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가 잘 지켜온 자연 공간 영산강·황룡강 생태 답사] (3) 영산강의 두물머리
인위적 간섭 덜해 야생성 간직 풍영정천과 광주천이 영산강 만나는 곳
2020년 황룡강 장록습지가 국가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지 4년이 지나가고 있다.
광주의 첫 번째 습지보호지역이자 국내 첫 번째 도심습지보호지역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장록습지는 광주의 우수한 자연을 대표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장록습지를 안내할 때마다 듣는 이야기가 있다. 어른이든 아이든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이렇게 우리 가까이에 멋진 경관을 가진 또 편하게 쉴 수 있는 장록습지가 있어서 참 좋다.’는 말이다. 키 큰 억새숲을 뛰어가는 고라니를 만날 수 있는 곳, 봄이면 연둣빛 신록을 아낌없이 자랑하는 버드나무숲의 경관이 멋진 곳, 보랏빛 멀구슬나무 꽃이 뿜어내는 향긋한 내음과 해질녘 노을빛을 받아 불게 물든 강물을 만날 수 있는 곳, 이른 아침 재잘대는 새들의 소리, 밤에는 풀숲에서 열리는 수많은 곤충들의 합창을 들을 수 있는 곳. 가을밤, 깜깜한 산책로를 조용히 걷다 보면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는 행운도 얻을 수 있는 바로 이곳이 장록습지이다. 이제 광주의 습지와 생물다양성들을 이야기할 때 장록습지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곳이 되었고,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발걸음으로 생물다양성을 체험하고 알리는 중요한 공간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습지, 생명을 가득 품은 습지가 광주에 또 있지 않을까? 자연의 모습을 잘 지켜온 야생동식물의 서식처가 되고 있는, 생태계가 우수한 습지를 시민들과 함께 찾아보면 어떨까? 그래서 시작한다. ‘보호지역 확대를 위한 영산강-황룡강 우수습지 답사’. 이제 우리가 직접 걸으며 만나는 습지의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다.
(편집자주)
중부지방은 며칠동안 쏟아지는 극한호우로 곳곳에서 침수피해가 잇따르고 있다는 소식인데, 광주는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비는 있지만 장마가 시작되었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 날들이다. 같은 하늘 아래, 한반도 내에서도 다른 기상을 보여주는 소식을 들으며 지구 환경의 변화가 심각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지난 답사 때 너무 더운 날씨 때문에 모두 힘이 들어서 오늘(27일)은 아침 8시에 만나기로 했다. 며칠 동안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사라지는 비가 계속되어서 만나는 날에도 비가 올까 조금은 노심초사했는데,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다. 습도가 조금 높지만 구름이 햇빛을 가려주어 걷기에 참 좋다며 초긍정의 마음을 보여주는 일행은 기운차게 답사를 시작했다.
두물머리. 한국어대사전에서는 ‘두 갈래 이상의 물줄기가 한데 모이는 지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샛강이 모여 큰 강물을 이루듯 영산강으로 흘러오는 많은 물줄기 중 풍영정천과 광주천 역시 영산강을 향해 흘러오는 하천이다. 이번 영산강-황룡강 우수습지 답사는 영산강의 제7하중도와 제8하중도로 바로 풍영정천과 영산강이 만나는 지점부터 광주천과 영산강이 만나는 곳까지이다. 길이는 약 3Km 정도이다.
두물머리는 두 물길이 만나는 탓에 자연스럽게 하중도가 발달하고, 이 하중도는 식물이 자라고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처가 되면서 새들의 주요한 먹이처이자 쉼터가 된다. 그리고 건강한 습지생태계를 형성하게 된다.
특히 광주천과 영산강이 만나는 8하중도 구간은 이명박 정권 시절 영산강 살리기 사업으로 인해 하중도가 사라진 곳이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하중도가 발달하고 예전 모습과는 또 다른 습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답사인 5하중도 구간은 시민들이 매우 활발하게 이용하는 구간이었는데, 반해 제7, 8하중도 구간은 산책을 하는 시민들은 만나기 어려웠고 대신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아마도 강 주변 가까이 마을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이용이 없고, 자전거길 이외에는 시설물이 없는 영산강은 그동안 만났던 강변 경관과 많이 달랐다.
자전거길 양옆으로 넓게 자리 잡은 둔치에는 무릎 높이까지 식물들이 자라 있었는데, 야생동물들이 몸을 숨길 수 있는 은신처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어디선가 불쑥 삵이 나타날 것 같은 야생의 느낌이 강한 영산강이 일행을 설레게 한다.
영산강 여름 채우는 곤충들 만나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게 더디기만 한다. 도대체 속도가 나지 않는다. 걸음을 떼기가 무섭게 마주치는 곤충과 애벌레들이 우리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 탓이다.
연둣빛 풀잎에 몸을 감춘 사마귀, 방아깨비, 노린재, 이름도 모르는 곤충들이 곳곳에서 반갑게 일행을 맞이해준다. 여름은 곤충의 계절, 곤충들의 천국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렇구나 실감한다.
날씨가 덥고 비가 많이 오는 여름은 곤충들의 먹이인 식물들이 잘 자라서 곤충들에게는 먹이가 풍부한 천국인 셈이다. 또 무성해진 나무의 잎들은 작은 곤충들이 몸을 숨기기에도 안성맞춤이라 여러모로 곤충들이 살기에 여름은 좋은 계절이다.
푸른빛의 날씬한 몸을 가진 방아깨비는 어린 시절 방아찧는 모습 때문에 모두에게 익숙하고 반가운 곤충이다. 모두들 방아깨비와 함께 놀았던 추억을 끄집어내며 나도 그랬다며 서로의 경험담을 쏟아내느라 한바탕 주위가 시끄러워진다.
사마귀는 쉬 잡지 못하고 눈으로 담고, 카메라에 담느라 손길이 분주하다. 한여름의 상징인 매미. 풀잎 아래 숨어있던 매미 탈피각은 우리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 7년여를 땅 속에 있다가 땅 위로 나와 새로운 몸을 얻으며 벗어놓은 매미의 탈피각을 보니 조금은 숙연해진다. 긴 시간을 보내며 땅 위로 나온 그들의 최대 숙제인 번식은 잘 마쳤을려나. 한여름 무섭게 울어대는 울음소리 어디에 그의 소리도 있으려니 생각하니 매미의 울음소리가 애틋하게 들린다.
기후변화는 도심의 열섬현상을 심화시키는 등 도시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있는데, 이러한 도시 환경의 변화는 도시에 서식하는 생물상과 그들의 생활사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름 대표적인 곤충인 매미는 도시와 인근 교외 지역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밀도를 보여주고 있다. 즉 온도가 더 높은 지역에서 많이 살고 있는 것이다. 열섬효과가 높은 지역에 사는 매미들은 열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유전자가 더 많이 발현되어 있다고 한다.
이렇게 도시 환경의 변화는 매미의 유전자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도시에서 잠을 못자게 할 정도로 시끄러운 매미울음소리가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도시에서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더 빨리 들리고 더 늦게 끝나고 있다. 1960년부터 2017년까지 57년 동안 서울의 참매기가 처음 울음을 시작하는 시기와 울음소리가 끝나는 시기의 변화를 조사했더니 연간 기온이 상승할수록 울음소리가 시작하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울음이 끝나는 시기도 점점 늦어지는 것이 확인되었다. 매미소리가 더 오랫동안 더욱 시끄럽게 우는 이유가 바로 기후변화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인간인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니 매미소리가 시끄럽다고 악을 쓰기가 민망해질 뿐이다.
야생과 공존하기 가능성
영산강의 거의 모든 구간에서 생태계 교란 식물은 쉽게 만날 수 있다. 이곳에도 도깨비가지와 양미역취, 환삼덩굴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지역과 달리 크게 군락을 이루고 있지는 않은 모습이다. 보통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는 곳은 그만큼 생태적 교란이 심해 외래종과 생태계교란생물이 많아지는데, 이 구간은 다른 곳에 비해 인위적 간섭이 덜 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의 인위적 간섭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하천을 관리하는데 있어 이러한 인위적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20년 광주광역시는 시민사회가 제안한 ‘광주천 자연으로 돌려주는 구간’ 제안에 대해 수용하고 광주천 하류 400m 구간을 자연으로 돌려주는 구간으로 시범운영하고 있다. 시민사회는 이 구간에 대해 꾸준히 모니터링을 진행하며 변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정밀한 분석이 향후 필요하겠지만 식생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고, 그에 따라 발견되는 생물종도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실험이 광주천에서 더욱 확대되기를 그리고 영산강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광주 곳곳에서 야생과 공존하기 위한 우리의 실험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야생과의 공존은 도심에서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생물다양성을 회복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다.
그동안 인간을 중심으로 이용을 위해 공간을 만들어왔다면 이제는 그동안 이용했던 자연의 공간을 다시 자연에게 돌려주는 방법은 무엇일지, 어디까지 가능할지 함께 찾아보기를 시작해야 한다.
박경희(광주전남녹색연합 생태보전위원장)