로 축소되어 가고 있다.

 관계의 힘으로 갈등을 극복해야

 몸에 바탕한 다양한 놀이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통해 규칙을 지키고, 참고, 인정하고, 승복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갖춰가야 한다. 더 나아가 리더십을 기르고, 희생정신, 배려정신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자치문화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학생회나 동아리 활동이 잘 이뤄지면 소통과 협력, 문제 해결력 등이 길러진다.

 또한 자치조직을 통해 이뤄지는 다양한 대회나 행사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우정과 시민성까지도 길러줄 수 있다.

 셋째, 함께 공부하기 문화다. 인지학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이 ‘친구 가르쳐주기’라고 하지 않는가?

 협동·협력 학습 등을 배치하여 관계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지원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외에도 위의 것들을 더욱 조성해줄 수 있는 공간의 배치, 학교 행사, 지역사회의 역할까지 잘 엮어낸다면 ‘우정이 있는 학교’가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처벌 네가티브보다 우정 포지티브를

 정리해보자.

 아이들의 생활문화는 또다른 교육의 장이다.

 이 부분을 언제까지 학교폭력법에 의존할 것인가? 이제는 처벌 위주의 네가티브(negative)적인 방법보다 포지티브(positive)한 우정을 고려할 때가 되었다.

 아이들 삶 속에 안전뿐만 아니라 재미와 성장까지 바란다면, 오래된 미래인 ‘우정’을 적극적으로 소환해야 할 때이다.

 정성화 시민기자 wjdtjdghk7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