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만들고 먹고 살기의 일상적 풍경

[가족과 커뮤니티의 풍경들] 초개인화 시대 ‘식구’ 다시 상상하기 여성 1인 가구와 섭식의 커뮤니티

2024-07-24     정미선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가족과 커뮤니티의 풍경들’을 연재한 전남대 인문학연구원 HK+ 가족커뮤니티 사업단 교수진이 올해도 칼럼을 이어갑니다. 본란은 넓은 범위에서 가족과 커뮤니티에 대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성찰을 시도합니다. 사업단은 ‘초개인화 시대, 통합과 소통을 위한 가족커뮤니티인문학’이라는 주제 아래 인문학적 성찰과 상상을 바탕으로 열린 가족, 신뢰와 조화의 공동체 문화를 연구·확산하는 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만드는 걸 좋아하지만 여자친구·아내·엄마로서는 ‘만들고 싶지 않아’

 먹는 걸 좋아하지만 나를 비참하게 하는 가족과는 ‘먹고 싶지 않아’

 혼자인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오늘, 당신과 함께 ‘만들고 먹고 싶어’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졌다. 여성가족부 2023년 가족실태조사에서 1인 가구 비율은 33.6%로 증가했다. 더불어 가족에 대한 인식도 다양해지고 가족다양성에 대한 욕구도 높아졌다.

 여성가족부 2021년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중 가족 개념에 대한 국민의식에서 법적인 혼인·혈연으로 연결되어야 가족(51.1%)이라는 생각보다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61.7%)이라는 생각이 더 앞섰다.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라면 가족이라는 생각도 45.3%에 달했다.

 1인 가구는 보통이 됨과 동시에 보편화되었다. 혼자 사는 것도 이상하지 않고 같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굳이 법적인 혼인이나 혈연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법적인 가족 정의를 넘어 생활동반자나 생애동반자(지은숙, 2024)를 가족으로 보는 인식의 확장은 이처럼 혼자 살든 같이 살든 개인의 욕망과 가치를 최우선시하는 게 당연한 초개인화 시대의 풍경 중 하나이다.

 그런데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현실적인 1인 가구의 고충에 대한 콘텐츠들도 늘어났다.

 2023 가족실태조사에서 보고된 1인 가구의 가장 큰 어려움은 균형잡힌 식사(42.6%)였다. 사람은 먹어야 살고, 누구든 죽기 전까지 섭식을 멈출 수 없다.

 혼자 만들고 먹고 살기의 일상적 풍경은 어떨까. 식구 없는 가구의 만들고 먹기를 조명한 최근의 드라마가 있다. ‘만들고 싶은 여자, 먹고 싶은 여자’(2022)다.

 1인 가구 여성의 섭식 둘러싼 슬픔

 ‘만들고 싶은 여자, 먹고 싶은 여자’는 여성 서사에 대한 독자들의 사랑을 바탕으로, 음식과 가족 그리고 여성을 소재로 인기리에 연재한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일본 드라마다.

 국적은 다르지만 동아시아 가족정치의 유사점과 섭식의 젠더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만들고 먹기의 일상에서 여성 1인 가구가 처한 현실의 슬픔과 즐거움을 넉넉하게 다룬다. 남성들보다 상대적으로 자조기술, 특히 만들고 먹기의 걱정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여겨지는 1인 가구 여성들의 애환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는 것도 가치 있다.콘 드라마의 두 주인공 노모토와 카스가는 고향에 사는 원가족을 떠나 직장이 있는 대도시에서 자취하는 여성들이다. 노모토는 파견직이고 카스가는 계약직이다. 월급도 잘 오르지 않고 물가는 너무 비싸다. 노모토는 식비를 아끼기 위해 회사에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카스가는 아무리 절약해도 식비가 월급의 1/3을 차지한다.

 대도시에 가족자원과 주거자원을 갖추지 못한 비정규직 여성 1인 가구에게 섭식을 둘러싼 일상은 생계형이다. 만들기와 먹기를 둘러싼 일련의 반복적인 행위들은 돈과 시간과 노동과 정서 사이를 서로 번갈아 타협하면서 계속되는 모면하는 삶의 궤적을 그린다. 한국의 원룸 같은 멘션에서 이들에게 주방과 식탁은 꽤나 자주 돌봄과 재생산 시간의 충만함이 아니라 새로운 일터가 된다.

 스스로를 부양함과 동시에 스스로를 돌보는 일은 이렇게 힘이 든다. 그런데도 이 여성들은 1인 가구의 삶을 단념할 생각이 없다. 카스가는 원가족의 식탁을 악몽으로 기억한다. 아버지와 장남만 반찬을 많이 챙겨주는 집, 실패작이나 작은 건 어머니와 자신이 먹던 식탁, 여성들만 음식을 하고 식사를 차리는 집, 배고픈 식탁. 배불리 먹지 못해 늦은 밤 몰래 토스트를 만들어 먹던 걸 들켰던 순간을 카스가는 이렇게 기억한다. ‘어째서 맛있는 걸 이렇게 비참한 기분으로 먹어야 하는 걸까.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데 나는 계속 이곳에서 먹어야 하는 걸까.’

 카스가는 10년째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 적이 없다. 노모토는 ‘슬슬 좋은 사람(=남자)을 찾아야지’만 반복하는 가족과 ‘보통은 다 그래, 다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보통’으로부터 피신하고 싶다.

 그러나 여성 1인 가구의 섭식은 현재형으로도 갖은 잣대로 재단되고 지레 판단되며 미세공격에 처한다. 노모토의 절약하기 위한 도시락은 회사에서 요리 잘 하는 여자의 미덕으로, 많이 먹지 못하는 습관은 바람직한 식습관으로 칭찬받는다. 단지 노모토는 그저 요리를 좋아하고, 소식하는 사람일 뿐이다.

 카스가는 정반대다. 카스가는 요리를 좋아하지 않고, 대식하는 사람이다. 카스가 역시 여자라고 밥을 덜 주거나 양 줄여서 주기, 먹는 것에 훈수 듣기 등 식당에서 곤란해진다. 그들은 회사와 식당을 피해 각자의 집으로 피신한다.

 ‘혼자 먹습니다.’ 같은 멘션의 옆옆집 사이인 그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나눈 첫 대화를 종결한 말이다. 1인 가구 여성의 혼자 만들고 먹기는 이토록 정치적인 것이다.

 만들고 먹기 행위 공통감각의 계기 

 노모토는 어느날 너무 많이 만든 음식을 카스가에게 대접한다. 집합주거 형태에서 같은 라인에 사는 사람은 서로의 생활을 모르기 어렵다. 이들 이웃은 음식을 가운데 두고 각각 만들기와 먹기의 관계로 만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두 사람이 모이는 식탁은 만들고 먹기를 반복하며 달라지기 시작한다.

 노모토가 만들고, 카스가가 먹는다.

 여기에서 첫 번째 변곡점은 카스가가 노모토의 ‘만들기’에 대가를 치르는 데서 시작된다. 카스가는 그동안의 식비를 어림잡아 건넨다. 이는 식탁을 노동의 현장으로 재구성한다. 단순 계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저만 계속 이렇게 대접받으면 우리 둘이 동등하지 않은 느낌이라 제가 싫습니다.’ 가치의 커머닝(한디디)에 더해 동등함의 가치가 식탁에 공유된다.

 두 번째 변곡점은 노모토가 아픈 날 만들어진다. 카스가는 소진된 생리대와 진통제를 사다주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준다. 동등함의 가치에 이어 취약함과 상호의존성의 가치가 식탁에 공유된다.

 연달아 비롯되는 세 번째 변곡점은 두 사람이 함께 음식을 만들고 먹는 과정에서 이어진다. 계절음식과 슈톨렌을 나누어 먹으며 회를 반복하는 만들고 먹기의 행위들로부터 함께하는 시간은 늘어나고, 함께 하는 시간을 약속한다.

 식탁은 두 1인 가구 여성에게 서로의 차이를 접어두지 않고도 함께 있을 수 있는 공통의 공간이 된다. 만들고 먹기의 행위는 공통감각의 계기이면서, 동시에 생계의 슬픔을 넘어 삶을 추구하는 즐거움의 자원으로 인식된다. 그렇게 이들은 관계 정의 없이도 ‘둘이서 만들고 먹는다. 약속이 있다면 언제까지고.’

 섭식-노동의 일상 속에서 식구를 재상상하기 

 ‘만들고 싶은 여자, 먹고 싶은 여자’는 두 여자가 식구가 되는 이야기다. 물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한 대로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은 아니다.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두 사람의 관계성에 잠재되어 있다. 식구의 관계망을 더 열어두면 음식을 둘러싼 노동과 섭식, 아니 이 둘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우리네 섭식-노동 속에서 식구가 가족커뮤니티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때의 식구는 이런 질문을 한다. 왜 우리의 만들고 먹는 행위는 행복하지 않은가. 왜 우리의 만들고 먹는 일상은 동등하지 않은가. 왜 우리의 만들고 먹는 삶은 이다지도 다르거나 같은가. 왜 우리의 만들고 먹는 관계의 상상력은 이토록 빈곤한가. 그래서 우리는 누구와 함께 만들고 먹고 싶은가.

 드라마를 넘어, 한국문학을 비롯한 요즘의 서사들은 식구를 새롭게 상상하는 데 물꼬를 트고 있다. 왜 서사 속 여자들은 계속 같이 만들고 먹을까? 섭식의 성 정치가 이론의 초평면에서 채식과 육식, 절식과 폭식의 회로 사이를 배회할 때, 여자들은 노동과 생계와 관계와 공간을 횡단하는 섭식의 삶 정치를 통해 ‘나와 함께’ 냄비를 채우고 비워줄 사람들을 찾아 떠나는 중이다. 이토록 용감하게도.

 정미선(전남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