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 차라리 ‘수우미양가’로 돌아갈까?
학생 평가 통지표 두루뭉술 ‘구름 문장’인 까닭
여름방학이 되려면 3주 정도 남았다. 한 학기를 마무리해 가는 시점이다. 이 시기 교사에게 빠질 수 없는 일은 통지표를 작성하여 방학하는 날 나누어주는 일이다. 어찌 보면 한 학기의 학업 결과를 가정에 통보하는 일이니, 받아보는 학생이나 부모나 가장 떨리고 기대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적어도 예전에는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통지표를 나눠주고 받는 일이야 여전하나 기대감은 예전 같지 않다. 어차피 통지표에는 좋은 말이 쓰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나 못하는 아이나 모범생이나 문제아나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다. ‘행동발달 및 종합의견’에서 아이의 특성을 고려한 내용이 들어가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부정적인 내용은 거의 없다. 이러니 무슨 긴장감과 기대감이 있겠는가?
이는 교사들이 문장을 기술할 때 에둘러서 표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비판을 뺀, 긍정 위주의 반추상적인 문장이 대부분이다. 그 문장만을 보면 약간은 유추할 수 있으나 아이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어렵다. 일명 ‘구름문장’이다. 이런 구름문장은 아이에 대한 정보를 감추거나 왜곡하는 역할을 한다.
지필·실기→수행평가→과정중심평가로
그렇다면 이런 일이 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20년이 넘게 말이다.
첫째, 평가 체제에 대한 모호한 이해 때문이다. 예전에 평가는 지필평가와 실기평가로 나누어 실시되었다. 이 두 평가의 결과는 합산되어 90점이 넘으면 ‘수’, 80점에서 90점 미만은 ‘우’로 표기되었다. 모든 과목에서 ‘수’를 맞으면 ‘올수’라고 하여 그렇게 좋아했다.
1995년부터는 수행평가라는 이름으로 평가체제가 바뀌었고, 표기도 평가 결과를 문장으로 기술하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부터는 ‘과정중심평가’라는 말이 들어와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 이렇듯 현장에서 사용되는 평가 용어는 지필/실기 평가, 수행평가, 과정중심평가가 있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현장의 이해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필/실기 평가에서 수행평가로 바뀐 것은 교육에 대한 이해가 바뀌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전자가 지식 및 기능 습득을 교육으로 보고 그것을 잘 습득했는지 확인하는 평가였다면, 후자는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적용·표현·문제 해결하는 역량을 확인하는 평가다. 그러기에 지필/실기 평가는 계량화가 가능해 ‘수우미양가’로 표현할 수 있었지만, 수행평가는 학생마다 달리 나타날 것이기에 계량화할 수가 없어 문장으로 기술하게 한 것이다.
흔히 수행평가의 방법으로 서술, 논술, 구술, 관찰, 토론·토의, 프로젝트, 실험·실습, 보고서, 포트폴리오 등이 제시된다. 그런데 과정중심평가의 방법으로 제시된 예들도 이와 유사하다. 그래서 흔히 수행평가와 과정중심평가가 거의 비슷한가보다 하고 넘어간다.
학부모 민원·교사 역량 부족 겹쳐
그러나 과정중심평가의 취지를 살펴보면 그 다름을 알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과정중심평가는 수업 중에 이루어지는 평가이며, 성취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피드백하기 위한 평가라는 점이다. 이는 지식을 습득한 후에 그것의 적용 역량을 평가하는 수행평가와 비교된다.
이렇듯 지필/실기평가, 수행평가, 과정중심평가는 그 취지와 성격을 달리한다. 나아가 이러한 차이점은 같은 내용을 배웠더라도 평가 내용의 범주, 시기, 방법 등에서 크게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에 대한 명료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구름문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둘째, 교사들이 문장을 에둘러 표현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학부모 민원 때문이다. 통지표에 좋은 말을 써주는 관행이 20여년이 넘다보니,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내용이 들어가면 선생님을 원망하거나 항의 전화를 한다. 평가의 고유 권한이 교사에게 있는 것은 상식에 속한 일이지만, 교사 입장에서 민원 전화를 받게 되면 아이를 위해 사실적으로 쓰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진다. 평가와 문장 진술이 아이 성장에 대한 진솔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전락한 이유이다.
셋째, 교사의 평가 역량의 문제다. 대부분의 교사는 통지표를 정성으로 작성한다. 아이와 관련한 좋은 글을 써주기 위해 애쓴다. 그럼에도 나타나는 문장 진술은 구체적이지 못하다. 이는 두 가지 역량 부족에서 비롯되는데, 하나는 좋은(적절한) 수행평가를 출제하는 역량이요, 다른 하나는 평가 결과를 보고 해석해 낼 수 있는 역량이다.
현재 교사들의 애씀은 평가 결과와 관련이 적은 인상적 글쓰기이거나 해석이 없는 사실 나열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좋은 문장 진술은 교육적 안목과 학생에 대한 이해 위에서 좋은 평가문항과 좋은 해석이 이뤄질 때 가능하다.
“평가의 권위, 교권의 위상과 연결”
정리해보자. 지필/실기평가와 ‘수우미양가’ 체제에서 수행평가(또는 과정중심평가) 및 문장 진술 체제로 바뀐 것은 더 질 높은 교육적 구현과 이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암울하다. 평가가 가져야 할 어떤 권위도, 역할도, 만족도, 전문성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제도를 운영하는 교육당국도, 이를 연구하는 학계도, 현장 교사들도, 심지어 비판의 목소리를 곧잘 내는 교육단체에서도 날선 어떤 비판도 제기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침묵의 카르텔이 어느덧 26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사실 좋은 평가는 학생에 대한 교육적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다음에 이뤄지는 교육 과정과 수업의 질을 견인한다. 또한 평가의 권위는 교권의 위상과도 관련이 있다. 교육혁신이 평가체제의 일신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것을 개선하지 못하겠다면, 비록 반쪽이지만 지식의 습득 정도라도 알려줄 수 있었던 지필/실기평가와 ‘수우미양가’ 체제로 돌아가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정성화 시민기자 wjdtjdghk7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